세월

“벌써 일년이 지났나?”

오늘 오후 John네 집으로 향하며 아내에게 던진 말이랍니다. 해마다 이 맘때 즈음에 열리는 John네 가든파티에 갔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년 전 일이 되고 말았답니다.

거의 스무 해 가까이에 이르는 연례행사인데 해마다 그 모습은 힘이 빠져 간답니다. John 부부도 어느새 칠순을 넘겼고, 참석자들 대부분이 그 또래 연령대이다보니 해마다 숫자도 줄어든답니다.

0726151504햄과 소시지를 굽고 potluck 음식(손님들이 한 접시씩 해온 음식)들과 맥주를 나누며 이야기를 즐기는 파티인데  참석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다보니 웬지 모르게 해마다 분위기가 쳐져가는 느낌이 드는 것인데, 오늘은 조락한 종가집 잔치처럼 그 느낌이 더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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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호스트 노릇을 하느랴고 분주한 John 내외의 모습을 바라보며 파티가 몇 년은 더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답니다.

그나마 제게 큰 웃음을 안겨준 할아버지(?) 한 분과의 대화는 큰 기쁨(?)이었답니다.

할아버지 : “어디서 왔니?”

나 : Hockessin  Delaware(제가 사는 동네 이름인데 델라웨어주이고, John네 집은 메릴랜드주에 있기에)

할아버지 : 아니, 니 모국?

나 : 한국

할아버지 : 여기(미국에) 언제 왔는데?

나 : 한 삼십년 됐나?

할아버지 : 그럼 한 열살 때?

나 : 나 지금 예순 넘었거든….

할아버지 : Are you kidding me?!

크크거리며 좋아하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이랍니다.

“그 할아버지 사람보는 눈이 진짜 할아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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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에 대하여

대왕 알렉산더(Alexaner)가 붙잡혀온 해적에게 “너는 어찌하여 바다를 어지럽혔느냐?”고 물었답니다.

대왕의 물음에 해적은 이렇게 답했답니다. “대왕이시여! 어찌하여 당신은 세상을 어지럽혔습니까? 나는 작은 배로써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도적놈’이라고 비난받지만, 당신은 막강한 군대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정복자’라는 칭함을 얻은 것일 뿐입니다.”라고요.

신국론성 어거스틴이 쓴  “신의 도성(신국론), The City of God”에 나오는 이야기랍니다.

작은 좀도둑이나 국가나 자기만을 위한 생각에 빠져 있는한, 똑같이 도둑놈에 불과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 나아가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기주의에 빠져서 자기 개인이나 집단만의 이익을 우선시하다보면 결국 도둑놈이 될 뿐이라는 교훈입니다.

해적이나 도적이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이나, 국가나 집단(물론 교회도 포함)이 주어진 권력을 신성시하여 개인에게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나, 똑같이 도적질이라는데는 다름이 없다는 이 이야기의 핵심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비단 물질적 소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욕망들 일테면 식욕, 성욕, 지식욕, 권력욕에 이르는 것들에 대한 소유입니다. 남보다 내가 더 가지려는 욕망, 끝내 내가 모두 차지해야만하는 욕망에 이르기까지 개인이나 국가 또는 교회, 각종 집단들이 지닌 욕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런 욕망 곧 소유에 대한 개념을 두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사용(use)과 향유(enjoy)라는 개념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을 ‘향유’한다는 것은 그것 자체의 목적 또는 이익을 위해 그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것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쓰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우리가 원한다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전제로 말이다.”

어거스틴은 이 두 개념이 전도되는 상황을 악이요, 죄라고 말합니다. 향유(enjoy)할 것을 사용(use)하거나, 사용해야 하는 것들을 향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거스틴은 욕망의 향유(enjoy)와 사용(use)을 구분하는 잣대로 “필요(necessary)”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그가 말하는 “필요”란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과 의복입니다. 마찬가지로 집단이나 단체, 국가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필요”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것들은 “여분(superfluous)”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 “여분”의 것들은 이웃과 나누는 것이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며, 개인나 단체 또는 국가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 “여분”의 것들을 “필요”라고 말하면서 자기 것 또는 권력의 것이라고 우기는 것이야말로 바로 도적질이요, 사기질이라고 강조합니다.

어거스틴(성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Sanctus Aurelius Augustinus)이 보았던 도둑질과 사기질은 그가 죽은지 1600여년이 지난 오늘도 도처에서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사람사는 일은 여전히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에게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분노와 용기다. 현실이 지금 모습대로인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현실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으로 바꾸려는 용기.”라는 어거스틴의 말처럼 오늘도 “현실에 대한 분노와 용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여전히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 뉴스를 보며 자꾸 혀차는 습관이 늘어나는 나에게 희망을 주며…

삼팔선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8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8.15 해방이 된 다음, 나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달라지고 있는 고국 소식을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귀국하여 그 땅을 둘러보니 여기 저기 낯설고 생소한 것들이 있었다.

앞에 나온 이야기인‘귀국선’에도 적었듯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부둣가에는 태극기와 각가지 내용의 글자들이 담긴 깃발들이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태극기를 비롯해, 解放(해방), 自由(자유), 獨立(독립) 등 그런 글자가 적혀 있는 현수막이나 벽보들이 낯설기만 했다.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8.15 해방이 되니, 이런저런 이유로 타국에서 지내던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너나할것 없이 그렇게 조국 땅으로 모여들었다.

나처럼 일본에서 이리 저리 떠돌다가 귀국하는 사람이나 또는 다른 곳에서 지대다가‘조국 해방’이라는 물결을 타고 귀환하는 사람들, 그들을 환영하러 나온 인파, 그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일본인 등으로 부두는 번잡스러웠다.

세화회1나는 환전소에 들려서 일본 돈을 조선은행권으로 바꿔 가지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서 내린 나는 거기서도 처음 대하는 것들을 보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서울역 맞은편 어느 건물에 걸린 ‘日本人世話會’(일본인세화회)라는 간판이었다. (사진은 부산 일본인세화회 모습)

그것은 일본인들을 보살피는 모임이라 뜻이 있는 간판이다.

삼팔선

삼팔선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요약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8.15 광복 이후 한국에서 자주 쓰이게 된 말 중에서 한가지를 고른다면, 그것은 삼팔선(三八線)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게 됨에 따라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이 바로 그 ‘삼팔선’이다.

그렇게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한반도를 둘로 나누어 각기 점령한 것을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것은 두 어린이가 과자 한 개를 반으로 쪼개어 사이좋게(?) 나누어 먹은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경계선은 6.25전쟁 휴전선이고 구불구분한 것인데 비하여, 38선은 위에 적은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점령지 분할 경계선이고 일직선이다. 38선이든 휴전선이든 그것은 한반도를 둘로 갈라놓은 분단선(分斷線) 이다.

어찌 되엇건 그 땅에 ‘38선’이라는 것이 생긴 후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통일의 길은 보이지 않고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3838선이 생긴 다음, 그 선(線)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 사람들 중엔 남쪽에 의지할 곳이 없이 막연하게 월남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엔 자신을 ‘삼팔 따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홀로 월남하여 졸지에 의지할 곳이 없게 된 자신을 스스로 비웃는 자조 심리(自嘲心理)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노름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따라지’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적는다.

‘따라지’라는 말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노름판에서 ‘한 끗’을 뜻하는 말이고, 둘째는 보잘것없거나 하찮은 사람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삼팔선’이라는 말이 한국 곳곳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강원도 양양군에 ‘삼팔선휴게소’라는 휴게소가 있는데, 강원도 인제군 에도, 경기도 포천시에도 그런 이름의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뿐만 아니고, ‘삼팔선주유소’라는 주유소도 있다.   모두 38선 또는 그 부근에 있는 휴게소나 주유소 상호다.

‘38선’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되면서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그들 두 나라가 나누어 각각 점령한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 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다는 그의 조서(詔書)가 발표된 다음,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이 북위 38도선을 막았고, 그들보다 나중에 서울에 입성한 미국군이 38선 이남 에 주둔하여 3년 동안 그 땅에 미군정(美軍政)이 펼쳐졌다.

더 설명하자면, 38선은 8.15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남한과 북한과의 경계선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한국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러 가지 비극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 들에게 한(恨)많은 경계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무렵 유행하던 노래 중에는 ‘가거라 삼팔선’, ‘삼팔선의 봄’ 등이 있었다. 삼팔선은 당시 해방된 조국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휴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지만 ‘가거라 삼팔선’, ‘삼팔선의 봄’ 등의 노랫말에 담긴 절실함은 사라진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