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연휴

연휴를 맞아 하루 푹 쉽니다.

쉰다는 게 별거인가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맞는 것이지요.

0704152113d저녁상을 물리고 앉아있노라니 밖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작했네!”하는 아내의 소리에 창밖을 내다 봅니다. 동네 4th July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답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공원에서 해마다 오늘이면 하는 연례행사이랍니다.

미국 어디서건 낮에는 퍼레이드, 밤에는 불꽃놀이로 독립기념일을 기리는 동네 행사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함께 나가 퍼레이드도 보고, 불꽃놀이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구경하곤 했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서 그 퍼레이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보러 달려 나가곤 했었는데….

이젠 다들 컷다고…

아내와 둘이 밥먹고 앉았다가 폭죽소리에 놀라, “아~ 오늘이구나!”한 것입니다.

창문밖을 바라보다가 앞뜰로 나가 사진 몇 장 찍고는 “아이고, 모기 달려드네…”하며 들어왔답니다.

쉬는 방법도 이젠 게을러집니다.

좋게 표현하여 느긋함이랄지…

뉴스를 보니 Lewis Beach라고 델라웨어에서 제법 유명한 해변 도시에서 있었던 오늘 행사 영상이 있어 여기에 덧붙인답니다.

일본의 항복

태평양전쟁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2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1부 : 태평양 전쟁(太平洋戰爭) 

그들의 야욕

일본은 진주만 기습에 이어, 서남 태평양에 있는 수 많은 섬들과 동남 아시아 여러나라를 단숨에 휩쓸었다.    그들은 전쟁이 시작된 지 반년만에 필리핀, 말레이 반도, 싱가포르. 버마등도 점령했고, 이어 솔로몬 군도, 뉴기니, 자바, 수마트라에도 그들의 세력을 넓혀 나아갔다.

1미국과 영국을 멸망시킨다는 뜻으로 미영격멸(美英擊滅)이라는 구호도 외쳤던 일본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런 전쟁을 도발했다.

대동아 공영권은 당시 일본 정부와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지고 보급된 개념으로, 일본제국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면서 그들이 내세운 표어 중 하나다.   <대동아>란 일본(한국 포함), 만주, 중국에 동남 아시아를 더한 지역 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대동아 공영권의 요지는 위 아시아 지역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그 지역의 공존(共存)과 공영(共榮)을 이루어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과 일본의 이익을 위해 일본이 만들어낸 한 구상이었다.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 이라고도 부른 일본이 그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대동아공영권은 일본 의 헛된 꿈과 표어로 끝났다.

각설하고, <그런 전쟁이 있게 되기까지 일본은 어떤 나라였나>에 관한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쇼군(將軍)이 정무를 맡아보던 바꾸후(幕府)가 무너지고, 중앙 집권 통일 국가의 건설과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시대로 변했다.

그후 그들은 군사적이거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를 정복하여 큰 나라를 건설하려는 침략적인 야욕(野慾)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한 <영토 확장>의 꿈을 꾸면서 그들은 조선의 국권을 빼앗는 등 제국주의 나라로 변했다.

역전승(逆轉勝)

역전승은 처음에는 지다가 나중에 가서 이긴다는 것인데, 태평양전쟁 때 있었던 미국과 일본과의 전쟁이 그런 것이다.

일본 비행대들이 진주만에 정박 중인 미국 군함들을 기습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일어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은 연전연승(連戰連勝)을 거두며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그들의 점령지역을 넓혀나갔다.

하지만, 그 전쟁이 일어난 지 반년만에 전황(戰況)은 바뀌어 일본군의 기세가 꺾기게 된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한 부분이고 일본이 태평양에서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제압(制壓)당하게 된 <미드웨이 해전 (Battle of Midway)>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여 기세(氣勢)를 떨치던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그들의 기(氣)가 꺾이기 시작했다.

약 반년동인 거침없이 그들의 점령지역을 넓혀나가고 있던 일본은 1942년 6월 4일(미드웨이 현지 시간), 하와이 군도(群島) 멘 서쪽 미드웨이에서 펼쳐진 미국과의 해전(海戰)에서 되돌릴 수 없는 패전을 하게 된다.

일본 함대의 주력 항공모함 4척이 침몰한 데다 3500명의 병력과 300대 의 항공기를 잃었다.

태평양전쟁의 주도권(主導權)이 하루아침에 미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일본의 패전은 그럴 수박에 없는 복합요소들이 한꺼번에 작용헸기 때문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의 전략 요충지(要衝地)인 미드웨이 섬을 공격하려던 일본 군함들이 벌떼처럼 달려든 미국 전투기들의 공격을 받아 태평양전쟁의 판도(版圖)를 바꾼 해전이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크게 승리한 후, 전세(戰勢)는 역전되어 일본군이 퇴각하거나 전멸하기 시작했다.

전쟁 초기에 일본군에게 점령당했던 곳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은 미국 비행기들이 일본 본토 하늘을 떼지어 날아다니며 곳곳에 폭탄과 소이탄(燒夷彈)을 떨어뜨렸다.

  • 소이탄은 화염(火焰)이나 고열(高熱)로 사람이나 건조물 등을 살상한다.

미군이 오끼나와(沖繩)를 점령한 다음부터 미국 비행기들의 일본본토 공습이 더욱 심해졌다.  오끼나와에서 가장 가까운 현이 가고시마(鹿兒島)다. (현은 한국의 도와 같은 일본의 행정구역 단위 이름이다.)

가고시마 상공은 그런 비행기들이 날아다니는 길목이 되었다.

가고시마에 다루미즈(垂水)라는 곳이 있다.

그곳엔 일본군의 군사용 땅굴을 만드는 공사장과 군용물자를 저장하는 시설이 있었는데, 미군 비행기가 그곳에 전단(傳單)을 뿌렸다.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수많은 전단엔 여러 가지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a02대개 만화그림이 섞인 것이다.    그 전단 중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것도 있었다.

11시 55분을 나타내는 시계가 그려진 그림인데, 1부터 11까지는 숫자 대신 미군들이 점령한 섬들이고, 각 섬에는 부러진 깃대에 달린 일본 국기들이 있다.

11은 오끼나와다.

도쿄(東京)를 상징하는 12엔 부러지지 않은 일장기 깃대가 있다.  그것은“곧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게 될 것이다.”라는 암시가 담긴 전단이다.

일본의 패전

<곧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하게 될 것이다.>라는 암시가 담긴 전단이 뿌려진 다음,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끼(長崎)에 각각 원자탄이 떨어졌다.

때는 1945년 8월 6일과 9일이었다.

태평양전쟁 초기에 일본은 그들이 원하던 섬들을 점령하는데 성공했으 나, 연합군의 해군과 공군력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본 비행기들의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미태평양함대가 일본에게 당하 는 등, 일본군이 연전연승(連戰連勝)을 거듭하며 기고만장(氣高萬丈) 하여 동남 아시아 일대와 태평양 일부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결국 그 기세는 꺾이고, 일본 본토가 ‘원자탄 세례’를 받은 것이다.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구실을 내세워 <대동아전쟁>이라는 것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했고, 마침내 전쟁을 일으켜 미국에 대들더니 결국은 그들 머리 위에 원자탄이 떨어지게 되었다.

앞에 적은대로 가고시마에 다루미즈(垂水)라는 곳이 있고, 그곳엔 일본군의 군사용 땅굴을 만드는 공사장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에 나는 그곳에서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 히로히토(裕仁) 일본 천황이 무조건항복을 한다는 방송을 했는 데, 전쟁을 시작한 지 3년 9개월만에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한 것이다.

거의 70년 전에 있었던 이야기다.

그리고 새로운 두 세대(世代)가 생겼다.   패적국이 되었던 일본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세우고 있다.

그러한 것을 보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