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팔선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8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8.15 해방이 된 다음, 나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달라지고 있는 고국 소식을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귀국하여 그 땅을 둘러보니 여기 저기 낯설고 생소한 것들이 있었다.

앞에 나온 이야기인‘귀국선’에도 적었듯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부둣가에는 태극기와 각가지 내용의 글자들이 담긴 깃발들이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태극기를 비롯해, 解放(해방), 自由(자유), 獨立(독립) 등 그런 글자가 적혀 있는 현수막이나 벽보들이 낯설기만 했다.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8.15 해방이 되니, 이런저런 이유로 타국에서 지내던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너나할것 없이 그렇게 조국 땅으로 모여들었다.

나처럼 일본에서 이리 저리 떠돌다가 귀국하는 사람이나 또는 다른 곳에서 지대다가‘조국 해방’이라는 물결을 타고 귀환하는 사람들, 그들을 환영하러 나온 인파, 그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일본인 등으로 부두는 번잡스러웠다.

세화회1나는 환전소에 들려서 일본 돈을 조선은행권으로 바꿔 가지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서울역에서 내린 나는 거기서도 처음 대하는 것들을 보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서울역 맞은편 어느 건물에 걸린 ‘日本人世話會’(일본인세화회)라는 간판이었다. (사진은 부산 일본인세화회 모습)

그것은 일본인들을 보살피는 모임이라 뜻이 있는 간판이다.

삼팔선

삼팔선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요약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8.15 광복 이후 한국에서 자주 쓰이게 된 말 중에서 한가지를 고른다면, 그것은 삼팔선(三八線)이라고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끝나게 됨에 따라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이 바로 그 ‘삼팔선’이다.

그렇게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한반도를 둘로 나누어 각기 점령한 것을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것은 두 어린이가 과자 한 개를 반으로 쪼개어 사이좋게(?) 나누어 먹은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의 경계선은 6.25전쟁 휴전선이고 구불구분한 것인데 비하여, 38선은 위에 적은 것처럼 미국과 소련의 점령지 분할 경계선이고 일직선이다. 38선이든 휴전선이든 그것은 한반도를 둘로 갈라놓은 분단선(分斷線) 이다.

어찌 되엇건 그 땅에 ‘38선’이라는 것이 생긴 후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통일의 길은 보이지 않고 요원(遙遠)하기만 하다.

3838선이 생긴 다음, 그 선(線)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런 사람들 중엔 남쪽에 의지할 곳이 없이 막연하게 월남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엔 자신을 ‘삼팔 따라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홀로 월남하여 졸지에 의지할 곳이 없게 된 자신을 스스로 비웃는 자조 심리(自嘲心理)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나는 노름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따라지’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적는다.

‘따라지’라는 말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노름판에서 ‘한 끗’을 뜻하는 말이고, 둘째는 보잘것없거나 하찮은 사람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삼팔선’이라는 말이 한국 곳곳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본다.

강원도 양양군에 ‘삼팔선휴게소’라는 휴게소가 있는데, 강원도 인제군 에도, 경기도 포천시에도 그런 이름의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뿐만 아니고, ‘삼팔선주유소’라는 주유소도 있다.   모두 38선 또는 그 부근에 있는 휴게소나 주유소 상호다.

‘38선’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되면서 미국과 소련 두 나라가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하여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그들 두 나라가 나누어 각각 점령한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 가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한다는 그의 조서(詔書)가 발표된 다음, 북한에 들어온 소련군이 북위 38도선을 막았고, 그들보다 나중에 서울에 입성한 미국군이 38선 이남 에 주둔하여 3년 동안 그 땅에 미군정(美軍政)이 펼쳐졌다.

더 설명하자면, 38선은 8.15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남한과 북한과의 경계선이 되어, 오늘날까지도 한국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러 가지 비극과 고통을 안겨 주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 들에게 한(恨)많은 경계선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무렵 유행하던 노래 중에는 ‘가거라 삼팔선’, ‘삼팔선의 봄’ 등이 있었다. 삼팔선은 당시 해방된 조국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말이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오늘까지 휴전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지만 ‘가거라 삼팔선’, ‘삼팔선의 봄’ 등의 노랫말에 담긴 절실함은 사라진 듯하여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