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였던 한주간

바보였던 한주간이었습니다. 정말 바보였답니다.

photo_2015-06-30_22-18-39딱 일주일 전 낮에 일어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이 블로그의 모든 한글들이 “??????????” 이렇게 물음표로 다 바뀌어 있었답니다.

처음에는 뭔가 잘못되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저절로”로 다시 원상복귀될 수도 있겠지 했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이거 어쩌지?”하는 걱정과 함께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보았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한편으로으로는 아쉬운 맘이 넘쳐났지만 그래도 나이 값 하노라고 “뭐 산다는 게 다 그렇지…. 잊을 건 잊고, 새로 시작하지 뭐…”하는 다짐을 놓았답니다.

그런데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 붙들고 씨름을 해 본 것이지요.  분명 “????????????”라는 표시들이 남아 있는 한 이걸 다시 한글로 돌려 놓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일주일 동안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머리 속에는 내내 한가지 생각 뿐이었답니다. 바로 “망가진 블로그 원상 복구 시키기”였습니다.

그러다 오늘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블로그 호스팅을 해주는 회사에게 상세한 문의 이메일을 보냈답니다.

막바로 24 이내에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해 주겠노라는 회신과 함께 세군데 사이트 링크들을  소개하면서 스스로 찾아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 주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낮에 틈틈이 호스팅 회사가 소개한 링크들 특히 포럼에 등록된 유사한 경험들을 읽다가 드디어 해결책을 찾았답니다.

알고보니 일주일 전 한글이 다 깨지는 사고가 나자마자 제가 생각했던 바로 그 곳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설마 그렇게 쉽게?”라는 생각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곳에 해결책이 숨어 있었답니다.

참 바보 같은 한 주간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얻은 것이 엄청 많답니다.

헤매느냐고 여기 저기 묻고 찾아다니다 보니 배운 게 엄청 많다는 것이 첫째고요, 둘째는 반드시 기록을 보관해 두어야만 한다는 깨달음이고요, 셋째는 어떤 경우에도 반드시 길은 있다는 믿음이고요 – 36계 줄행랑도 비책 가운데 하나이므로 – 그리고 무엇보다 해결한 뒤에 느끼는 이 만족과 기쁨은 아흔 아홉마리 양을 (야수들이 덤빌 수도 있는 무방비 상태에) 내버려두고 한마리 양을 찾아 나섰다가 얻은 기쁨을 이야기한 예수의 비유만큼이나 큰 것이랍니다.

바보짓 끝에 얻은 기쁨이랍니다.

또 다른 시작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게만 대처한다면,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속에서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If we will be quiet and ready enough, we shall find compensation in every disappointment.” >  –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이렇게 또 다른 시작을 맞게 될 줄은 전혀 예기치 못했답니다.

며칠 전 일터에서 급작스럽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머리 좀 식힌답시고 제 개인 블로그(http://www.for1950s.com/)에 들어갔답니다.

지난 삼년 오개월여 제가 일기처럼 글을 남기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글들이 – “???????” – 바로 이런 물음표시로 바뀌여져 있었답니다. 당시에는 뭔가 일시적으로 잘못되었거니 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상복귀 되려니 하며 덮어 두었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다시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여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아차 싶어서 이런저런 복구작업을 해 보았답니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다가, 제 능력 범위를 벗어난 일인 듯하여 도움의 손길을 구했답니다.

손길을 청했던 이에게 돌아 온 대답은 “저 역시 능력 밖입니다.”였습니다. 그래도 이 양반이 크게 도움을 주었답니다. 두어가지 택할 수 있는 방법 제시와 함께 글들을 건져 낼 방안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랍니다.

처음에는 정말 안타깝고 아쉰 생각 뿐이었답니다. 거의 삼년 반 동안 썻던 일기가 몽창 날라가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그걸 따로 저장해 놓치 않은 자책이 아주 심했답니다.

어제 오늘, 그 양반이 가르쳐 준 방법으로 400개가 넘는 글들 가운데 거의 95% 이상을 건져냈답니다.

블로그 복구작업은 계속될 것이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새 일기장을 하나 만들었답니다. 바로 이 블로그입니다.

복구작업과 함께 새 일기를 여기에 이어 쓰려고 합니다. 만일 옛 일기장 복구가 된다면 두 개를 합치려 합니다.

이 일기장 주소인  http://www.delhanin.com/ 의 delhanin은 제가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던 지난 1999년 이래 오늘까지 저의 다른 이름입니다. 델라웨어에 사는 한인을 줄여 본 말이랍니다.

이제 새 일기장을 꾸밉니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단풍나무 숲이나 길게 뻗은 소나무 가지 밑으로 비를 피하게 되었을 때도, 그 후미진 곳을 세밀하게 관찰한다면 그 잎사귀나 나무껍질 속, 혹은 그 발 아래의 버섯에서 새로운 경이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리라.>  – 역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을 찾아준 분들께 드리는 인사치고는 너무 밋밋한 것 같아 사진 한장 덧붙입니다. 엊그제 받은 사진이랍니다. 일년 전쯤 어느 예식에 참석했다가 누군가가 찍은 것을 엊그제 저희 부부에게 보내주신 것이랍니다.

2015-06-26

일기란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렸던 순간을 되뇌이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오늘, 지난 글들을 건져내며 느껴보았답니다.

**** 사족 : 그렇게 헤매기를 딱 일주일. 오늘은 6월 30일입니다. 일주일만에 망가졌던 블로그를 다시 복구시켰답니다.  이 큰 기쁨이라니!

delhanin.com 이라는 주소 하나는 덤으로 얻었고요.

1920년대 생 3 – 아버지

아버지의 글을 올리면서 딱히 맞추려고 맞춘 것은 아니건만 오늘이 아버지날입니다.

이제 제 아버님이 쓰신 글을 이 곳에 올리려고 합니다.

E-17제 아버님은 1926년 생입니다. 그리고 그 세대들이 겪은 일반적인 경험들 – 일테면 무학(無學)이나 낮은 학력을 비롯하여 일제 징용이나 징집, 국군 또는 인민군으로써 전쟁경험, 50년대에서 70년대 이르는 급작스런 변화기를 살아낸 소시민들의 경험들 –을 겪어오신 이입니다.

지난 두번에 걸쳐 쓴 1920년 생들의 일반적인 경험들과 특수한 사람들의 경험들을 함께 겪었거나 듣고 보고 살아오셨습니다.

우리들이 이즈음 종종 듣거나 말하는, 친일분자와 애국 독립 투사, 좌익 빨갱이와 우익 백색 테러단, 종분분자들과 꼴보수분자들 등등 한국 현대사의 극단적인 양극과는 거리가 먼, 아니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가질 겨를없이 먹고 살며 목숨 부지하기에 급급해 하며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백년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어찌보면 사(史)라고 이야기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살아오면서 실제 그 사(史)의 주인공이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 바로 제 아버님이십니다.

나이 스물이 되도록 태극기를 본적이 없거니와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 시대의 진짜 민(民)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민(民) 가운데 한분이 제 아버님이십니다.

화랑무공훈장으로 한 쪽 다리의 아픔을 평생 다스리고 살아오신 아버님이 이제와 돌아볼수록 다시 저린 이야기들이 넘쳐나지만, 그래도 그 이야기들 속에서 민초(民草)들이 품어야 할 희망과 소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엮어서 제게 건네신 것은 이달 초의 일이었습니다.

나이 스물에 맞았던 해방이 어느덧 70년 전 일이 되었는데, 비록 민초이지만 아직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몇 자 느낌을 적어보았노라고 말씀하시며 건네주신 원고입니다.

조금 손을 보아 출판하려는 계획에 앞서 먼저 여기 제 블로그에 연재로 소개 드립니다.

큰 제목은 <태평양전쟁 과 광복 70년 –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입니다.

다음 글 부터는 제 아버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맑은 바람 한 점

21950_15985_3323성서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무언가에 도전하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지만, 내 삶의 실체를 파악하고 깊게 침잠하여 나를 찾고자 할 때는 불경(佛經)이 때론 그 도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선가(禪家)에서 애지중지하며 선의 진수라 일컫는 벽암록에 기록된 위대한 선사(禪師)들의 법어(法語)들과 게송들을 읽노라면 삶의 자질구레한 걱정들을 건듯 부는 바람에 실려 훅 날려보내는 지경까지도 이르는 것이지요.

성서와 함께 벽암록(碧巖錄)이 제 집 해우소(解憂所)에 놓여 있는 까닭입니다.

거기에 있는 가르침이랍니다.

풍혈(風穴) 연소화상(延沼和尙:896-973)의 화두(話頭)에 설두선사(雪頭禪師)가 달아 낸 노래입니다.

<시골노인 이맛살 찌푸린 것은 그대로 내어 두고/ 삶에 찌든 중생을 위해 나라나 튼튼히 하시게/ 나라를 위해 꾀를 내고 싸우던 장수들은 다 어디 갔는고/ 만리를 떠도는 맑은 바람은 알고 있으리>

수만년 이래 맑은 바람 한 점은 늘 불고 있었답니다.

어떤 하루

스무해 가까이 사는 동네인데도 낯선 곳들이 많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습관 때문이지요.

0618152019집에서 채 3분도 안걸리는 곳에 seafood restaurant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답니다. 평소 거의 드나들지 않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거니와, 이따금 오가며 간판을 보면서 fish market인줄만 알았지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답니다.

오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들려 보았답니다.

생굴을 비롯한 각종 찐 해산물이 주종인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분위기를 만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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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른 두해를 함께하며 속속들이 환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 모처럼 낯선 분위기에서 맥주 한잔으로 조촐하게 하루의 기억을 쌓았답니다.

1920년대생 2 – 그 사람

1920년도에 태어났다면 현재 만 95세이고 1929년생이면 만 86입니다. 아무리 백세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1920년대생들 태반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그들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실제 징용, 징병되었던 연령대이고 보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분들이 다른 세대들 보다 많습니다.

이들 가운데 생존해 계신 분들은 살아있는 현대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북의 김일성(金日成, 1912년)과 남의 박정희(朴正熙, 1917년)가 1910년대생들이었고 그 뒤를 이어 한국정치사에 일획을 그었던 이른바 삼김<三金 :김대중(金大中, 1924년), 김영삼(金泳三, 1927년), 김종필(金鍾泌, 1926년)>씨들이 모두 1920년대생입니다.

아직 이 세대들에 대한 제대로된 정리와 평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입니다.

저는 이 세대들 중 막내축에 속하는 한분을 우리 후대들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국어 공동체의 미래가 밝게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1291828810임종국(林鍾國, 1929년 10월 26일 ~ 1989년 11월 12일) – 바로 그 사람입니다.

선생은 고작 60을 넘기시고 세상을 떴습니다. 그나마 그의 60년의 삶은 그리 평탄치 않았습니다. 선생은 해방이후 20년이 지난 1966년에 <친일문학론>이란 책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20년이 지나서야 식민지치하 이른바 엘리트들의 친일행각에 대한 연구의 첫 발을 그가 디딘 것입니다. 이후 그가 세상을 등질 때까지 친일행각을 벌인 인물들에 대한 연구에 매진합니다.

그가 죽기 얼마 전 그의 삶을 돌아보며 그가 남긴 말입니다.

<60의 고개마루에 서서 돌아다보면 나는 평생을 중뿔난 짓만 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가를 꿈꾸던 녀석이 고시공부를 했다는 자체가 그랬고, <이상전집>이 그랬고, <친일문학론>이 그랬고, 남들이 잘 안하는 짓만 골라가면서 했던 것 같다. 타고나기를 그 꼴로 타고났던지 나는 지금도 남들이 흔히 하는 독립운동사를 외면한 채 침략사와 친일사에만 매달리고 있다. <일본군 조선침략사>가 지난해 말에 출간된 터이지만 계획된 일을 완성하자면 앞으로도 내겐 최소한 10년이 기간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 대신 하늘만한 자유를 얻고자 했지만 지금의 나는 5평 서재 속에서 글을 쓰는 자유밖에 가진 것이 없다. 야인(野人)이요,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고독한 60년을 살았지만 내게 후회는 없다. 중뿔난 짓이었어도 누군가 했어야 할 일이었다면 내 산 자리가 허망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민족을 배반하고 친일행각으로 삶을 이어온 이들을 낱낱이 밝히기 전에는 죽을래도 죽을 수 없다며 이런 글도 남깁니다.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되며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糧食)으로 삼아야 한다. 15년 걸려서 모은 내 침략 ․ 배족사의 자료들이 그런 일에 작은 보탬을 해줄 것이다. 그것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 할 뿐인 것이다.

나는 지금 65년에 걸쳤던 <주한일본군 침략사> 1,800매를 반 쯤 탈고했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경향에 신경이 쓰여서 예정에 없던 일을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끝나면 1876~1945년의 모든 사회분야에 걸친 침략 ․ 배족사 전8권을 8년 작정으로 완결할 생각이다. 그러고서도 천수(天壽)가 남으면 마음 가볍게 고향(문학)으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문학사회사의 꿈이나 쫓고 싶다. 친일배족사 8권을 끝내기 전에는 고향(문학)이 그리워도 갈 수가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8년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일을 남기고 떠난 그의 뒤를 잇고자하는 사람들이 모여 오늘도 함께 일하는 곳이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입니다.

betrayed_148528_1[176801]그가 남긴 ‘친일문학론’과 연관지어 전해오는 이야기 두가지가 있답니다.

하나는 ‘친일문학론’ 초판 1500권이 다 팔리는데 걸린 시간이 13년이었고, 그 가운데 1000권은 일본에서 팔렸다는 사실입니다.

두번째는 그의 부친인 임문호입니다.  임문호는 천도교 지도자였는데 수차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대외 침략 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한 행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친일행각을 했던 전력이 있는 인물입니다. 임종국이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도중 아버지의 이러한 행적을 알고 상당히 괴로워했는데 이를 알아챈 그의 부친 임문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이름도 거기에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이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그의 부친의 이름도 “친일 명단”에 등재되었답니다.

그는 죽기전 자신이 살아생전 남긴 족적들은 50여년이 지나야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남겼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한반도에 얽힌 뉴스들은 답답함으로 다가옵니다.

192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20세기 초반 한반도 역사를 가슴에 품고 살다간 임종국선생의 물음이 진정 끝나는 날, 그날이 한반도와 한국어 공동체의 미래가 새롭게 열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1920년대생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이제 제 아버지 이야기입니다.

위대한 침묵

두주 전 일요일이었습니다. 아내는 교회를 가고 혼자 책상물림을 하다가 바깥바람 좀 쐴 요량으로 집안 창문들을 모두 열었었답니다.

bird sound시원한 바람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 온 것은 새소리들과 뒷뜰에 걸어놓은 풍경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취해 한참을 정물(靜物)이 되었었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짧게 편지로 써서 오늘 제 가게 손님들에게 띄워 보냈답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당신에게도 전합니다.

여름을 맞아 멋진 휴가계획을 세우셨는지요? 아니면 지금 생각중이신지요? 혹시 휴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 전혀 그럴 계획이 없으신지요?

얼핏 생각하면 여름에 모든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나 강을 찾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마다 다 생긴 모습이 다르듯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들도 다를 것입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시든지, 아니면 아무 계획이 없더라도 올 여름엔 이런 거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말씀드린답니다. 물론 저도 한번 해 볼 생각이랍니다.

날짜를 딱 하루만 정해서 모든 문명의 이기를 끊고 침묵속에서 하루를 보내보자는 것이지요. 저는 일요일 하루를 정해서 해 볼 생각이랍니다.

이 날은 전기, 전화, 셀폰, 컴퓨터를 비롯한 모든 소리나는 기기들을 끊고 조용히 침묵속에서 지내보자는 것이지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요? 멀리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보는 것 못지않게 어떤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혹시 2005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알프스 높은 계곡 속에 위치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의 카튜시안(Carthusian) 수도사들의 삶을 그린 영화랍니다.

거의 세시간에 가까운 168분 짜리 영화랍니다. 마침 유튜브에 이 영화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영화 전체를 다 보시라고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졸릴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영화의 어떤 장면이든지 약 5분 또는10분 정도만이라도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후반부 거의 끝부분인 1시간 5분 경에 나오는 수도사들이 알프스 겨울산에서 아무 도구없이 눈썰매와 눈스키를 타는 모습과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멋진 여름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Did you make a nice vacation plan for this summer? Or are you thinking about that now? Do you have no such plan at all because you cannot afford?

Even though we may easily assume that everybody goes to mountains, oceans or riversides or travels in summer, in reality, everybody enjoys summer in their own way, just as their appearances are not the same, but unique.

Whether you have vacation plans or not, how about trying to do this? Of course, I’ll try to do it at least once this summer.

It is to spend a whole day in silence, cutting off all the gadgets of modern civilization, such as electricity, telephones, cell-phones, computers and so on. I plan to do it one Sunday.

Why do I think about this idea? That’s because I think that it will give me rest as good as any get-away vacations.

Did you happen to watch the documentary film, “Into Great Silence,” which was released in 2005?

It is an intimate portrayal of the everyday lives of Carthusian monks of the Grande Chartreuse, a monastery high in the French Alps. Its running time is 162 minutes, almost three hours.

Fortunately, it is available at YouTube.

I won’t suggest you to watch a whole movie, as it may make you sleepy. But I want you to watch any scene for five to ten minutes. Especially, watch the scene of almost the end of Part II, around 1 hour 6 minutes. Try to watch monks sleighing without any equipment in the snow-covered Alps and to hear their laughter.

I could feel all the more keenly that we can find laughter in whatever conditions we may be.

I wish that you will have wonderful summer.

From your clea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