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개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 역사 관련 학술단체들이 과거 종군위안부에 대한 아베 총리로 대변되는 일본 정부 입장과는 상반된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이번 성명은 지난 6일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역사학자들은 일본군이 여성들의 이송이나 위안소 관리에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를 발굴해왔다”는 성명을 낸 데 이어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려는 아베 정부의 시도에 강력한 경고가 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또한 한겨레는 이 보도에서 세 곳(일본정부, 서구학자들, 일본 역사단체)의 입장을 도표로 정리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주요 핵심은 “강제성 여부”입니다. 여성들을 본인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끌고가 성노예화 했다는 것이 이번 역사학회 성명의 주 내용입니다. 반면 아베를 위시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일부 강제성은 있어지만 국가가 개입했던 사건이 아니라 인신매매라는 (어느 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비교대상에는 빠져있지만 일부 한국내 보수우익을 자처하는 인간들 가운데는 “자발적 의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강제성 여부”와 “자발적 여부”에 대한 생각들을 하다보니 일군의 여성들 이름이 떠오릅니다. 일제 식민통치 말엽에 실로 자발적으로 앞장서서 일제에 아부협력했던 사람들입니다.
모윤숙(시인), 임영신(교육, 정치가, 중앙여자대학(중앙대학교의 전신) 설립자), 박순천(교육, 정치가), 박인덕(교육, 언론인, 인덕대힉교 설립자), 김활란(교육, 언론인, 이화여대 총장), 노천명(시인, 언론인), 이숙종(교육자, 성신여자대학 설립자), 배상명(교육자, 상명대학 설립자)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1942년 1월 5일 친일협력을 위한 단체를 만들었으니 그 이름은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朝鮮臨戰保國團 婦人隊)>였습니다.
이 부인대는 바로 전해인 1941년10월 21일에 결성된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保國團) 산하 여성단체였습니다.
이 단체의 설립 취지문에 따르면, 반도민중(조선민)은 특별지원병 외에 병역에 복무할 명예를 가지지 못하므로 무한한 황은(일본천황)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국민운동의 강력한 하나의 기관으로 설립되었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강령을 통해 1.황도정신 선양과 사상의 통일, 2.전시체제의 국민생활 쇄신, 3.국민 모두의 노동보국, 4.국가우선의 원칙하에 저축, 생산, 공출 등에 협력, 5.국방사상의 보급 등을 내세우며 해방직전까지 일제에 자발적 충성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조선임전보국단원) 대부분이 해방후 대한민국의 주인공들이 됩니다. 해방후 부통령까지 지낸 김성수를 비롯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들 본인 및 그의 후손들은 대한민국 각 분야에 이른바 엘리트층을 이루며 대한민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세력이 됩니다.
또한 자유당이래 오늘날 새누리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당 이래 오늘날 새정치민주연합의 주도 세력들 역시 이들에서 비롯된 세력들입니다.
조선임전보국단 상임이사였던 김용주(金龍周)의 아들이 새누리당 현대표인 김무성입니다.
조선임전보국단원들은 해방 직전까지만해도 서슬 퍼렇게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을 외치며 황국신민(皇國臣民)이 되어야만 한다고 목청 높이던 자들입니다. 외세에 의탁해서 그 앞잡이가 되거나 하수인이 되어 민족의 이익을 팔아먹고, 동포들을 먹이 삼아 살찌우고 영달을 누리던 자들이었습니다.
해방 –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오늘.
그 조선임전보국단원가운데 중심인물이었던 김용주(金龍周)의 아들 김무성에게 한마디 던진 노건호를 향해 내뱉는 말들이 정말 가관입니다.
그 가운데 으뜸이 바로 “예의(禮儀)” 운운 아닐까합니다.
구태여 고 노무현대통령을 끌어 들이지 않아도, 일본 역사학회의 성명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