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5년 7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육군성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인 윌리엄 테프트(William Howard Taft)와 일본수상 가쓰라 다로(桂太郞)는 오랜 시간 밀담을 나눕니다.
그 밀담이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뒤인 1924년의 일입니다.
이른바 가쓰라-데프트 조약(Taft–Katsura Agreement)입니다.
당시 가쓰라가 한 말 가운데 이런 말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한국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전쟁의 논리적 결과이며, 이는 일본에 실로 중대한 문제”
“만약 전쟁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한국에 맡긴다면 한국은 또다시 다른 국가들과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 전쟁 이전과 같은 복잡한 상황을 재발시킬 것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상황의 재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모종의 확실한(definite)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904년 에서 1905년 사이에 있었던 러시아와 일본과의 전쟁은 한국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문제는 바로 한국에게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게 외교권(주권)을 쥐어주면 또 다시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이 참에 확실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화하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상호 날인란 제2차 한일협약(第二次韓日協約) 곧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지자 당시 세계에서 제일 먼저 한국과 외교적 관계를 단절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1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미국과 일본 바라기로 사는 대한민국의 엘리트에게는 이번 아베 신조 일본 수상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합의한 미일방위협력 지침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한 일일 터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미일 양국은 대한민국 주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거품을 물겠지만, 머지않은 날에 일본 자위대 제복을 입은 아이들이 명동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비단 나 혼자뿐일까?라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