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가는 나라, 미쳐가는 세상?

손님 – “그 뉴스 봤니?”

아내 – “무슨 뉴스?”

손님 –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일어난 거 말야.”

아내 – “음, 봤지요.”

손님 – “나라가 미쳐가고 있는 거 같아”

아내 – “……”

손님 – “차라리 한국으로 갔으면 좋겠어.”

아내 – “거제도로? 거기도 예전에 한국이 아닌데…”

손님 – “암튼,  미국은 미쳐가고 있어”

오늘 제 가게에서 한 손님과 제 아내가 나눈 대화랍니다.

Morris씨는 이제 제 가게 손님 가운데 유일한 한국전쟁 참전 용사입니다. 미군으로 복무하면서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손님들은 많지만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분들은 최근 수년 이래 모두 이 세상을 떠났고 Morris씨만 남았답니다.

그는 여든 여섯 나이에 비해 아직 정정한 편입니다. 손수운전은 물론이거니와 지팡이 없이도 걸음걸이가 그리 무겁지 않답니다.

저희 부부가 아무리 바빠도 노인들 이야기는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열심히 하는 까닭은 그 나이때에 부모님들이 계시기 때문일겝니다.

Morris씨는 한국전쟁 중에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답니다. 그이가 겪었던 당시 포로수용소의 이야기들은 저희 부부가 듣는 그의 단골 레파토리이기도 합니다. Morris씨가 이름 석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제도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입니다.

그 Morris씨가 오늘 미국이 미쳐가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린 까닭은South Carolina주 North Charleston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었습니다. 경찰의 단속을 거부하고 도망가던 Walter Scott이라는 흑인의 등을 향해 8발의 총알을 쏘아 그를 죽인 백인 경찰 Michael Thomas Slager에 행위를 대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분노한 것입니다.

사건 발생 초기 정당방위라는경찰과 경찰당국의 주장은 한 시민이 찍어놓은 동영상으로 하여 거짓으로 판명이 났고, 도망가는 피해자를 등뒤에서 정조준하여 살해한 것임이 드러난 일입니다.

아내로부터  Morris씨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백인인  Morris씨가 아닌 흑인인  Morrison 씨가 떠올랐답니다.

home-by-toni-morrison1Toni Morrison은  1993년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에 한사람입니다. 그녀는 지난 2012년에  “Home”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그 소설에서 24살 청년으로 등장하는 주인공Frank Money는 제 가게 손님 Morris씨와 동년배인 흑인입니다.

Frank Money 역시 한국전쟁에 참전합니다.

그가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 이유는 이  미국땅에서 흑인들이 겪어냈던 아픔 때문이었다고 작가  Toni Morrison은 이야기합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남부 조지아주 로터스 출신의 흑인 청년입니다. 그는 아주 어릴 적에 겪었던 일로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의 경험이란 한 흑인 남자가 백인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그렇게 생매장당한 흑인은 백인들의 놀이도구로 그렇게 죽게 된 사실을 알게됩니다.

백인들은 흑인 아버지와 아들을 싸우게 해놓고는 내기를 벌입니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말입니다. 그때 흑인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죽이라고.” 흑인 아버지는 결국 생매장을 당합니다.

작가 Toni Morrison는 1940년대에만 해도 여전히 일고나고 있었던 미국의 원시적이고 병적인 인종차별 현장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설속 주인공 Frank Money는 이런 병적인 사회로부터 탈출하고자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삶의 현장에서 단지 피부색이라는 판단 기준에 따라 누군가에는 심심풀이 놀이가 되고, 또 다른 누구가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노리개가 되어도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던 세상을 “미쳐가는 세상”이라는 생각없이 살아왔을 Morris씨가, 오늘날 공권력이란 힘을 빌어 도망가는 흑인 용의자의 등뒤를 향해 정조준하여 총알을 8발이나 발사한 백인 경찰을 보며 “미쳐가는 세상”이라고 한탄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미쳐가는 것일까?” 아님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 사이에서 하루를 보냈답니다.

Morris씨와 Morrison의 주인공 Frank가 겪여냈을 1950여년 그 전쟁통에서 일어났던  “국민방위군 사건”과  2015년 오늘  일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참사 사건” 사이의 연계 역시 그선상에서 일어난 발상이랍니다.

두가지 사건 모두 무지, 무능, 탐욕이라는 공통점들이 있지만 사건을 겪어낸 가족들의 행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 다름에서 희망을 보게된답니다.

무지, 무능, 탐욕의 바탕, 바탈까지 부끄럼없이 뻔뻔스럽게 드러내는 권력을 보면 “미쳐가는 것”이 틀림없어 보이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켜낸 꿋꿋한 지난 일년의 행태를 보노라면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는 생각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