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는 신인 야훼 하나님과 인간인 히브리(유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계약을 맺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러 계약이야기들 가운데 유명한 것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족과 맺는 계약이야기와 다윗왕이 통일왕국을 이룬 후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는 계약이야기입니다.
이 두가지 계약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중심 축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개의 계약이야기를 서로 상충 곧 부딪히는 개념이라라고 해석한 사람이 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이라는 미국의 성서학자입니다.
그는 다윗과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밑바탕에 깔린 생각을 “왕권의식(Royal Consciousness)”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다윗, 솔로몬과 그 후의 왕과 제사장들 중심으로 축복이 이어져 나가는 믿음과 소망을 바탕으로 한 계약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좀 더 쉽게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의 이야기를 풀어 쓰자면 이런 말입니다.
잘 사는 게 축복인데 잘 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고 그 왕권은 바로 신이 부여해 준다는 계약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선민사상 곧 신에게 택함을 받은 백성인 유대족에게만 그런 왕권을 부여받은 메시아가 등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계약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오늘날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이 이따금 벌이는 국제 무법자같은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종종 개독교 소리를 듣는 오늘날 한인 교회나 신자들이 “예수 천당”이라며 ‘괴롭고 힘든 이 세상보다 천당가서 잘 살자’는 삐뚫어진 신앙을 외치는 일도 바로 이런 계약 정신이 한몫하고 있다는 해석이 따를 수 있답니다.
잘 사는 축복을 위해서라면 왕권이라는 신과의 중간 매개자가 필요하고 그 매개자가 억압과 착취를 하더라도 그 힘을 신에게 부여받았음으로 정당하다는 신앙이 자리를 잡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계약은 무조건적으로 신이 이스라엘에게(특히 왕권에게) 내려준다는 계약입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는 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모세와 신과의 계약정신 바탕에는 “대안의식(Alternative Consciousness)”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에집트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준 하나님과 노예에서 해방이 된 히브리족과의 쌍방계약인 이 계약은 잘사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 더불어 함께 먹고 사는데에 초점이 있다고 합니다.
잘살게 해준다는 약속을 빌미로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매개자가 있는 계약이 아니라 올바른 정의와 공평이 강과 같이 흐르는 세상에 대한 계약이라는 것입니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은 이런 모세와 하나님과의 맺은 형태의 계약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상력 특히 예언자적 상상력(Prophetic Imagination)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그의 책 <예언자적 상상력(The Prophetic Imagination)>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물음은 자유가 현실적인지, 실천 가능한지, 실현가능한지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과 상상력이 왕권 의식에 의해 철저하게 공략당하고 흡수되어 버려서 대안적인 사고를 품을 용기나 능력까지 빼앗겨 버린 것은 아닌지 물어 볼 필요가 있다.
성취에 앞서 상상력이 와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거의 모든 것을 성취할 만큼 힘이 있지만,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무력하기도하다. 어떤 것이든 남김없이 성취할 수 있게 해 주는 바로 그 왕권 의식이 상상력을 억눌러 버린다. 상상력은 위험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따라서 모든 전체주의 체제는 예술가를 두려워한다. 지배 현실에 도전하여 싸울 수 있는 수단으로써 마지막 남은 것이 시적 상상력이다.>
부활주일을 보내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바라보면서 2015년 오늘을 사는 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사람의 예수쟁이로서 떠올려 본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입니다.
종말론적 삶을 강조하는 신 앞에서 예언자적 상상력은 사람이 그에게 화답하는 정말 멋진 찬양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