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남 3녀 외아들로 자랐답니다. 제 부모님께서는 올해 70주년 결혼기념을 맞게 되시는데 아버님께서는 손수 밥을 지어 드신 경험이 거의 전무할 정도로 어머님께서 수발을 들어오셨습니다. 이즈음에는 아버님께서 이따금 설거지 정도는 하시지만 말입니다.
이쯤이면 대충 짐작하실 일이겠지만 제가 부엌일을 할 수있다는 생각조차 안하고 산게 거의 50여년쯤 된답니다. 그러나 한 십여년 전부터 밥도 하고, 반찬도 하고 심지어 요리에도 도전하는 일들을 시작했었답니다.
그 무렵에 부엌에 드나들게 된 계기는 맛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손길도 예전의 그 맛이 나지 않고, 아내의 손맛에도 질려갈 무렵이었습니다. 그래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 손으로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두아이들과 아내가 맛있게 먹어줄 때 느끼는 기쁨이 제법 쏠쏠했답니다.
그러나 사는게 바쁘다보니 제가 시간이 날 때 그리고 제 맘이 내킬 때에만 했던 일이랍니다. 제 마음대로였던 셈입니다.
그러다 지난 해 어느 순간부터 종종 그냥 음식 만드는 재미에 빠진답니다. 김치 깍두기에서부터 각종 국과 찌개 나아가 왈 요리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재미의 폭을 키워나간답니다.
이런 낯선 제 모습을 보고 어떤 이는 “늙막에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쓴다”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남성 호르몬이 다되어 여성화되기 시작했다는 말도 하지만, 다 그 재미를 느껴보지 못한 탓이랍니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줄 때 느끼는 정말 쏠쏠한 재미를 느껴 본 사람은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겝니다.
그 재미란 바로 제 어머님께서 누려오신 평생의 재미요, 행복이셨답니다. 손도 크시지만 정갈한 서울 음식을 내 놓으시곤 식구들과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때 어머님께서 느끼셨던 재미와 당신 손 맛에 대한 자부, 정말 대단하셨답니다(아니 대단하시답니다. 아직도 종종 현재진행형인 때가 있으시므로)
이즈음 제 음식솜씨는 맛에 대해서는 어머니에게 차마 비교할 수 없는 아주 조악한 초보 수준이지만 느끼는 기쁨은 어머니에게 견줄만 하답니다.
올 겨울을 잘 넘기시던 어머님께서 요 며칠 감기 기운에 입맛을 잃으셨답니다. 그래 오늘 저녁엔 어머님 흉내를 내보았답니다.
제가 아플 때 어머님이 끓여 주시던 녹두죽을 끓여 본 것이지요.
음식에 재미 붙인 일은 제 삶에서 몇 안되는 썩 잘한 선택같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