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 – 3

제3세계 발전 수단으로서의 사회주의 실패는 보다 산업화된 국가들의 발전만큼이나 서구 맑시즘에 일대 타격이 되었다. 맑시즘이 사라진 뒤 중국은 자본주의적 경제기업 형태를 도입하게 되었고 급속한 경제발전 시기에 돌입했다. 아프리카와 그 밖의 사회주의 사회는 무너졌고, 나중에는 쿠바의 사회개혁이 아무리 성공했을지라도 그것이 소련의 대규모 경제원조에 의한 것임이 분명해졌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극동 지역 ‘호랑이들’의 급속한 발전이 제3세계 국가들도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리고 자본주의적 준거틀 내에서만 급격한 성공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일게다. –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에서

제 가게에서 바느질 일을 20년 넘게 도와주고 있는 Lou 아주머니는 제 또래의 라오스 출신 이민자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배관공으로 일하다가 몇 해 전에 은퇴를 했고 저와 친하게 지낸답니다. 제 가게나 집 배관 시설에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친구랍니다. 아직 담배를 끊지 못해서 Lou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고 사는 사내랍니다.

이들 부부의 집에는 커다란 사진 하나가 거실에서 손님을 맞는답니다. Lou 아주머니의 시아버지 곧 전직 배관공인 Ban의 아버지입니다. 사진속 인물은 마치 일본식 정장을 했던 고종임금 모습같답니다. 어깨에 술이 달린 제복에 가슴에는 각종 훈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랍니다.

Lou 아주머니의 시아버지는 1975년 라오스에 오늘날의 “라오 인민 민주공화국”이라는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라오스왕정 시대에 총리급 고관이었다고 합니다. 라오스가 공산화된 후, 망명하듯 전 가족이 미국 이민을 왔다고 합니다.

그런 Lou 아주머니는 격년에 한번씩 고국 라오스를 방문한답니다. 그녀의 고국방문이 가까와지면 저희 부부가 하는 일이 하나 있답니다. 바로 제 가게 손님들이 맡기고 찾아가지 않는 옷들을 정리하는 일이랍니다. 상태가 어떻든 입을만한 것이면 어떤 종류의 옷이든 이민백으로 하나 가득 Lou 아주머니의 여행 짐이 된답니다. 라오스에 있는 친지들에게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즈음 한국에 사는 이들은 Lou 아주머니가 가지고 가는 옷들을 보면 쓰레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옷들일 겝니다.

벌써 지지난 해던가, 고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 온 Lou 아주머니가 저희 부부에게 물었던 말이 있답니다. “아니 김씨 부부는 왜 그 잘 사는 한국을 떠나서 여기서 살아요?”하는 물음이었답니다.

그녀의 귀국 길에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중간 기착을 했던 모양입니다. 공항 바깥에 나가지도 않았지만 한국은 엄청 잘 사는 나라라는 그녀의 이야기였습니다.

“아니 김씨 부부는 왜 그렇게 잘 사는 한국을 떠나서 여기서 살아요?”라는 Lou 아주머니의 질문은 그녀의 입장에서 던질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겝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녀의 입장이라면 던질 수 있는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양키 고 홈”하면 빨갱이가 되는 세상에서 자랐습니다. 아니 그런 말조차 몰랐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깁 미 껌”, “깁 미 쬬꼬렛”이라는 말이 친근했던 세대입니다. 미국에서 건너 온 옥수수로 만든 옥수수 빵과 딱딱하게 돌덩이같은 우유 덩어리를 배급받아 먹으며 학교를 다녔던 세대입니다.

미국하면 천국 다음으로 좋은 나라쯤으로 알던 세대입니다.

제가 십수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친구 하나가 일찌감치 회사를 그만 두고 서울 인근 외곽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답니다. 자신이 스스로 무공해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당시 유행이었던 주말농장을 분양해서 나누는 그런 농장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연좌제그 농장을 방문했을 때 제 친구의 아버님께서 밭을 일구고 계셨답니다. 제가 인사를 드리자 반가히 맞아 주시던 친구 아버님께서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려, 미국 시민 되었지! 높아졌네 높아졌어 미국 시민 높은 것이여, 아무렴!”

친구 아버님은 6.25 한국전쟁 부역자로 낙인 찍혀 평생을 사시다 이젠 돌아가신 분이랍니다. 장남이자 제 친구의 형님이신 이는 참 사람 좋고 자상하신 분이었는데(그 이도 이젠 칠순이겠다는 생각을 하니 참 세월 빠릅니다.) 사범대학을 나와 학교 발령을 기다리다가 연좌제에 걸려 꿈을 접고 사셨답니다.

Lou 아주머니의 종한(從韓), 제 친구 아버님의 종미(從美)적 발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의 경험과 ‘좀 더 잘 사는 곳’에 대한 동경(憧憬)은 지극히 사람다운 자연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거꾸로 되었을 때, 일테면 라오스와 미국의 형편이 뒤바꿨을 때나, 한국과 미국의 형편이 뒤바꿨을 때도 이것이 자연스런 일이 될까요?

그렇게 뒤바뀐 환경에서도 종한(從韓) 또는 종미(從美)적 발언이나 사고가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한 일입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 것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대세는 가능 이전에 미친 짓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상일 겝니다.

이른바 종북(從北)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답니다.

  •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