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라시와 어떤 예언

<박대통령 “찌라시에 나라 흔들”> – 온라인 한국일보의 기사에 달려있는 작은 제목입니다. 그 기사의 큰 제목은 <朴, 찌라시·애국심 키워드로 결백 호소.. 의혹 본질엔 함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예산결산특위 위원들과 가진 오찬 회동을 보도한 기사입니다.

이날 박근혜대통령은 모인 이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시작하기 전,후에 짧게 글을 읽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읽는 글 속에는 ‘나라’라는 단어는 15번, ‘대한민국’은 3번, ‘국민’은 19번 씩을 사용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들을 자주 읽어 내려가면서 스스로 “오직 나라가 잘 되게 하는(일에 빠져)…”, “일생을 나라 걱정을 하며 살았다”는 생각에 도취되어 국민(아마 그녀는 백성이라고 생각할 듯하지만)들이 이런 자신의 애국심을 믿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아니면 연출자의 뜻이었던 듯)합니다.

어쩌면 그런 믿음에 스스로 빠져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찌라시전후 사정이야 어떠하던 그 기사가 제 마음에 꺼림직한 까닭은 “찌라시”라는 말 때문이었답니다. 저희 세대쯤만 하여도 익히 아는 일본말입니다. 바로 ‘ちらし(散らし)’입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광고를 위해 뿌려지는 인쇄물을 일컫습니다. 선전지, 광고지를 뜻하는 일본 말입니다.

무려 ‘나라’, ‘대한민국’, ‘국민’에 빠져 사시는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라 제겐 참 난감하게 들렸답니다. 그이나 저는 거의 같은 세대이거니와 해방후 세대랍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엄중한 직책을 맡고있는 그이가 쓰기에는 참 부적절한 낱말이거니와 그이나 저나 일본말이 그리 입에 베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그 놀라움이 컷답니다.

물론 그이가 5개 국어인가 6개 국어인가를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 아무 때나 자기 나름의 적절한 외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문득 그이의 아버지 시절이 떠올랐답니다. 저는 그이의 아버지 시대에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까 1974년의 일이랍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아마 박근혜대통령이 대학을 졸업했던 해일 것입니다. 그해 정월달에 이웃 일본국의 수상이었던 다나까 가꾸에이(田中角榮)는 동남아 5개국 친선방문 길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봉변을 당합니다. 일본대사관 앞에 게양된 일장기가 끌어내려지고 찢겨지고 짓밟히고 불태워지는가 하면 일제 자동차들을 불태우는 반일 시위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호텔방에서 꼼작없이 갇혀있다가 귀국을 하게됩니다.

1974년 1월 한국에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긴급조치 1호가 발동했습니다. 바로 박근혜씨의 아버지가 모든 국민의 자유과 권리를 제 멋대로 쥐락펴락할 수 있는 권한을 쥔 것이랍니다. 이후 5년 동안 박정희와 국민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설정되었고, 바로 그 시절에 박근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른바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며 국민에 대해 배웠답니다.

아무튼 그 해 1월 동남아 5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다나까수상은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을 받게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반일데모를 잊지 못했던 다나까는 만만한 게 한반도 남한 정부였던지 이런 말을 쏟아냅니다.

“과거 한일사이에 합방시대가 길었지만 그 후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긴 합방 역사 속에 한민족 마음 가운데 심어 놓은 것은 일본의 휼륭한 교육제도였다.  ….역시 경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국민생활 가운데 뿌리를 박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동남아 순방길에서 절실히 느꼈다.”

그 당시 한국인들의 공분을 자아낸 이른바 다나까 망언이라는 것이데, 애처롭게도 그 공분을 오늘까지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다나까의 말이 옳다는 이들이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는 듯하다는 생각이 결코 과한 것이 아닌 현실입니다. 다나까는 40년 전에 망언을 한 것이 아니라, 예언을 한 셈인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이 가져다 준 생각들입니다.

그날 밥상머리에서는 각하(閣下)라는 호칭도 이어졌다는 보도입니다.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이의 입에서 연이어 나온 호칭이라고 하는데, 그게  일본 국왕이 임명한 문무관리들을 부르던 말인지는 알기나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