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뉴욕시위

어제 큰 맘 먹고 뉴욕 맨하턴을 다녀왔습니다. 맨하턴을 오고가는 길이 꼭 큰 맘을 먹어야만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아직 인터넷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던 90년대 까지만 하여도 한국소식을 좀 제대로 듣거나, 신간서적이라도 한 줄 냄새를 맡으려고 틈나면 오고가던 길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서 한때는 한던 일 때문에 거의 매주 한차례씩 오고가던 길이었답니다.

큰 맘 먹었다고 운을 띄운 까닭은 이번에 맨하턴행을 하게 된 연유때문입니다. 다름아닌 세월호 특별법 제정촉구 행진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이민을 올 때 여느 이민들과는 다르게 제가 한 일이 하나 있었답니다. 대한민국 정부 앞으로 “나가서 절대 대한민국을 위해하거나 비방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물론 정확한 문구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는 내용의 각서를 쓴 일입니다.

그 조건으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 이곳 델라웨어라는 작은 마을에 살아 오면서 내 모국인 대한민국을 위해하거나 비방하는 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가능하다면 제 능력껏 이곳에서 더불어 사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알리기 위해 작으나마 노력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비록 큰 일은 하지 못했어도 이곳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아시안계 이민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작은 노력도 기울여 왔습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시위에 참가 권유를 받은 적은 여러번 있었어도 단 한번도 참여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쓴 각서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이미 여기에 뼈를 묻을 사람이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종종 글이나 말은 할지라도 그것은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 뿐이지 어떤 운동으로써 행위는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면 다시 보따리 싸서 한국행을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호집단 생수장 사건은 대한민국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참담한 사건은 어디에 살건 오늘날 한국어를 쓰거나 한국적 사고를 지닌 모든 이들의 문제입니다.

그 맘으로 다녀온 길이었습니다.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오늘은 사진으로 이야기 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 기차역과 시외버스 정류장(Greyhound)입니다. 조용하지요. 늘 이런 풍경으로 한산한 동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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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웨어 메모리얼(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념하는 다리)브리지를 건너며 찍은 델라웨어강입니다. 가끔 이곳이 한강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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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간 사십분만에 도착한 맨하턴입니다. 타임 스퀘어 광장 앞 도로에 엄청난 인파가 시위 중에 있었습니다. 이날 약 31만명이 참여했다는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였습니다. 마치 잔치 분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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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함께해야 할 시위대열에 참여하기 위해 바쁜 걸음을 옮겼습니다. 대한민국 뉴욕 총영사관앞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먼저 만났던 시위대열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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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열에 섞여 함께 걸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때 신촌에서 시청앞을 걸었던 이래로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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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내와 함께 맨하턴 거리를 거닌 이야기는 뒤로 미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