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잔치가 끝난 듯한 분위기입니다. 약 100시간에 달했다는 프란치스코 천주교황 방한 이후의 한국언론들 모습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의 의미를 꼽는 기사들도 차고 넘치거니와 말씀들이 누구를 향한 것이라는 나름의 해석들도 넘쳐납니다.
짧은 한국방문 기간동안 보여주었던 교황의 언행을 보고 들으며 저마다 자기 생각 한자락쯤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전혀 관심 밖이었던 사람들도 많았을 터이고, 애써 무시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교황의 방한과 그의 언행들이 행여 자기 밥그릇에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를 저울질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며, 자신들의 맺힌 한과 숨통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자로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터입니다.
날라리 기독교인(개신교)인 저는 어제 주일을 맞아 모처럼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두어 달만의 일인 듯 싶습니다.
예배순서가 거의 마칠무렵에 찬송을 부르다가 문득 프란치스코교황이 방한 중에 하셨다는 말씀 하나가 머리 속에 뱅뱅 돌았답니다. 그 연유로 잔치가 끝난 마당을 돌아보며 제 생각 한 자락 풀어 놓습니다.
먼저 어제 제가 교회에서 불렀던 찬송가의 내용이랍니다. 교회생활 조금 하신 분들이면 익히 잘 아는 찬송입니다.
<내 마음속에 참된 평화있어 주 예수가 주신평화/시험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아 과연 귀하다 나의 평화/ 주 항상 계시네 내 맘속에 주 가 항상 계셔 아 기뻐라/ 주 내 맘속에 계셔 위로 하신다 / 어찌 내가 주를 떠나 살까>
이런 내용의 찬송입니다.
사람 일반이 종교에 귀의하여 의지하고자하는 일차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가사입니다. 그리고 종교는 당연히 귀의한 사람들에게 평안과 안식과 평화를 보장합니다. 적어도 인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종교들 일반의 모습입니다. 원시종교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비록 날라리일지언정 기독교인인 저는 예수가 유일한 구세주로서 제게 평안과 평화를 주시는 분임을 정말 자랑스럽게 어느 자리, 누구에게라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다른 사람들이 저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거나 주장하지도 않거니와 그런 일에 시간과 정열을 허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아무튼 “주 예수가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신다”는 찬송을 부르는 일은 신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 믿음에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는 그 찬송을 읊조리며 영 편편치 못한 제 마음 한구석을 다스릴 수가 없었답니다. 바로 교황이 던진 평화에 대한 뜻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 <평화란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해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한다>
교황이 남긴 말씀들입니다.
그가 말한 평화는 신과 나와의 관계가 아닌 나와 이웃간의 관계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신과 나와의 관계란 믿음의단계에 있어 아주 깊은 곳에 이를 수도 있는 관계설정일 수가 있는 동시에 가장 저급하고 천박한 신앙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신을 쫓아가면 신앙의 깊이는 깊어질수 있지만 신이 나를 쫓게 만들면 천박하기 그지없는 장사속 종교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나와 이웃간의 관계 설정에서 신의 존재를 묻는 물음은 자못 경건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의 시작이고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바로 그 지점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바로 정의가 세워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너와 나 사이, 우리와 너희 사이에 정의가 이루어 진 결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세우는 일을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라는 조언을 덧붙인 것입니다.
대다수의 언론들이나 글쟁이들이 이런 언행을 풀고 간 프란치스코교황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들을 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잔치가 끝났습니다.
이제 교황이 말씀하신 평화에 대한 참된 뜻을 제대로 알려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서 있는 자리를 바로 보아야만 합니다. 그가 어느 순간 하늘에서 툭 떨어져 2014년 8월 한반도 남쪽에 현현했던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프란치스코교황이 2014년 8월 세월호 집단 생수장 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반도를 향해 평화라는 화두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천주교 반세기사(50여년)의 고뇌와 교황 개인이 걸어 온 77년사라는 고뇌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년 전(1962년 10월 – 1965년 9월)에 있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있었던 천주교의 일대 회개운동이 없었다면, 그의 신앙을 키워낸 아르헨티나라는 척박한 환경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은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정의의 결과물로 얻을 수 있는 평화”란 잔치 끝마당에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50년이 더 걸릴지라도 한국민들이 노력해 얻어야만하는 숙제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