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국(朝鮮民國) 3 – 양반(兩班)

개인의 삶이나 집단 또는 민족이나 국가의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아이고, 그 때 왜 그랬을까?’라거나 “만일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시점이나 순간들을 돌아보는 관점과 생각들은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집단, 민족, 국가 구성원들 그리고 그 전체의 의사결정 방법이나 문화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게 마련입니다. 

많은 경우에 그런 지나간 순간들을 어떻게 뒤돌아보느냐에 따라 또한 지나간 그 사건이나 상황들을 오늘 여기에서 어떻게 곱씹고 해석하며 오늘의 선택을 결정하는데 참고하느냐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 민족, 국가의 미래가 결정지어지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 한민족이 북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남으로는 대한민국으로 나누어져 있고 약 700만명에 다다르는 숫자가 중화인민공화국, 미합중국, 일본국 등을 비롯한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은 나라이름에 걸맞지 않게 민주주의도 아니거니와 인민이 주인인 나라는 더더우기 아닙니다. 남 역시 나라이름에 걸맞지 않게 크지도 않거니와 민(民) 곧 시민이나 국민이 주인은 아닌 듯합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단, 일본은 표면상 북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실제적으로는 국가로 인정하는 듯한 관계이지만)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로 인정하지만 남과 북만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두 나라는 서로 정식국호의 영문표기로 Republic of Korea(남),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북) 라고 남들이 불러 주기를 원하지만 세계인들은 그저 South Korea(남한), North Korea(북한)으로 부를 뿐입니다. 

남한인구가 약 오천만, 북한인구가 약 이천 오백만이라고 하고 재외동포수가 칠백만을 넘으니 약 1/10의 인구가 세계 다른 나라에 나가사는 셈입니다. 

중국에는 조선족, 일본에는 재일동포, 러시아에는 고려인, 미국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등으로 살고 있거니와 최근들어 호주 캐나다를 비롯한 남미나 유럽 등지 아프리카 오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약 팔천만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지난 사월 대한민국(남한)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 소식을 뉴스 보도를 통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남북을 비롯한 보도 통제나 왜곡보도가 심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정보 통신이 두절된 지역에 살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사건 보도와 처리 과정을 접한 한국인들이라면 2014년 4월 현재의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에 던져진 곧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실 이 물음,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은 어느 민족 어느 국가나 늘 고민하고 씨름해 온 물음입니다. 그 물음으로 각 나라와 민족들의 역사가 발전해 왔거니와 인류사가 바르고 건강한 쪽으로 발전해 온 것이고, 그렇게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2014년 5월 현재, “한반도 남쪽에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과연 진짜 나라일까?”라는 물음은 아주 건강하고 바람직한 질문인 동시에 같은 물음은 똑같이 북쪽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유효한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기위해 저는 약 250년 전의 일부터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250년전 결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양팔 주욱 뻐으면 손 끝에 닿을 저쪽 이야기일 뿐입니다. 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일 뿐입니다. 

“아이고 그 때 왜 그랬을까?”라는 물음을 시작해보는 첫 시점입니다. 약 250여년 전만 해도 다 거기서 거기였습니다. 중국(청나라), 일본(에도 막부), 미국(나라가 막 시작할 때), 유럽으로 따지면 문맹자가 80-90% 였던 때이고, 러시아는 나폴레옹에게 시달리던 때였으니 세계의 이른바 문명국들이 다 고만고만 했을 무렵이었다는 말입니다. 

그 때 조선왕국에 이산(李祘)이라는 이가 임금으로 있었답니다. 바로 정조(正祖)입니다. 

조선임금 27명 가운데 임금같은 임금 둘로 세종과 정조를 꼽지만 정조는 “아쉬움”이 많은 인물이랍니다. 바로 그 시절이 오늘날 세월호 참사의 한과 아쉬움의 시작이라 하여도 물의 근원을 그리 멀리 잡는 것도 아니랍니다. 

그 시절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구가 둥굴게 생겼고, 지구가 돈다는 주장을 한 첫번 째 한국인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조선인들은 땅은 평평한 것으로 믿고 있었으니 시대의 돌아이였던 셈입니다. 

그가 쓴 소설들 가운데 양반전(兩班傳)이 있습니다. 그 양반전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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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훌륭한 남인(南人)에게 잘 보인다면,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해쓱해지고,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되는 법니다. 방안에서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을 쌓아 학을 기른다. 

(비록 그렇지 못해서)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