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그저 늘 바쁩니다. 제가 쉰다고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답니다. 그런데도 주어진 시간보다 해야할 일들이 늘 많은 삶을 살고 있답니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느냐하면 그도 아니거니와, 결과도 늘 있는듯 없는듯 하답니다.
그나마 지나간 일들과 시간에 대해 그리 후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 성격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랍니다. 비록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 욕망에 따라 움직였던 일과 시간일지라도 말이지요.
언젠가 어느 스님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얻은 한 깨달음입니다.
“필요와 욕망을 분별할 수 있는 삶만 살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디까지가 제 삶에 있어 필요한 것이고, 어디서부터 내 욕망으로 끌고 가는 삶일까?
불가에서는 “내려 놓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비움”을 말씀합니다. 욕망을 비우는 것이겠지요. 그렇게 그렇게 비우다 더는 비울 수 없는 것이 “필요”이겠지요.
나는 어디까지 비울 수 있을까요?
출가(出家)한 사람이 아니니 아내와 아이들과 부모님들과 또 그렇게 얽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우선 확보해 두어야겠지요. 그렇게 우선 확보해둔 기본적인 필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꼽아 보는 것이지요.
그렇게 “필요”부터 따져보니 버려야 할 “욕망”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지요.
그래 이번엔 거꾸로 버릴 것을 먼저 버려 보는 것이지요. “욕망”을 벗어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컴퓨터 옆에 있는 종이 한 장 버리는 일에서부터 “망설임”이 먼저 인답니다. 필요를 꼽을 땐 별 시간이 걸리지 않던 것이 욕망을 꼽자니 그 놈의 “집착”이라는 놈이…..
<지갑을 버리고, 부모조차 버리고,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나를 따르라>했던 것은 예수이지요.
이 쪽으로나 저 쪽으로나 참다운 출가를 하기 전엔 “욕망”의 끈을 놓긴 어려운 일인가봅니다.
필요와 욕망을 흰 빨래와 검정 빨래 가리듯 가리울 수만 있다면 참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