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2
그 때 더러운 악령들린 사람 하나가 회당에 있다가 큰 소리로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읍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그래서 예수께서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고 꾸짖으시자 더러운 악령은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 갔다. 이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구나!”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예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졌다. – 마가복음 1 : 23- 28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이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요한복음 20 : 30 – 31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갈릴리로 나아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주로 한 일들은 치유의 기적을 행한 것입니다.
귀신들린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고, 문둥병, 열병, 중풍 등등의 각종 질병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함으로써 “예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마가 1 :28)”졌거나, “온 동네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 들(마가 1 : 33)”었고, “사람들은 사방에서 예수께 모여 들었(마가 1 : 45)”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 갈 수가 없었(마가 2 : 4)”거니와, “예수께서는 밀어닥치는 군중을 피하시려고 제자들에게 거룻배 한 척을 준비하라고 이르(마가 3 : 9)”시기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사람들이 예수에게로 몰려든 첫 번째 이유가 병고침의 기적을 행한데 있었다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에 이르면 미처 기록하지 못한 기적들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한은 이런 치유의 기적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까닭을 명확하게 정의합니다. 바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20 : 31)”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예수의 치유기적 사건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아가 행한 권능으로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실로 믿고 있듯이,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 전까지만해도 이런 기적 사건들을 있는 그대로 믿어야만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당연하고 마땅한 자세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약 삼백 여년 전부터 성서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하면서 이런 기적 이야기들을 전하는 자료들과 성서를 분석하기 시작하였고, 그런 연구를 통해 예수의 기적이야기들은 다큐멘타리 같은 기록 영화같은 것이 아니고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겨지기까지 여러 전승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테면 똑같은 예수의 기적이야기라 할지라도 마태가 전하는 이야기와 마가의 이야기 그리고 누가가 기록한 이야기들 사이에 서로 다른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그런데 군중 속에는 열 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앓고 있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보이느라고 고생만 하고 가산마저 탕진했는데도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병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러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군중 속에 끼어 따라 가다가 뒤에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다. 그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손을 대자마자 그 여자는 과연 출혈이 그치고 병이 나은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곧 자기에게서 기적의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돌아 서서 군중을 둘러 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누가 손을 대다니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군중이 사방에서 밀어 대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둘러 보시며 옷에 손을 댄 여자를 찾으셨다. 그 여자는 자기 몸에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예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 마가복음 5 : 25 -34
“마침 그 때에 열 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어떤 여자가 뒤로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돌아 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 여자는 대뜸 병이 나았다.” – 마태복음 9 : 20 -22
혈루병자를 고치시는 예수의 기적을 전하는 마가와 마태와의 차이입니다. 기적사건을 전하는 이런 마태, 마가, 누가의 차이점들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떤 모습이 가장 예수가 했던 원형에 가까운 것인가를 연구하는 일이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약 200백년간에 걸친 이런 연구들을 한군데 모아 집대성한 사람은 아프리카의 성인 슈바이쳐입니다. 그의 책 “ 예수의 생애 연구사(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라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이 책에서 성서학자들이 예수의 기적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유형들과 그 연구의 변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학문적인 연구 결과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으로, 이런 연구들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소개드리는 것으로 줄이고요, 아주 획일적으로 이렇다하는 결론은 아니지만 대충 예수의 기적이야기들의 변천에 대한 큰 틀에서의 같은 생각들이 있다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 내용들을 보면 기적이야기의 주도권이 예수에게 있고,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를 부를 때 ‘메시야’ 또는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사용되고, 고침을 받은 사람의 선교 이야기가 이어지고, 고침받은 사람의 신앙이 강조되는 것들 <아라이 사사꾸(荒井 獻)의 예수의 행태> 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래 예수의 기적이야기로 가까이 시간을 돌려보면 예수는 누군가에게 요청을 받고 기적을 행하며 기적행위의 주도권을 쥐지도 않고, 메시아나 그리스도의 호칭도 없습니다. 기적 그 자체보다는 기적을 통해 고침을 받은 ‘사람’에 대한 관심이 더 크고, 고침을 받은 자의 신앙이 전제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통해 치유받은 사람들이 원래 병들기 전에 그들이 있던 곳, 곧 그들의 가족이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예수의 기적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곧 기적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만나 보도록하겠습니다. 이들을 만나보는 일이야말로 에수의 기적 이야기를 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