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중간 – 말씀 2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7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 누가복음 16 : 13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 누가복음 7 : 41- 42 

집이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뜰에 앉아서 하느님을 명상하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세계를 다니며 아름답게 본 곳이 두 곳인데, 하나는 미국에 있는 내 동생 인영의 집 뜰이다. 집집의 뜰이 연이어진 넓은 공간을 나는 아름답게 보았다. 집집마다 명상하는 정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정치적 입장이기에, 나는 좌우 정책 스펙트럼 중심부에서 약간 우 쪽에 기운 보수주의자이다. 만인의 명상을 믿는 나는 좌단이 아니며, 약자를 편드니 우단은 아니다. – 이문영의 ‘겁많은 자의 용기’에서 

“나는 의당 해야 할 최소한의 발언을 했을 뿐인데  그 시절에  모두 17번 붙잡혀 갔고 3번 해직돼 총 9년 8개월 동안 봉급을 받지 못했으며 3번 구속돼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올해 초인 지난 1월 16일 향년 87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소정(小丁) 이문영(李文永)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이문영

1960년 4.19 혁명 때 서울시내 대학교수 가두시위 때 플랭카드를 들고 맨 앞에 섰던 양반이십니다. 1973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데리고 있던 연구소 직원들이 반정부 지하신문을 만들었다고 봉급을 주지말라는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의 압력을 뿌리쳤다가 교수직을 잃었던 양반이십니다. 

이후 1976년에 있었던 ‘3·1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된 이후 3번 구속되었고  오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시기도 했던 양반이십니다. 

그 분은 스스로 호를 ”소정(小丁)”으로 지은 까닭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내 호를 소정(小丁)이라고 정한 일이다. 작은 일꾼이 되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호였다. 여기서 정(丁) 자는, 어렸을 때 공부를 못한 나의 성적표에 적힌 갑을병정(甲乙丙丁) 중 정이었고 남들이 천히 여기는 백정의 정이었다. 나는 무서운 유신 정부 아래서 꼭 필요한 저항을 하는 최소의 한 일꾼, 바닷고기로 치면 고래는 당연히 아니고 삼치나 갈치나 조기도 아니고 이런 것들이 먹는 멸치도 아니고 멸치들이 먹는 부유 생물 플랑크톤이 되자고 나는 다짐했다.  그러나 회상컨대 내가 최소이기를 바랐던 이 무렵이 바로 나의 최고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덩치도 크셨고 눈도 크셨고, 말씀은 어눌하며 더디셨던 양반이셨습니다. 자상하기엔 이를데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이즈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자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만  한반도의 가능성이 열리는 문제이기도 한  “빈부의 문제, 교육, 노동, 세금, 행정” 등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그 분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유럽은 노동조합이 많고 또 힘도 세다. 대신에 운동을 평화적으로 최소화한다. 물론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운동을 최소화하게 하려면 정부가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 노동자의 자녀들이 대학을 거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자들한테서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 그들에 대한 저항은 약화된다. 말하자면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우리도 노동 쪽이 강해져야 하지만 실력행사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요약의 말씀에 강조하는 부분이 있답니다. “최소화한 실력행사는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말고 사수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 어르신의 행정학 강의를 한 학기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답니다. 

삼십년이 훌쩍 넘은 저 쪽 세월의 일이지만, 당시의 수업노트를 지금도 제가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 중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이문영선생님의 강의 내용입니다. 

“어느 사회건 철저히 소외된 그룹과 많은 것을 누리는 그룹이 있다. 문제는 적당히 누리면서 조금은 소외된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그 사회의 중간 그룹이다. 이 중간 그룹의 일반적 특성은 소수의 누리는 그룹속에 들어가려는  신분상승을 늘 꿈꾼다는 것이다. 

바로 이 중간그룹들의 선택이 그 사회를 규정한다. 여러분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중간그룹 이상의 삶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여러분들이 사는 세상을 건강한 세상으로 만들려면 중간그룹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소수의 누리는 그룹으로 나아가는 욕망과 비례한 만큼 아래 그룹 곧 소외된 그룹에 대해 관심을 가져햐만 한다.” 

그 어르신께서 하신 정확한 말씀 그대로는 아니지만 대충 뜻은 이러했답니다. 

자! 지금 저는 약 삼십 오년 전에 (제가 이문영선생님께 배웠던 시절은 1978 – 1979년 이었습니다.) 배웠던 “이문영”선생님네 대한 이야기와 그가 하셨던 이아기들을 글로 써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문영 선생님은 거의 60년 가까운 세월동안 가르치시고 글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 분의 대한 기억이나 생각이 누구나 다 저와 똑같을 수가 있을까요? 

100%  아니지요. 

일테면 당시 중앙정보부나 후에 안전기획부에서 일하셨던 이들이나 오늘날의 박근혜대통령을 비롯한 일단의 세력들의 눈으로 본 이문영선생님의 모습에 대한 그림은 제가 그린 것과 전혀 딴판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잣대을 돌아가신 이문영선생님을 빗대 말씀드립니다.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라!”가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이들에게 예수는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