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 – 기적 3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0

악령의 발작으로 그 아이는 불 속에 뛰어 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하였읍니다. 그래서 여러 번 죽을 뻔하였읍니다.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 주십시오.”  이 말에 예수께서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시자 아이 아버지는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 마가복음 9 : 22 – 24

개인적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들이 있어 한 주간 글쓰기를 쉬었답니다. 게다가 하루 걸러 내리는 눈이  일상의 시간들을 마구 헝클어뜨린 탓도 한 몫했답니다. 아무튼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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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대보름도 지나갔습니다. 제가 어릴 때엔 해마다 음력 정초이면 시장바닥이나 역광장이나  정류장 부근에 자리를 깔고 호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해의 토정비결을 봐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토정 이지함은 이상한 행동을 많이 했고  기지, 예언, 술수에 관한 일화를  많이 남긴 조선시대(1517-1578) 인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점보는 책 토정비결을 쓴 점술가 정도로 토정선생을 생각하지만, 그는 포천과 아산 현감을 지낸 목민관이었습니다.

특히 그가 아산현감으로 있을 때 걸인청(乞人廳)을 세워 관내에 있는 굶주린 백성, 아픈 백성, 노인들을 돌본 일들에서 이즈음 사회적 화두인 “복지”를 실현한 선각자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포천, 아산 두 고을 현감으로 있으면서 나라에 올린 상소문을 통해서는  당시 백성들의 어려움과 실상을 있는 그대로 소상히 적어 올리며 문제의 해결을 청원하는 백성 사랑하는 관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토정비결이라는 비결서를 그가 썻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후대 사람들이 만든 비결서에 토정 행했던 여러 기행의 힘을 빌리고자 그의 이름을 차용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답니다.

아무튼 알수없는 내일에 대한 길흉의 점괘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또는 행운이나 길운을 꿈꾸며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토정이 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뭐 하늘의 이치를 알아서 사람들의 신수를 말하겠소. 하두 졸라서 보아준 게지. 또 그네들은 내가 신수를 안보아 주면 마음에 안정을 얻지 못하고 다른 데 가서라도 기어이 신수를 보아야만 마음 편해질 것이니, 내나름대로 그들 사정을 들어 이리 저리 이야기하여 준 것 뿐이오.”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했다고 전해오는 말이랍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와 함께  예수의 기록을 자신이 쓴 역사책에 남긴 사람으로 알려진 로마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기원후56년 – 117년)는 그의 책 <역사>에서 로마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기적을 행한 일에 대해 이렇게 기록에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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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시력을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베스파시아누스 앞에 엎드려 한숨을 쉬며 자신의 눈을 고쳐줄 것을 간청했다.  – 중략 – 그가 청한 것은 베스파시아누스의 침을 자기의 뺨과 눈거풀에 문질러 달라는 것이었다. 또 어떤 사람은 손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 사람도 같은 신(세라피스 신)의 명령에 따라 베스파시아누스를 찾아와서 자신의 손을 발로 밟아 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 베스파시아누스는 이런 일들을 우습게 생각하고 거절했다. 그러나 병자들이 집요하게 매달리자 그의 마음도 흔들렸다.  – 중략 – 환자들의 간절한 바람도 있고 아부꾼들의 환호도 있어 용기를 가지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 중략 –베스파시아누스는 자신의 행운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며,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다고 판다하여 미소를 지으면서, 주변에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 앞에 섰다. 문제의 그 손은 금방 정상으로 돌와왔고, 앞을 못보던 사람에게도 새로이 광명을 찾아왔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해서는 이들을 볼 수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에도 그 때 그 사건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이 두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토정 이지함이나 로마 베스파시아누스황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바로 비결을 받고, 기적을 받은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어떤 기원(祈願)과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확고한 믿음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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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보다 먼저 광야에서 ‘회개와 세례’를 선포했던 요한이나, 당시 갈릴리를 근거로 해서 일어났던 갈릴리 유다의 반로마 봉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깊히 생각해 보면 세례요한을 찾아 나섰거나 갈릴리 유다와 함께 반로마 봉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함께 할만한 여건”들을 갖추고 있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받고 싶거나, 반로마 항쟁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지라도, 그 길이 원천 봉쇄된 처지로 살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나병환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환자 등 각종 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나 귀먹고 눈이 멀었거나 신체 이상이 있는 장애자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아무 관계없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야 했었고, 그것이 종교적으로 정당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적 규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기원 곧 소망은 병이 낫고, 장애로 부터 해방되어 자신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정상인으로서 남들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꿈과 소망을 이루어 줄 당시의 의술(醫術)은 그들이 기댈 곳이 못되었습니다. 값비싼 의약품들과 의술은 사회 상층부에 속하는 이들의 몫이었으며, 그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댈 곳은 오직 ‘기적’뿐 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런 이들을 향해 나아간 것이고, 또한 그들이 찾은 이가 바로 예수였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가 행했던 기적들은 어떤 것들이 있었고, 그 기적을 본 사람, 베품을 받은 사람, 전해들은 이들의 반응들은 어떠했으며, 기적을 행한 후 예수가 보인 모습들을 두루 훑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