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하나

어제 오늘 블로그를 새로 꾸민다고 시간을 좀 썻답니다. 그러다 눈에 들어 온 그림 하나입니다. 

massacre-in-korea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1951, 109.5 x 209.5 cm)이라는 그림입니다.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을 그린  게르니카(Gernica, 1937, 349 cm × 776 cm)외 함께 전쟁의 아픔과 참혹함을 그린 유명한 작품입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0년 10월17일부터 12월7일까지 황해도 신천군에서 벌어진 ‘신천대학살’ 을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피카소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쪽 아시아의 끝에서 전해진 참상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려낸 것이지요. 

신천대학살이란 당시 신천군 인구의 약 4분의1인 3만5383명이 희생된 끔찍한 사건으로, 미군의 소행으로 알려져 전세계 좌익이나 진보 운동 진영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랍니다. 

피카소는 1944년부터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공산당의 평화회의에도 참석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으로 1950년엔 스탈린 평화훈장까지 받은 사람이고 보면 이즈음 한국적 분위기로 보아서는 종북정도가 아니라 빨개도 아주 새빨간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의 주제 또한 한반도에서의 학살에 미군이 개입되어있다고 믿고 있던 프랑스 공산당이 제안한 것이었으니 이 그림에서 총칼을 겨누는 군인은 당연히 미군을 암시하는 것이었을 겝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탱크로 밀고 들어왔을 때,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거리에 이 그림을 들고 나가 소련제 탱크에 숨진 동료 시민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했다는 것이지요. 

전쟁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라는 피카소의 생각이 담긴 그림이라고 합니다. 실제 그림을 보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갈리는 것입니다. 

무릇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는 세상이겠지요. 

1951년부터 따져도 지금 몇 년째 인가요? 

지난 일을 잊지않되 어떻게 간직하느냐가 내일을 설정해 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며 증오의 편가름을 이어가는 일들은 지난 전쟁보다 더욱 나쁘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