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 – 전야(前夜) 1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 

박사들이 물러 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에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 주었다.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에집트로 가서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에집트에서 불러 내었다”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렸다. – 마태 2 : 13 – 16, 공동번역에서 

이제 이천 여년 전 유대 광야에서 젊음을 태우다 간 사내 세례요한과 갈릴리 해변 마을을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 이야기에 온 몸과 맘을 던졌던 사람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광야, 갈릴리, 세례요한, 예수의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려면 먼저 몇가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당시 광야에 나갔던 사람들, 갈릴리 해변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광야, 갈릴리, 세례요한과 예수와는 아무 연관없이 그저 그들을 바라 본 사람들 등등의 모습들을 먼저 알아 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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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사회상을 좀 알 필요가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에서입니다. 이즈음은 너나없이 다 제 뿌리가 양반인양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따지고 보면 양반의 후손들 별로 안된답니다. 오늘날에야 돈과 권력이 곧 양반인 세상이지만 그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종종 뿌리를 따지곤 하는 것이지요. 

조선시대말사회가 아주 문란해서 양반을 돈으로 사고 파는 세상이 되었어도 그 숫자는 전체 인구의  5%를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답니다. 

“서기 1910년의 호구조사에서도 확인되는데 총 가구(家口) 수 289만 4777호 가운데 양반이 5만4217호로 전체 인구의 겨우 1.9%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 충청남도가 충남 전체 가구수의 10.3%로 가장 양반이 많고 충북(4.5%) 경북(3.8%) 서울인 한성(2.1%) 그리고 전북(1%) 순 이었다. 여타 도는 모두 1% 미만이고 양반이 많았던 고을은 경북 경주군(2599호), 충남 목천군, 경북 풍기군, 충남 공주군 순 이었다. 경상북도와 충청도, 한성에 양반들이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도 인구의 5%를 넘지 못했다.” 

다시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보지요. 조선시대 양반, 상놈 따지기 이상으로 신분을 따져 묻던 시대였답니다. 혈통이 어떤 혈통이냐가 매우 중요한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기준은 뭘로 밥먹고 사냐? 곧 직업의 귀천을 매우 중요시하던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당시의 시대상도 좀 알아야 세례요한이 왜 그 때 그 말을 했고, 예수는 왜 그 때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이해가 좀 정확하고 빠르게 다가오겠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주 쉬운 예를 하나 들지요. 누가복음을 쓴 누가의 직업은 의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 의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똑똑한 사람’들이 ‘공부 잘해서’ 가질 수 있는 직업으로  ‘돈 잘 벌고’,  ‘안정적인’,  ‘때론 사회적으로 존경까지 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이 크게 엇나간 정의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 유대사회에서의 의사란 ‘가정 휼륭한 의사라도 지옥으로”갈 뿐이고, ‘의사란 도둑과 같은 직업일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는 천대받는 직종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지요. 물론 돈은그 당시도 좀 벌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천대받는 직종으로 낙인 찍혔는가 하면 첫째는 의사를 믿게 하고 하나님을 찾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고, 두번 째는 부자들에게는 잘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멸시하고 잘 봐주지 않는다는 것,  세 번 째는 의사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죄 지은 자들 뿐이라는 것이랍니다(당시에는 병은 곧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던 시대였으니까요). 

이게 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앞으로  제가 예수와 바울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인용하게 될 요하임 예레미아스(Joaehim Jeremias)라는 사람이 쓴 책  “신약성서시대의 사회경제사 연구 – 예수시대의 예루살렘”이라는 책과  잔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 쓴 책 “역사적 예수”에 나오는 당시 시대상이랍니다. 

이런 저런 뜻으로 예수 이야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두 명의 헤롯 이야기 –  곧 성서에 나오는 동방박사를 만나고 난 뒤 두 살 미만 갓난 아이를 다 죽인 헤롯대왕과 세례요한과 예수를 죽인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 – 와 당시 로마 총독들의 이야기를 먼저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경제적인 상황과 사회적인 상황들을 대충 짚어 본 후에야 광야로 나가 세례 요한을 만나 보려고 합니다. 

“권력을 움켜 쥘 때는 여우처럼, 권력을 행사할 때는 호랑이 처럼, 그러나 죽을 때는 개처럼…” 살다 간 독재자들의 이야기는 동과 서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넘쳐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그 흉내를 못내 안달하는 권력자들이 숱하고요. 

그런 인물 가운데 전형적인 사람이 바로 헤롯대왕이었습니다. 헤롯이 임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희생된 이스라엘 사람 숫자가 10만 명이 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답니다. 

그 헤롯 이야기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