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 1세- 전야(前夜) 2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4 

헤롯은 격정의 노예가 되어 모든 인간을 짐승같이 취급한 야만스러운 인간이었으며 의(義)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으나 그 누구보다 운이 좋은 인물이었다. 왜냐하면 일개 평민으로서 왕의 지위까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위험에 직면했음에도 그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장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롯 자신은 적들을 물리쳤으므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의 가정과 자식들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는 매우 불행하였다. –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17권 8장에서 

권력에 대한 욕망과 의지로는 당대 최고였으나 정통성이 허약했던 헤롯왕에 대한 이야기들은 유대의 기록 뿐만 아니라 로마쪽 기록에도 별난 인물로 전해져 내려옵니다. 

헤롯왕(이하 헤롯 1세) 말년의 모습에 대한 기록으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 소개드립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입니다. 

그가 병이 들어 이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답니다. 자기가  다스리던 유대에서 평생해  온 일을 생각해보니 자기가 죽은 다음에 유대 백성들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기는 커녕 박수치고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 헤롯1세는 전 유대에 유력한 인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모두여리고로 모여라!”라고 말입니다.(당시 헤롯1세는  여리고에 거주했답니다.) 

헤롯1세의 명령이기도 하고 전 유대에 내린 명령인지라, 헤롯1세왕 밑에서 완장차고 행세했던 이들이 모두 여리고로 모였답니다. 행여 눈밖에 나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인 유력한 유대인들을 그 자신(헤롯1세)이 세운 로마식 대형 경기장안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 살로메와 매제 알렉사스를 불러 명령을 내립니다. “내가 죽거든 경기장에 가둔 모든 유대의 유력인사들을 모두 죽여라. 내 마지막 길에 두 가지 큰 기쁨이 될 것이다. 하나는 내 유언이 그대로 집행되어 곧 죽어서도 왕이 되는 기쁨이요, 두번 째는 죽은  유대인들의 가족들이 모두 통곡을 할 것이니 전 유대가 울음바다가 될 것이고 그 울음 속에서 내 장례식이 거행되는 기쁨이다.”라는 명령이었답니다. 

이런 헤롯1세를  이용한 것은 로마였고, 헤롯1세는 또한 로마를 적절히 이용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로마의 입장에서는 식민지를 조용히 다스릴 수 있는 완장찬 똘마니가 절대 필요했던 것이고, 로마의 완장을 차고 유대 지방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이 헤롯1세였습니다. 

06._하나님의_성전_페이지_6_philosophy78

그의 재능은 그의 아버지인 안티파트로스에게서 물려 받은 것이었습니다. 강자 곧 로마에게는 온갖 아부와 뇌물로 신뢰를 얻고, 약자인 유대인들은 철저히 힘으로 억누르면서도 적절히 필요한 것들을 자신이 주는 것처럼 포장하는 기술이 뛰어 났던 것입니다. 

이제 몇가지 실례를 들어봅니다. 

그이 아버지 안티파트로스로가 로마에 아부와 뇌물를 주고 받은 로마 식민지 유대 총독 자리를 두 아들에게 넘겨 줍니다. 첫째인 파자엘은 예루살렘 지역을 둘째인 헤롯1세에게는 갈릴리 지방을 넘긴 것입니다. 이 때 갈릴리 지방에서는 반(半)유대인인 헤롯에게 거센 저항을 합니다. 히스기야라는 민중 지도자를 중심으로 반기를 들자, 헤롯1세는 이들을 무차별 학살을 합니다. 

이런 헤롯1세의 만행에 분노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전 유대인들이 로마에 진정서를 올리고 헤롯을 탄핵해 달라는 청원을 올립니다. 헤롯은 엄청난 뇌물로 로마의 실권자들을 매수해 버립니다. 이후로도 헤롯1세가  34년 동안 로마의 대리인인 유대의 왕 노릇하며 이런 유사한 일들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치적들도 만만치 않게 많답니다. 

그이 삶과 그의 치적을 짧게 정리해 봅니다. 

첫째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일지라도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출신이 반쪽 유대인이라는 약점을 가리기 위해 제사장 가문의 딸과 결혼을 하고, 필요에 따라 그 아내는 물론 장모와 자식까지 죽여없애기도 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권력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아무도 모르게 잡아 가두고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한 인물입니다. 정통성이 허약했던 그는 늘 유대인들의 반란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둘째 그는 오늘날 통곡의 벽으로 유명한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비롯하여 예루살렘성의 수로(水路)건설 등 괄목할만한 토목공사와 건축물들을 남겼습니다. 

세째 유대인들의 전통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로마를 설득하고, 이 일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일테면 유대지방에서 통용되는 로마화폐에는 시이저의 초상을 넣지 않도록 로마를 설득해서 실제 성과를 거둔 일 등이 그러합니다. 

네째 예루살렘은 유대 중심으로 사마리아는 로마 중심으로 로마의 입 맛에 맞게 변형시킨 일입니다. 사마리아를 이름까지 로마 황제의 이름으로 바꾸고 아폴로 신전을 세우고, 경기장을 세우고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옷을 벗고 경기를 벌이는 일들을 서슴치 않고 벌인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로마의 입맛에 맞게, 유대인들은 적당히 구슬려가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뛰어난 재능을 보인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죽기 직전 자신이 다스리던 땅을 삼등분하여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미처 로마의 승인을 얻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그의 아들들은 더 이상 왕의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고 분봉왕으로 불리웁니다. 그 가운데 갈릴리 지방을 차지하게 되는 헤롯2세 곧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헤롯1세의 대한 이야기로는 동방박사를 만난 후, 동방박사가 헤롯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자,  당시 2살 미만의 아이들을 모두 죽였다는 이야기와 믿음에 대한 제 생각은 나중에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할 때 몰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례요한의 목을 따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받게 한 헤롯2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