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1
비록 기독교의 기원이 갈릴리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운동의 중심은 곧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보다 후대에 속한 신약 성서 책들은 실제적으로 갈릴리에서의 기독교의 존재와 그 운명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무시는 초기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되었으며 실로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 엘리옷 빈즈(Elliott- Binns)의 갈릴리 기독교(Galilean Christianity)에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세례요한과 결별한 후)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나가시기 전에 예수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행보를 마태, 마가, 누가는 한목소리로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비교적 짧게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가복음 1 : 12 – 13
반면 마태와 누가는 광야에서 예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비교적 소상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마귀의 세가지 유혹 곧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 복음서가 똑같이 전하는 사실은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40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몇군데 등장합니다. 인생을 40년 단위로 살았던(왕자 40년, 유목생활 40년, 히브리 지도자 40년) 모세가 히브리백성들과 애굽을 탈출한 후 광야에서 지낸 세월이 40년입니다. 또한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으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출애굽기 34 : 28)
엘리야 역시 광야에서 40일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열왕기상 19 : 1 – 8) 그리고 교회사시대에 이르러 지키게 되는 사순절기의 40일이 있고, 오늘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예수의 광야 생활 40일이 있습니다.
이상의 모든 40일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전(前)과 후(後)의 상황이 완전히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40년 단위 인생은 그 때마다 매번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 의미 등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모세의 40일 금식 사건의 전과 후 사이에는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 백성 간에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십계명을 부여받는 시기였습니다. 히브리백성의 40년 전후 상황은 노예상태로 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상태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엘리야의 40일은 도망자 신세에서 야훼 하나님의 명을 받고 용맹스럽게 앞으로 전진하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순절은 고난과 수난, 처절한 패배인 듯한 상황에서 부활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예수의 광야 40일 준비기간은 옛 세상이 새 세상으로 바뀌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0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과 후가 완전히 뒤바뀌는, 노예에서 누구나 신 앞에서 홀로 서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독립된 인격으로, 절망적인 도망자 신세에서 삶의 충만한 의미와 의욕으로 넘쳐나는 활기찬 삶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아픔과 한계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삶에서 죽음까지도 이기고 부활하는 기적을 맛보는 그 뒤바뀜 현장의 의미를 되새김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굶주린 가운데 마귀에게 받은 세가지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 요세푸스가 전하는 1세기 곧 예수 전후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몇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파두스(Fadus)가 유대총독으로 있을 때(기원 후 45-46년 경) 튜다스(Theudas)라는 한 마법사가 수많은 군중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튜타스는 자신이 선지자라고 무리들을 속이면서 명령 한 마디로 요단강을 갈라 걸어서 강을 건너게 해줕테니까 모두 요단강으로 모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에 많은 무리들이 그의 말에 현혹되어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5장 1”
“한편 유대인이 처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유대 전체가 강도와 사기가 들끓는 범죄의 소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벨릭스 총독은 매일 수많은 강도들과 사기꾼들을 체포하여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8장 3”
“이 강도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온갖 악과 불의로 가득차게 되었다. 게다가 사기꾼들과 협잡꾼들은 자기들이 직접 이적과 표적을 행할 터이니 광야로 나가자고 백성들을 현혹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8장 6”
요세푸스가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 강도떼들과 사기꾼들이 들끓고, 각종 기적과 이적들을 행한다는 가짜 예언자난 거짓 메시야들이 넘쳐 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시대는 바로 신약성서들 곧 바울서신들을 필두로 하여 복음서들이 막 쓰여지던 때였습니다.
요세푸스가 강도나 도둑이라고 적시한 사람들은 거의 열심당(젤롯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요세푸스는 로마로 귀화한 유대인입니다.) 특별히 주시해야 할 것은 가짜 예언자들, 거짓 메시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각종 기적과 이적들을 미끼로 하여 메시야를 기다리며 유대의 독립을 갈망하던 백성들을 광야로 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참혹한 죽음 뿐이었습니다.
로마군들은 위에 튜다스의 말에 속아 요단강가로 모여든 유대백성들을 반역을 도모한다고 하여 몰살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튜다스를 전후해서 등장했던 여러 가짜 예언자들과 거짓 메시야를 중심으로 모였던 유대인들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가짜 예언자들과 거짓 메시야들은 당시 백성들의 절실한 요구와 바램을 자신들이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다며 기적과 이적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번번히 속았고, 그들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은 세 가지 시험들은 바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절실했던 문제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바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는 예언이었으며, 그 예언의 성취자가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확신의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그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