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여든 번 째 이야기)
성전이 함락되어 로마군들이 들어와 성전 안에 있던 자들의 혀를 자르는 상황에서도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들은 한 발자국도 꼼작하지 않았다. – 중략 – 이어서 큰 살육이 일어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로마인의 손에 죽고 일부 유대인들은 서로 살해하였다. – 중략 – 이에 사망한 유대인들은 모두 12.000명이나 되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제14권 3- 4장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인 1948년 5월 15일, 유대인들은 독립국가 이스라엘을 수립합니다. 이는 기원전 63년 유대인들의 마지막왕국였던 하스몬왕조가 로마에 의해 멸망한 때로부터 따진다면 실로 2011년 만에 다시 세운 유대국가인 셈입니다.
오늘은 유대인들이 세웠던 마지막 왕국인 하스몬왕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왕국을 거쳐 남북분열왕국시대를 지나, 약 450여년 동안의 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유대인들의 왕국인 하스몬왕조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것은 기원전 142년의 일입니다.
하스몬왕조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반드시 보아야 할 성경 두군데를 찾아보도록 하겟습니다.
첫째는 사무엘상 13장입니다. 기원전 1000년 경 사울이 유대왕국을 세우기 직전, 블레셋과 일전을 앞두고 있던 때의 일입니다. 블레셋과 대적하려고 모인 이스라엘인들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블레셋 군대를 보자 뿔뿔이 줄행랑 치기에 바빳습니다. 이 때 사울은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려고 합니다. 야훼 전통에 따라 전투를 치루기 전 야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되는데 제사를 집행할 사무엘사제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칠일동안이나 꼬박 기다렸습니다. 두려움에 휩싸인 사울의 군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수가 줄어 들고 있었습니다. 급박한 사울은 자신이 직접 야훼 하나님께 제사를 올립니다. 이 일로 사울은 야훼의 노여움을 사게되고 결국 자신의 왕조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윗에게 왕위를 뺏기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두번 째는 역대기하 26장입니다. 남왕국 유대의 왕 웃시야는 역대 남왕국 왕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왕이었습니다. 잘 나가던 웃시야가 단 한순간에 야훼의 버림을 받고 문둥병자가 되어 쓸쓸하게 역사에서 사라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란 바로 제사장을 제끼고 왕 스스로 성전 본관에 들어가 제단의 향을 짚혔던 것입니다. 기원전 750여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유대인들의 역사적 사실과 경험을 되새기며 하스몬 왕조 시대로 들어가 봅니다.
헬라 셀류큐스왕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왕의 가혹한 유대 탄압 정책에 대항하여 들고 일어난 마따디아에게는 아들이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가띠라고 불리던 요한, 다씨라고 불리던 시몬, 마카베오라고 불리던 유다, 아와란이라고 불리던 엘르아잘, 그리고 아푸스라고 불리던 요나단이었습니다.
기원전 166년에 마따디아가 죽자 유다 마카베오가 아버지의 뜻을 승계하여 독립전쟁을 이끌게됩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일시 승리를 거두며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하누카라는 축제를 벌이기도 하지만 이내 광야로 밀려나고 맙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반 헬라파 유대인들을 하나로 결집시킨 사람입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전쟁 통에(엘리사 전투) 죽고 그의 동생들인 요나단과 시몬이 투쟁의 선봉을 이어가지만 광야로 쫓겨나 게릴라전을 이어가는 형편이었습니다. 이 때 형제 가운데 맏이인 요한이 에돔(이두메) 지역 나밧족속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살해됩니다. (나중에 등장하는 헤롯대왕은 바로 이 곳 에돔(이두메) 출신입니다.)
요나단과 시몬이 이끄는 저항군을 살려준 것은 다름아닌 적들 곧 셀류커스왕조였습니다. 유대를 탄압하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왕이 죽자 서로가 죽은 왕의 아들임을 자처하며 자기가 왕이라고 우기는 두 사람이 쟁탈전을 벌입니다. 알렉산더 발라스라는 사람과 데메트리어스라는 이였습니다. 이 두 세력을 적절히 잘 이용하면서 요나단과 시몬은 다시 세를 키우게 됩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다시 입성한 요나단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바로 셀류커스 왕위 다툼을 벌이던 두 세력들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들의 청을 교묘히 잘 이용하면서 한쪽으로부터는 유대의 통치권을 인정받고, 또 다른 한 쪽으로부터는 대제사장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유대에 대한 정치, 종교 양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그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한 것은 요나단의 뒤를 이은 그의 형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은 스스로 부르기를 “위대한 대제사장, 전략가, 그리고 유대인의 맹주”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스몬왕조를 연 시조가 됩니다.
이 새 왕국의 건설은 외부적으로 헬라 왕국인 셀류커스왕조의 내부분열과 새롭게 떠오르는 세력인 로마의 힘이 아직 미치지 않았던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독립왕국인 하스몬 왕조가 세워졌지만 이제 문제는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이제껏 반헬라 유대 독립운동에 힘을 합쳐던 사람들이 서로 파당을 지어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가장 큰 요인은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한 일에 반발하는 세력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옛날 사울왕도 웃시야왕도 제사 한번 잘못 집행했다는 이유만으로 벌을 받았는데, 왕이 제사장 권력을 송두리채 가져 간다는 것은 유대 전통이 몸에 배인 세력들, 특히 그 전통 때문에 기득권을 누렸던 세력들의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다윗왕 이래 누가 임명을 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습되는 자리였고, 특별한 혈통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비록 돈을 주고 사고 팔더라도 그 혈통 가운데 이어여 온 것입니다. 바로 사독가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이나 시몬이나 사독가문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운데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구원이 없다며 등돌리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공동생활을 영위하며 빛의 아들이 나타나길 고대하며 격리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 엣세네파라고 합니다.
또 한 부류는 대제사장 및 제사직을 이어오던 종교적 귀족계급이자 헬라화된 사두개인들입니다.
마지막 한 부류는 분리된 자들이라는 뜻을 지닌 바리새파입니다. 이들은 제사장 계열이 아닌 평민 출신들이지만 유대 전통과 율법에 충실한 무리라고 스스로를 일컫고 일반 백성들과 분리된 삶을 사는 집단이었습니다.
에세네파는 광야에서 굴을 파고 자기들끼리 살았음으로 이후 하스몬 왕조의 왕권이나 권력 다툼과는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자기들끼리의 파당을 이루며 이후에 일어난 왕권과 권력 다툼에 중심이 되어 부침을 겪게 됩니다.
왕이 된 시몬은 기원전 135년 사위가 다스리는 여리고성을 방문합니다. 모처럼 사위와 함께 술 한잔 나누려던 시몬은 사위 아브보스의 칼에 맞아 죽습니다. 사위의 반란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시몬의 처와 두 아들도 죽습니다. 아브보스의 반란은 시몬의 남은 아들 요한 힐카누스에 의해 실패로 끝나고 힐카누스가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됩니다.
힐카누스는 하스몬왕조의 전성기를 이룹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처럼 전 세계를 유대왕국으로 만들고 유대교로 세상을 지배할 꿈을 꾸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왕성한 정복전쟁을 벌려 옛날 다윗과 솔로몬이 지배했던 지역을 거의 손에 넣습니다. 이 때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그리심산에 있는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을 부숩니다. 또한 그의 큰 삼촌인 요한을 죽인 에돔(이두메) 땅도 정복하고 그 곳 사람들을 모두 할례를 받게하고 유대교로 개종을 시킵니다. 이 때 개종한 에돔(이두메) 사람의 후손들 가운데 헤롯대왕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 때에 바리새파를 중심으로 한 하시딤세력이 대제사장직은 율법대로 사독가문에서 세우고 왕은 대제사장직을 내놓으라고 주장하다가 된서리 맞아 숙청을 당하고 사두개인들이 권력의 중심에 들어섭니다.
31년 동안이나 다스리던 요한 힐카누스가 죽고 나서부터는 치열한 왕위 승계다툼으로 피흘림이 그치지 않습니다.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아리스토불로스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감옥에 가두고 동생 하나는 죽이기까지 합니다.
일년 뒤 그가 죽자 그의 아내 살로메가 왕위에 오르는데 이 여자가 아주 웃깁니다. 여자로서 왕위에 올라보았자 대제사장을 겸임할 수가 없으니 죽은 자기 남편이 감옥에 가두었던 시동생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를 감옥에서 풀어내어 그와 결혼을 하고 야나이를 왕위에 올려 놓는답니다. 야나이는 살로메보다 14살 아래였답니다. 아무튼 이 이상한 부부들 시대에 유대왕국은 또 다른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그런데 사건은 내부에서 또 일어납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바리새인들이 야나이왕에게 대제사장직을 내놓으라고 데모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촛불들고 함성만 지르는 데모였으면 좋으련만 제사를 집행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야나이왕에게 나무 열매 등을 투척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크게 화가 난 왕은 이 때 바리새인들 약 6000명을 죽여 버립니다. 나중에는 바리새인 800명을 동시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인답니다.(여기서 십자가 처음 등장) 결국 무수한 바리새인들이 광야로 도망가거나 에세네파와 합류하기도 합니다.
야나이가 죽자 다시 부인 살로메가 왕위를 이어받고, 이번엔 바리새파를 다시 다둑여서 끌어드리고 사두개인들을 내칩니다. 왜 그랬느냐하면 여자가 대제사장직을 맡을 수 없음으로 아들인 힐카누스 2세를 대제사장에 앉혔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들어 준 셈이 되었고 그들을 자기 권력의 수족으로 부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살로메가 늙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자 그의 두 아들인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와 왕위 쟁탈전을 벌리는데 이 때 바리새파는 힐카누스 2세 쪽에 붙고, 사두개파는 아리스토불로스 2세 쪽에 붙어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이들 싸움은 어느 한 쪽의 승리가 아니라 서로 권력을 나누어 갖는 합의로 끝나게 됩니다. 종교권력인 대제사장은 힐카누스 2세에게 정치권력인 왕은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차지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 권력을 오래 쥐고 있지는 못합니다. 드디어 하스몬 왕조 마지막 날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인 일만 이천 명을 학살한 때 곧 마지막 유대인 왕국 하스몬왕조가 무너진 것은 기원전 63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예루살렘으로 로마군대를 이끌어 들이는데 지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에돔(이두메) 사람 안티파트로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헤롯대왕의 아버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