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을 묻는 당신에게

오늘은 유다인들이 세운 마지막 왕국 하스몬왕조 이야기와 그 당시에 생긴 유다의 각 종파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그리고 산헤드린과 예수 시대의 젤롯당에 대한 연원과 그들의 특징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중간사를 마무리하려고 하였답니다. 

글을 쓰려 컴퓨터 앞에 앉아 먼저 열어 본 제  이메일함 에 쌓여 있는 메일 하나가 오늘 저녁 제 시간 계획을 엉크러 놓았답니다.  한동안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오늘 연재 글은 좀 쉬고, 예수 시대 이야기를 짧게 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 저녁 시간 계획을 흩으려 놓은 이메일은 이제 쉰 중반으로  들어서는 후배가 이즈음 심경을 털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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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한국사회의 화두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말이 이 친구의 맘을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묻는 의도는 사뭇 다른 것이었습니다. 

후배  아버님의 갑작스런 병원 출입과 2013년 한 해를 돌아보며 힘들었던 시간들을 되뇌어보니 안녕치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모양입니다. 

쉰 중반, 자신이 그려왔던 그 나이의 모습과는 다른 지금의 모습에 대한 회한이 묻어 있는 편지였답니다. 

이쯤, 제가 이즈음 거의 매일 이어가고 있는 “당신의 천국”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그런 회한에 대한 위로의 작업입니다. 물론 그 후배가 아닌 제 자신에 대한 위안으로 시작한 일이랍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그가 온 때에 그 시대를 함께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헤롯대왕, 빌라도 총독,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사두개파, 바리새인, 에세네파, 젤롯당, 예수의 제자들 등등 말입니다. 

이렇게 무리를 지어 사람들을 나누다보면 그 그룹안에 속한 이들은 저마다의 특징들이 있거니와 나름 뜻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일테면 왕과 왕족, 총독, 사두개파는 있는 사람들입니다. 돈과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바리새파나 에세네파 하면 종교적 자부심으로 사는 사람들 이라는 특징이 있는 것이지요. 젤롯당하면 자신들의 사명에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자부심이 있는 것이고요. 예수의 제자들은 한 때 헛 꿈들을 꾸었지만 그 꿈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다 간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실제 예수가 함께 했던 사람들은 갈릴리 주변에 살던 쉰 중반, 예순 아니 마흔, 서른, 스무살 나이에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사람들, 자신들이 꿈꾸었던 그 나이의 자신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 그러나 무언지는 모르지만 막연한 기다림을 안고 살던 사람들이었지요. 

그렇다고 예수가 헤롯대왕, 빌라도 총독,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사두개파, 바리새인, 에세네파, 젤롯당, 예수의 제자들 등등 그룹을 이룬 이들을 외면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떤 모습을 누리고 살던 그가 놓인 처지나 환경이나, 높고 낮음이나, 갖고 못가짐이나, 생각이 좌이거나 우이거나 그런 잣대들을 몽창 허무러뜨린 맨 사람 하나 하나에 대한 관심이 있었을 뿐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누구나 다 가치가 있는 삶을 누릴 권한이 있고, 그 길은 늘 열려 있다는 선포를 한 것입니다. 

“다만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말입니다. 

불공정하고, 불완전하고,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하고 끝내 내가 꿈꾸었던 내 모습이 아닌 세상에서 살더라도 “가라, 거기서 살라”고 명하시는 이가 예수였습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그 끝에 기쁨과 희망, 마침내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까닭입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그 곳에서 “사람임을 아는”일이 우선입니다. 

사람끼리 견줄 일이 아니라 사람임을 깨달았느냐를 견줄 일입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우리 모두에게 사람임을 깨닫게 하는 물음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후배를 위하여! 또한 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