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속한 작은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송년회를 겸한 모임이었습니다. 제 엉덩이가 좀 가벼운 탓에 어느 모임에 가던 진득히 앉아있는 편이 못됩니다. 제 아내의 한결같은 불만들 가운데 하나이지요.
오늘은 거의 다섯시간 넘는 시간을, 그것도 하고 싶은 말을 거르지도 않고 쏟아내며 앉아있었답니다. 편하고 즐거웠다는 말씀입지요.
집으로 돌아와 이즈음 일상 가운데 하나인 “당신의 천국” 이야기를 쓰려다 접고, 이 글을 쓰고 있답니다.
이즈음 한국 대학가에 나붙은 대자보 하나가 뉴스의 촛점이 된 소식을 듣고 보고 있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대자보입니다. 늦게 본 제 딸 아이가 대학 졸업반이랍니다. 아이들 말에 귀 솔깃할 나이는 이미 지났답니다. 제가 그 뉴스를 보고 대자보의 내용을 찾아 읽으며 든 생각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사실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은 우리 세대에겐 아주 낯익고 입에 배인 인사말이랍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말을 주고 받으며 자란 세대랍니다. 저도 어느새 육십줄에 걸친 세대가 되었습니다만,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 땐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는 인사는 6.25 전쟁 때 생긴 인사법입니다. 남쪽 군대, 북쪽 군대가 오르락 내리락 밀고 밀리던 일들이 계속 되는 전쟁을 치루면서 밤새 목숨을 잃는 일들이 다반사였던 일상 속에서 사람들 입에 배이게 된 인사말이랍니다.
50년대 말, 60대 초까지 제가 어릴 때 입에 붙어있던 한국인들의 인사말이었답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
또 다른 입에 달고 살던 이삿말이 “진지 잡수셨어요?”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세월에 생긴 인삿말입니다. 끼니를 때우는 일이 모든 일에 최우선이던 시절에 생긴 말이었겠지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 입에서는 이런 인삿말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살아왔겠지요. 너나없이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젠 그런 인삿말들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제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으니 잘은 모릅니다만 “밤새 안녕하셨어요?”라든지, “진지 잡수셨어요?”라는 인사는 거의 하지 않거니와 설혹 하더라도 옛날과는 그 뜻이 다르게 사용되는 세상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던진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물음이 공감을 얻는 사회를 바라보며, 그 물음에 답을 할 사람들은 젊은이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인사법을 없애려고 애써온 우리 세대들 곧 1950년대생들이 대답을 찾아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제 블로그의 이름이 “1950대생들을 위하여”랍니다.
2013년 겨울, 성탄절 즈음에 대한민국의 한 젊은이가 던진 “당신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의 핵심은 “당신은 이웃의 아픔에 저려오는 맘 하나 가지고 계십니까?”라는 물음이랍니다.
그걸 아이들, 바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가르쳐 주지 못한 우리 세대들을 향한 물음이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들어 줄 수 있었던 제가 속한 교회의 작은 모임에게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