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통(嫡統) – 귀환 7

(당신의 천국 – 예순 네 번 째 이야기)

그 해 칠월 이십 일일, 주께서 예언자 하깨를 시켜 말씀을 내리셨다.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사제와, 그 밖에 살아 남은 모든 백성에게 일러라. ‘이 성전이 예전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웠더냐? 너희 가운데 그것을 본 사람이 더러 남아 있으리라. 그런데, 지금 이 성전은 어떠하냐? 너희의 눈에도 이 따위는 있으나 마나 하지 않으냐? 그러나 즈루빠벨아, 힘을 내어라. 나 야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사제 여호수아야, 힘을 내어라. 이 땅 모든 백성들아, 힘을 내어라. 그리고 일을 시작하여라. 내가 너희 곁에 있어 주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 학개 2 : 1 – 4 

오후 늦게 일인치 정도의 눈이 내릴 것이라던 일기예보는 빗나갔습니다. 오전부터 펑펑 쏟아지던 눈발이 조금 잦아들었지만 밤 늦게까지 약 6인치 이상의 눈이 내린다는 수정 예보가 나왔습니다. 

눈발이 날리기 전에 교회에 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눈길이었습니다. 모처럼 사람의 말로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말씀에 기쁨을 맛보고 돌아 온 주일이었습니다. 

집 앞 드라이브웨이 눈을 치우고  난 뒤 나무가지에 내려 앉은 눈 사진 몇 장 찍어보았답니다. 잦아들던 눈발이 다시 굵어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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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1574쌓이는 눈위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해오던 이야기를 이어가야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 팔레스타인 이야기 말입니다. 

먼저 유다인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뒤돌아 보려고 합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바벨론에 살다가 예루살렘 땅으로 돌아 온 유다인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 70년을 살았던 유다인들이 모두 돌아 온 것은 아니라는것 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겠거니와 당시의 유적들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는 사실이랍니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바뀌었더라도 거기(바벨론) 남아 사는 게 훨씬 나았던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돌아 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뚜렷한 특징들을 찾아낼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야훼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이끌어 나가는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외골수 믿음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최고의 우선 순위는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고 유지하고 이어나갈 증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 재건축이야말로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건이었고, 스스로들이 생각하는 민족적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달랐습니다. 같은 조상의 자손들이고, 야훼 하나님을 똑같이  말하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인 삶의 모습들을 보면 자신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는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호히 이를 거부합니다. 사마리아인들과 70년 사이 바뀐, 그 땅의 주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너희와 우리는 다르다.”입니다. 고로 “성전 건축은 우리의 일이지 너희의 일이 아니다.”였습니다. 

이제 사마리아인들과 그 땅에서 여호수아(이 여호수아와 예수아로 불리는 귀환 시대 제사장 여호수아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점 기억하시고요.)이래 사사시대를 거쳐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이어 그 땅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70년 동안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근근히 또는 잘 살면서 그 땅에서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어느날 느닷없이 70년 전에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돌아와서 옛 전통을 잇는다며 성전을 세운다는 소리에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우리도 함께 하지”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매몰차게 내민 손을 내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뿔 날 일이지요. 더더군다나 땅, 그 가운데 값나가는 땅은 예나 지금이나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70여년을 누리던 땅도 나누어야 하는 처지에서 본다면 열받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감정 꾹꾹 숨기고, 같은 핏줄이니까하며 손을 내밀었더니 그 손을 내치다니! 돌이킬수록 분이 난 것이지요. 그래서 그 땅에서 계속 살던 사람들이 택한 방법이 정치, 군사적으로 그 땅의 주인인 페르시아 황제에게 “내 편 좀 들어 달라”는 장계를 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자!  이런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당시의 주인공들, 당시의 영웅들이 바로 페르시아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여호수아),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이었습니다. 

빠르게 성전터와 토대를 세웠지만 사마리아와 그 땅에 살던 이방인들 및 이방 종교에 물든 이들의 방해 공작 앞에 머뭇거리게 되는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그들을 향해 “너희야말로 야훼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할 영웅이다. 성전 건축에 온 맘과 힘을 다해라.”라는 부추김을 하던 사람들이 학개와 스가랴였습니다. 

이제 당시 그 땅의 정치, 군사적 주인이었던 페르시아 입장이 되어서 그 시대를 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보지못한 엄창난 땅을 지배하게된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점령지를 지속적으로 잘 다스리기 위한 정책으로 점령지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이어가도록 허용합니다. 이러한 정책의 혜택을 받은 족속 가운데 하나가 유다족입니다. 그런데 그 고레스황제가 죽고난 뒤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캄비세스는 고작  7년 동안 황제위에 있다가 후사(후계자)가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원전 522년에서 기원전 521년 사이 약 일년 동안 페르시아는 극심한  왕위 쟁탈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혼란한 권력 다툼의 정세를 뚫고 이겨내 권력을 쟁취한 사람이 바로 다리우스 1세입니다. 

다리우스1세는 왕국의 시조인 고레스의 정책을 이어받는 동시에 지방 변방의 소국들을 이웃한 큰 나라들이 세력을 키우는 것을 막는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정책을 편답니다. 

이런 세가지 서로 다른 상황들이 맞물려 제 2 성전의 건축은 터를 세웠다가 잠시 중단되고  결국은 다시 이어져 완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 이 당시의 상황을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고백한 기록들이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서 라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완성되면서 새로운 전통이 하나 세워집니다. 바로 대제사장의 적통이 예수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왕이 없는 시대, 총독과 대제사장이라는 이원 체제가 자리잡는 시대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이어지면서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대망이 깊어지고  있었답니다.

법칙 – 귀환 6

(당신의 천국 – 예순 세 번 째 이야기)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듯한 주일 아침입니다. 미국 전역에 때이른 한파가 몰려왔다는 아침 뉴스가 일요판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워싱톤 타임즈는 눈 구경하기 힘들다는 텍사스등의 남부에 쏟아진 눈소식을 멤피스발로 전하고 있습니다. 

날씨 변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히고는 합니다. 이럴 때면 사람들은  그 일을 해결해 줄 어떤 힘을 상상하거나 소망하게 됩니다. 일테면 슈퍼맨이라든지 스파이더맨 같은사람들 말입니다. 이른바 영웅입니다. 

영웅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약 백년 전에 이탈리아에 살던 한 사내가 무리지어  움직이는 개미떼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답니다.  개미들은 자신들이 먹을 양식을 열심히 개미집으로 운반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개미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지 20%의 개미들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답니다.  일하는 개미떼  20%와 왔다갔다 하면서 놀기만 하는 개미떼 80%로 나누어지더라는 말씀입니다. 사내는 20% 와 80%의 개미떼를 따로 모아서 서로 다른 곳에서 살게하였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더랍니다. 열심히 일하던 20%들 사이에도, 놀기만 하던 80%들 사이에도,  일하는 20%와 놀기만 하는 80%로 다시 나누어지더라는 말이지요. 

이번엔 벌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했더니 개미에게 나타난 현상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더랍니다. 하나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법칙을 사내의 이름(Vilfredo Pareto)을 따서 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이라고 부른답니다. 

파레토는 개미와 벌들 뿐만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에도 이 법칙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았답니다. 그리고 20%에 해당하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일컬어 엘리트(elite)라고 했답니다. 나아가 그는 역사란 엘리트가 바뀌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건강한 사회란 엘리트가 제 몫을 잘 해내고 나머지 대중들인 80%가 잘 따라주는 사회라고 이해를 했답니다.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신영웅주의라고 할 만한 것이지요.  엘리트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대중 지향적, 곧 전체 그룹인 100%를 생각하며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드문 일이지요.  뭐 말로써야 할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longtail

그런데 약 십년 전인 2004년에 영국출신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란 이가  롱테일(Long Tail)이란 말로써 파레토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트에 속하는 20%가 아니라 나머지 대중(mass)인 80%의 영향력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급격한 기술변화에 따라 바뀐 시대가 만들어 낸 법칙이지요. 이를 롱테일(Long Tail)법칙이라고 하지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긴 시장과 유통 형식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생긴 말이지만 사회구조 변화에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즈음 한국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사 가운데 하나가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 논쟁이지요. 그 핵심이 바로 댓글이라고 말하는 인터넷 여론조작에 국가기관이 주도적으로 개입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다른 여러가지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제가 잘 모르는 일이니 접고요. 

엘리트 중심사회로 굳어져 내려왔던 한국 사회체제가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원인을 찾으려면 여러 분석들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 중 하나가 롱테일법칙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래 엘리트 중심사회로 회귀하려는 집단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동안 해오던 일들이 결집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국정원이라는 기관을 통해 롱테일 법칙이 통하는 사회를 지배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눈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무릇 역사란 어떤 독립적인 사건 하나 하나를 이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前)과 후(後)라는 시간의 연속성, 여기 저기라는 공간의 상관성들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법이지요. 

그 사건들의 기록이 역사라면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사관(史觀)이 되겠습니다. 그 기록을 신, 곧 하나님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면서 남긴 것이 신앙고백이고, 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한 이는 야훼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으로 쓰여진 책은 성서가 되겠지요. 

예루살렘 제2성전(제 1성전은 파괴된 솔로몬 성전)의 건축과정과 예루살렘 성의 재건에는  바로 이런 여러 사건들이 어우러져  담겨 있답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2500년전의 이야기는 오후에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