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점(臨界點) – 중간사 5

(당신의 천국 – 일흔 번 째 이야기) 

몹씨 추운 겨울날입니다. “춥다”의 반대말은 “덥다”입니다. 사물이나 현상 또는 일에는 반대되는 말이나 개념들이 있습니다. 크다와 작다, 잘한다와 못한다, 참이다와 거짓이다 등등 말입니다. 

그럼 민주주의의 반대 개념은 무엇일까요? 전제주의나 독재주의가 되겠지요. 그런데 종종 그 반대 개념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고  말하거나 글을 쓰는 분들을 만날 수가 있답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반대 개념은 자본주의겠지요. 

오늘날 한반도 남북이 겪고 있는 가장 큰 혼란과 슬픔은 바로 이런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일겝니다. 전혀 엉뚱하게 제 멋대로 자신과 자신들의 집단 이익을 위해 이런 개념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북쪽은 아무리 자신들의 이름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넣고 외쳐 불러보아도 그들이 민주주의 공화국인 것으로 믿는 사람들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이외에는 거의 드물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한, 남쪽 사람들 99.99999…%는 북은 민주주의 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북은 그저 전제주의 독재국가일 뿐입니다.(남쪽 법으로는 국가라고 인정을 안하지만 국제법으로는 분명 국가임으로) 

남쪽 역시 아무리 민주주의 체제라고 말하여도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랍니다. 도대체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른 생각과 사상들을 서로 인정하고 토론하고, 그 과정을 통해 다수의 의견에 따르기도 하고, 잘못되면 다시 그 잘못을 인정하고 토론하고 다시 묻고 하는 과정을 용인하는 것 아닐까요? 나와 다르면 무조건 종북인 나라는 결코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지요. 

아이고 제 이야기가 왜 이쪽으로 흘렀을까요? 

복지 이야기 하려다 이렇게 되었답니다. 구약성서 전체를 일관하는 야훼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평등한 복지”라는 신앙이 있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빈부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부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반드시 돌보아야만 한다는 “복지”에 대한 야훼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이 신앙고백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에 반드시 오고 가는 것은 “돈”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나누는 일입니다.  이 문제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갈리는 것이지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국가권력이 이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하는 잣대에 따라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로 갈리면서 그 성패가 드러나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경험해 온 결과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한 것이고요, 자본주의 역시 아직은 시험중이고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혼합된 형태의 국가들이 새로운 문제 해결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인 것 같지요. 

성서의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에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물으시는지요? 

바로 성서가 던지는 이 질문 앞에 우리들이 서 있기 때문이랍니다. 

팔레스타인과 유다의 새 주인이 된 셀류커스왕조는 이전 왕조였던 프톨레마이오스왕조를 부정하는 뜻으로 조세 감면 정책을 폈답니다. 

세금을 거두어 드리지 않는 정책으로 과연 식민지를 지배할 수가 있었을까요? 그저 식민지 백성들의 환심을 사려는 거짓이었을 뿐이었답니다. 일시적으로 시행했던 이 정책으로 셀류커스왕조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더더군다나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세력이었던 로마의 도전 앞에 봉착한 셀류커스왕조는 급격한 정책의 변화를 꾀하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식민지의 재산을 강탈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에피파네스라고 불리우는 안티쿠오스 4세가 등극하면서 이러한 정책이 강력하게 진행됩니다. 

이 지점에서 당시 예루살렘을 통치하던 종교 지도자들과 셀류큐스 왕조의 에피파네스왕 세력이 배포가 맞는 일이 벌어집니다. “돈이 최고다.”, “우리끼리 잘 살아 보자”라는 정신에서 서로 배포가 맞은 것입니다. 

이들이 첫번째로 벌인 일이 그리스 올림푸스산의 제우스신과 예루살렘의 야훼 하나님은 하나라는 신앙을 유대인들에게 강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장직을 돈을 주고 사고 파는 일이었습니다. 기원전 174년에 야손이라는 사람이 돈을 주고 대제사장직을 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세력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유대인들의 신앙과 제사의식을 무너뜨려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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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의 일을 성서 외경인 마카베오(마카비)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후 안티오쿠스왕은 온 왕국에 영을 내려 모든 사람은 자기 관습을 버리고 한 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방인들은 모두 왕의 명령에 순종했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왕의 종교를 받아 들여 안식일을 더럽히고 우상에게 제물을 바쳤다.  

왕은 또 사신들을 예루살렘과 유다의 여러 도시에 보내어 다음과 같은 칙령을 내렸다. 유다인들은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를 것.  성소 안에서 본제를 드리거나 희생제물을 드리거나, 술을 봉헌하는 따위의 예식을 하지 말 것. 안식일과 기타 축제일을 지키지 말 것.  성소와 성직자들을 모독할 것.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울 것.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  사내아이들에게 할례를 주지 말 것. 온갖 종류의 음란과 모독의 행위로 스스로를 더럽힐 것. 이렇게 하여 율법을 저버리고 모든 규칙을 바꿀 것.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안티오쿠스왕은 그의 온 왕국에 이와 같은 명령을 내리고 국민을 감시할 감독관들을 임명하고 유다의 여러 도시에 명령을 내려서 각 도시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게 했다.   많은 유다인들이 율법을 버리고 그들에게 가담하여 방방곡곡에서 나쁜 짓이 마구 저질러졌다.  그 밖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아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 마카베오상 1 : 41 – 53, 공동번역에서 

철저한 자기부정의 길을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견디어낼 수 있는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사백년 가까운 식민지배를 벗어나 종교적 신앙 전통을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독립을 부르짖고 싸우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일의 계기였답니다. 

이제 새로운 유대왕국이 그 땅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라는 예수시대의 파당들이 만들어진 때도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