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眼, 視覺) – 그 날 5

(당신의 천국 – 일흔 아홉 번 째 이야기)

지난해(2012년) 미국 제 45대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둔 11월 초 시사주간지 타임은 표지 인물로 에브라함 링컨대통령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표제를 ‘링컨이었으면 무엇을 했을까?(What would Lincoln do?)라고 달았습니다. 그 기사에는 이런 말이 있었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기억은 위태로운 질주를 하는 현재의 두 후보(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둘 중 누가 승리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분열된 국가를 영리하게 이끈 링컨의 정치수완을 진지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먼 훗날 가치 있는 승리로 평가 받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lincoln

이 기사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 두가지는 오늘날 미국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는 것과 미국 역사상 정치 수완이 뛰어났던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링컨이라는 것입니다. 

제 기억에 이 링컨대통령을 팔아서 재미를 좀 본 한국 사람 두 명이 있답니다. 한 분은 돌아가셨고, 한 사람은 여전히 활동 중이십니다. 두 분 다 제가 뵌 적도 있거니와 한 때 두 분 모두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분들이셨습니다. 또한 두 분 모두 생각할수록 안타까움에 제 가슴에 눈물을 흘리게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한 분은 돌아 가셔서 슬픔을 주시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계셔서 슬픔을 주시는 분입니다. 

살아계신 분은 링컨 연구로 박사를 학위를 받고 링컨 이야기로 책장사 좀 하셨던 김동길선생이고, 돌아가신 분 역시 링컨 팔아 책상사도 하고 감히 대통령까지 지내신 노무현님 이십니다. 

두 분들이 쓰고 펼치셨던 링컨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읽어 보았답니다. 그리고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김동길선생은 링컨이 살아가면서 만들었던 가십(gossip )에 대한 관심과 그 이야기를 팔았던 것이고, 노무현님은 정치인 링컨의 고뇌와 당시 미국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거리를 팔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똑같은 링컨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에 그 모습을 투영해 보려고 했던,( 어쩌면 비교 자체가 슬프기는 하지만), 두 분에 대한 평가의 차이가 어쩜 오늘 한국말을 쓰고, 한반도에 관심을 두는 이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의 잣대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이쯤 성서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세주 예수를 바라보는 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나라를 보는 눈이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전했던 말씀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나는 문앞에 서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코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가십(gossip)으로만 만나면 추하거나 슬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이들어 가야할 길 마주할 때 자신이 없고 두렵고, 놓고 싶지 않고, 아니 웃으며 간다하여도 가십으로 남는 삶이 된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만나려면 이천여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온 몸으로 곧 눈으로 손으로 입으로 껴 안았던 당시 갈릴리 사람들을 알고 만나고 이해하는 일을 먼저 해야만 합니다. 

기원전 167년 어간부터 헤롯왕 시대까지 약 130여년간의 팔레스타인  특히 갈릴리로 시야를 좁혀가며 당시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과 갈망, 염원 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유태인들의 축제 하누카의 기원은 기원전 165년경으로 올라갑니다. 지금으로부터 얼추 2300년 쯤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부여왕국 시대이고 고구려는 아직 시작하지 않은 때였답니다. 

마카베오 가문의 유다라는 이가 헬라(그리스) 셀라큐스 왕조에 대항하여 유대 독립혁명을 일으키고 잠시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의 일입니다. 채 이년도 되지 않아서 이들 곧 마카베오 일당의 세력은 다시 광야로 내몰린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 하나가 있다는 것 머리 속에 깊히 생각해 두셔야 합니다. 

“채 이년”이라는 말입니다. “채 이년”도 길지요. “채 일 년”, “채 한 달”, 아니 “채 하루” 때문에 역사와 인생이 바뀌는 거 어디 한 둘 이던가요? 

아무튼 용맹스럽던 유다 마카베오가 죽고 그의 동생 요나단이 뒤를 이어 독립투쟁을 이어갑니다. 요나단은 아주 뛰어난 정치꾼이었습니다.  정치꾼을 나쁘게 표현한 말이 아닙니다. 시대를 읽고 자기 시대를  잘  이끌어 갔다는 말입니다. 그를 이은 시므온 역시 대단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정치가라는 것이 우리들이 가서 만나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마카베오일가의 하스몬 왕조입니다. 

마카베오 일가를  중심으로 유대 독립 전쟁을 일으키게 했던 주 요인은 헬라(그리스) 계통인 셀류커스 왕조 에피파네스왕이 유대 전통 및 신앙을 전면 거부 및 금지 조치로 인해 생긴 일이었습니다. 

일단 “아니다”하는 일에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뭉치는 것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게 뭉치다 보면 또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도 있게 마련인 것이고요. 

그렇게 유다 독립이라는 큰 틀에서 뭉쳤던 사람들의 실제 속내는 다 달랐다는 것이지요. 특히 야훼 하나님과 나 또는 내가 속한 무리들의 이해 관계 나아가 믿음의 속성에 따라 말입니다. 

그 마지막을 향해 찢어져 가는 상징으로 대변되는 실존 역사 인물 헤롯왕 이야기까지를  구약 이야기로  삼고 두 차례 더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