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마흔 다섯 번 째 이야기)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억울한 재판을 받고 처형당하는데 그 신세를 걱정해 주는 자가 어디 있었느냐? 그렇다, 그는 인간사회에서 끊기었다. 우리의 반역죄를 쓰고 사형을 당하였다. – 이사야 53 : 7 – 8, 이상 공동번역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가 여기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기쁜소식을 전하였다. – 사도행전 8 : 34 – 35
이사야가 살았던 당시 남왕국 유다의 형편(아사야 1장에서 39장까지의 이야기)과 이사야가 죽은 뒤 일어난 바벨론 포로 시절(이사야 40장에서 55장) 이야기, 그리고 포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 재건을 하던 무렵(이사야 56장에서 66장)의 이야기가 합쳐진 책이 성서의 이사야서입니다.
그래 첫째 이야기를 제1 이사야, 둘째 것을 제2이사야, 세째 이야기를 제 3 이사야라고 부른답니다.
기간으로 보면 약 이백 년 정도의 역사적 사건들과 고백들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 이백 년 동안은 유다인들에게는 간난(艱難)과 질곡(桎梏)의 세월이었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히스기야왕 시절에 성서는 그가 다윗 못지 않게 복을 받은 왕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만 그의 말년이 가까워 오면서 유다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합니다.
예루살렘이 멸망 직전의 위기에 놓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당시 팔레스타인의 국제적 정세는 북의 아시라아와 남의 이집트, 동쪽의 신흥 세력 바벨론과의 힘의 역학에 따라 땅의 주인이 바뀌던 때였습니다. 유다왕국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여러 약소 왕국이나 도시국가들은 살기 위해 줄을 서거나 힘을 합쳐 연합을 하되 더 큰 강국이라고 생각되는 세력에 붙곤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히스기야도 독립노선을 표방하면서도 일견 이집트에 붙기도 하고, 바벨론과 붙기도 하고 왕국의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갖은 외교적 수단들을 동원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반 아시리아를 표방하던 때에 아시리아의 강력한군주가 나타납니자, 산헤립이라는 왕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완전히 포위되어 산헤립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인 상황들이 두번이나 연속됩니다. 이사야의 예언들이 쏟아지던 때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야훼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산헤립의 군사 십 팔만 오천 명을 야밤에 단 한 숨에 없어버립니다.(이사야 37 : 36)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산헤립이 다 이길 수 있었던 싸움을 앞두고 까닭없이 철군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사야 당대에는 멸망의 위기를 넘기지만 끝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 이 이후의 이야기는 예레미야 이야기를 하면서 잇기로 합니다.)
현실적으로보면 좋은 일이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이사야는 메시아 왕국, 메시아가 통치하는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세상을 노래합니다.
이쯤, 이사야 시절부터 아주 오래 전 이야기를 되돌아 보기로 하지요. 약 700년 전의 일입니다.
히브리족들이 탈애굽을 하여 광야 사십년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던 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는 것이지요.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족들이 광야에서 계약을 하고 들어 선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는 곳이었다는이야기를 우리가 함께 했던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히브리족들이 꿈꾸었던 하나님의 나라였지요.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평등이 이루어지는 세상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사야가 본 메시아 왕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평화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그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이사야는 이렇게 그리고 있습니다.
“늑대가 새끼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수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모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 이사야 11 : 6 – 9”
사람과 사람사이의 싸움 곧 전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온갖 만물들이 더불어 함께 누리는 평화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바로 뱀의 유혹이 일어나기 전, 선악과에 대한 유혹이 일어나기 전 태초 에덴으로의 회귀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사야에서 두 번 째 하나님 나라의 원형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공의가 넘치는 평화로운 세상입니다.
남왕국 유다가 망해가는 시점, 그리고 망한 후의 시점, 남의 나라에 포로 생활을 하는 시점, 그리고 풀려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리던 시점, 그 이백 년의 세월 동안 유다인들이 꿈꾸었던 메시아 왕국,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누구나 공평한 평화로운 세상 말입니다.
그리고 언젠간 반드시 그런 하나님의 나라, 메시아 왕국을 이루어 낼 메시아가 온다는 예언을 한 사람, 바로 이사야입니다.
이사야가 그린 메시아의 모습이 바로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난받는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온갖 고초와 멸시를 당하고 채찍질과 찔림을 당하여 죽습니다. 그의 죽음은 후손들이 오래 오래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기 위한 제물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700년 후 이사야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되고,어떤 이해와 해석들이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예수의 생애와 바울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어질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우리들의 머리 속에 깊이 새기고 넘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모습, 바로 평화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전쟁과 다툼이 없는 세상입니다.
히브리족들이 가나안에서 꿈꾸었던 젖과 꿀이 흐르는 평등한 세상은 정복과 전쟁을 전제로 한 세상이었습니다.
이사야가 꿈꾸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은 온갖 무기들이 생산의 도구로 바뀌어 평화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번한 모든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다툼, 싸움, 전쟁들이 얼마나 후진적 신앙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사야로부터 칠 백 년 후에 오신 메시아 이야기를 향해 이야기를 진전시키면서 이제 우리들이 만날 인물들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하는 시기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