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서른 두 번 째 이야기)
한낮이 되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말하였다. “바알은 신이니까, 더 크게 불러 보아라. 깊은 사색에 빠져 계신지도 모르지. 외출중인지 아니면 여행중인지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 보아라.” – 열왕기상 18장 27
엘리야는 두려워 떨며 목숨을 구하여 급히 도망쳤다. – 중략 – “오, 야훼여,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선조들 보다 나을 것도 없는 못난 놈입니다. “ – 열왕기상 19장 3-4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중략 –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입맞추지도 않았던 칠천 명을 남겨 두리라.” – 열왕기상 19장 18, 이상 공동번역
엘리야에 대한 성서 기록을 읽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어렸을 때 본 영화들입니다. 성서의 이야기들을 영화화한 십계니 솔로몬과 시바여왕, 벤허 같은 영화들은 당시 학교에서 단체로 구경갔었던 것 같습니다. 1960대 이야기입니다.
당시 서울 4대문안에 있었던 개봉관들, 일테면 퇴계로 대한극장, 충무로 명보와 스카라 극장, 종로의 단성사나 피카디리 극장 같은 곳은 그렇게 학교에서 단체로 갔을 때나 들어가 보았던 곳들이었을 겝니다.
그런 개봉관들 말고 사대문 밖 동네들에는 저마다 동네극장들이 있었답니다. 영등포, 용산, 보광동, 응암동, 제기동 등등 말입니다. 제가 살던 신촌에도 그런 동네 극장이 두군데가 있었답니다. 신영극장과 대흥극장이랍니다. 신영극장은 제가 기억해 낼 수 있는 세월 이전에 이미 그 곳에 있었고, 대흥극장은 제가 국민학교 때 세워진 곳입니다.
중고등학교 때 공짜표를 자주 얻을 수 있었던 곳들이지요.(그 공짜표의 출처는 정확히 기억에 없습니다.) 당시 대흥극장은 동시상영관이었습니다. 입장권 하나로 영화 두편을 볼 수 있었던 극장이었지요. 물론 두 개의 영화들 중간중간이 잘리기도 한 영화지만, 시간 보내기로는 안성맞춤이었던 곳이었지요.
당시 주로 그 곳에서 상영했던 영화들은,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같은 당시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부르던 서부영화들이거나 돌아온 외팔이 시리즈 같은 홍콩 무협영화였답니다. 클리턴 이스트우드, 왕우(王羽)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들이었지요.
70년대 들어서는 제 머리도 굵어져 갔고, 사대문 안 출입도 잦아진 편이라 동네 극장 출입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중국 무협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이 아마 대학 이학년 때인 1973년도였을 겝니다. 몇 해 전에 지병을 앓다 먼저 간 친구를 비롯한 몇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영화랍니다. 아마 단성사였을 것입니다. 브루스 리 바로 이소룡의 영화 정무문(精武門)입니다.
쌍절곤과 기성(奇聲)으로 당시 동네 꼬마들의 우상이 된 이소룡의 첫영화였지요. 성서 엘리야 이야기를 읽다가 떠오른 영화는 바로 이 정무문이랍니다.
일대 백의 싸움도 그렇거니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일본 군인들이 겨누고 있는 총을 향해 붕 떠서 발길질을 하는 이소룡의 정지된 모습이 떠오르더란 말씀이지요. 영화는 그렇게 끝나지만 관객들의 머리 속엔 일본군의 총에 벌집이 된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져 있을 줄도 모를 일입니다.
엘리야라는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야훼다.” 또는 “야훼는 나의 하나님이다.”라는 뜻이랍니다. 엘리야가 하는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열왕기상 17 :1, 18:15)”라는 말은 바로 자신의 삶의 의미였답니다.
엘리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부터 갈멜산에서 일대 850의 대결을 벌이는 순간까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치 정무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소룡이 일본군들이 겨눈 총을 향해 붕 떠서도 결코 죽지 않고 다 때려 누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답니다.
도대체 겁이 없습니다. 왕과 권력이 잘못 되었다고 무조건 찾아가서 “내가 믿는 신이 그러는데 너희들은 이제 몇 년 동안 비는커녕 이슬 한방울도 볼 수 없을 것이다.”고 말이 예언이지 듣는 입장에서는 공갈을 하는 것입니다.
일테면 백악관에 가서 “내가 믿는 신이 그러는데 앞으로 몇 년 동안 미국 땅에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 안내릴거야! 그게 다 너와 민주당 탓이거든”이라고 하던가, 한국의 청와대에 가서 “박근혜와 새누리당 때문에 몇 년 동안 한반도에 비 한방울,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을 것이다. 이건 신의 계시다.”라고 한다면 그게 제 정신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예언자의 아버지격인 엘리야가 그랬듯이 이후로 저희들이 계속 이야기하려고 하는 예언자들은 어찌보면 다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랍니다.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느닷없는 선언을 하거나, 현실속 이야기가 아닌 꿈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사람들인 권세를 쥔 이들에게 딱 맞아 죽기 십상인 이야기들을 겁없이 하는 요즘 말로 하자면 돌아이(乭아이, 또라이)가 될 터이고 좀 점잖은 말로 하자면 반체제(反體制)인사들이었답니다.
뭐 하나님의 힘이 함께 한 사람들었고 믿음이 있었기에 그리했다고 쉽게 이야기들도 합니다만 당시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본다면 그게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아무튼 성서는 당시 북 이스라엘에 실제로 삼 년이 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정말 목이 타는 쪽은 아합왕을 비롯한 권력을 쥔 자들이었습니다. 때를 맞추어 야훼는 엘리야에게 명합니다. “가라, 만나라, 그러면 내가 비를 내리리라.”(열왕기상 18 : 1)”
엘리야는 그 명령에 사족을 달지 않습니다. 갑니다. 만납니다. 그리고 대결 신청을 합니다.
“야훼 하나님을 대표한 나 엘리야와 바알신을 대신하는 바알 예언자들 450명, 아세라신을 대리하는 예언자들 400명 그렇게 1대 850의 대결”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갈멜산에 제단을 두군데 쌓은 후 소 두마리를 잡아 각 제단에 올려 놓고 그 제물에 하늘에서 내리는 불을 불러오는 쪽이 이기는 게임을 한 것입니다. 일 대 팔백 오십으로 말이지요. 아무리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하여도 이거 목숨 내놓고 하는 일인데 아무나 쉽게 던질 결투 도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엘리야는 이 때까지 거침이 없습니다. 심지어 브루스리, 이소룡이 싸우기 전에 코 한 번 쓱 만지듯이 850명 상대를 비웃기까지 합니다. “니들이 믿는 신은 잠 자냐?” 하면서 말입니다.
이 결투에서 엘리야는 보기좋은 승리를 거두고 야훼 하나님이 유일한 신임을 온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선포합니다. 선포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신의 예언자들을 다 잡아 죽이기까지 하는 혁명을 이룬답니다. 물론 백성들의 환호속에서 말입니다. (열왕기상 18: 39-40)
마치 이소룡이 일본군들이 겨눈 총을 향해 날아가 일본군들을 다 때려 죽이는 장면이 연상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야기가 거기서 끝난다면 엘리야 이야기도 그저 무협지 수준의 영화 스토리가 될 것입니다.
분명히 야훼의 명령에 따라 가짜 신들의 세력을 죽이고 비도 내리고 모든 기적을 다 보여 주었건만, 아니 백성들 조차 모두 야훼가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소리쳐 고백을 했건만, 목숨이 위태롭게 된 것은 아합왕과 권력이 아니라 엘리야 였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전개상 줄행랑을 치거나 크게 뉘우쳐야 할 사람과 세력은 아합왕과 권력이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목숨을 부지하고자 도망치고 숨게 된 쪽은 다름아닌 엘리야였답니다.
그렇게 기세 등등하게 왕과 권력을 향해 도전했던 엘리야가 승리를 거두고도 도망치고 몸을 숨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조금 소급에 돌아가 보기로 하지요.
아합왕의 아버지 오므리왕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룬 사람이었다고 했지요. 북왕국의 시조인 여로보암왕부터 오므리왕까지는 이방신들을 섬기면서 야훼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았답니다.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아합왕 때에 이르러서는 야훼를 부인하고 이방신을 섬기는 시대로 접어 들었던 것입니다. 부끄러움 조차 모르는 시대로 접어 든 것이지요.
엘리야가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랍니다.
(이즈음 대한민국의 뉴스를 볼 때 마다 자꾸 드는 생각이 바로 ‘부끄러움 조차 잊어버린 모습’이랍니다.)
결국 어느 한 쪽의 파국을 부르게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