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理解) – 예언자 9

(당신의 천국 – 서른 여덟 번 째 이야기)

아시리아 왕은 바빌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던 사마리아 성읍들에 이주시켜 그들로 하여금 그 곳에서 자리잡고 살게 하였다.  – 중략  – 이렇게 그들은 야훼를 공경하면서도 각 민족이 붙잡혀 오기 전에 가졌던 풍습을 따라 저희의 신도 섬겼다.  – 중략 – 그들은 후손들도 대대로 이날까지 선조들의 풍습을 그대로 지켜 내려 왔다. – 열왕기하 17 : 24 – 41 

그러는 동안 유다와 갈릴레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 들어 선 교회는 안정이 되어 터전을 튼튼히 잡았고 주를 두려워하며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효가 차츰 늘어났다. – 사도행전 9 : 31(이상 공동번역) 

넷째 우리 동방은 오래 전부터 중국풍습을 본받아 문물, 예악, 제도를 다 그대로 준수하여 왔다. 그러나 지역이 다르고 사람의 성품도 같지 않으니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거란은 우매한 나라로서 풍속과 언어가 다르니 그들의 의관, 제도를 아예 본받지 말라. – 고려사(高麗史) 권2, 세가(世家)  2. 태조(太祖) 26년, 이른바 고려 첫 임금 왕건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남왕국 유대 이야기로 넘어 가기 전에 몇가지 정리해 두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순례 길에  놓여있는  이정표들을 확인하는 일들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첫째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면서(주전 721년) 새롭게 등장하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아시리아는 수도 사마리아 성읍 인근의 모든 이스라엘인들을 아시리아의 포로로 잡아 갑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 인근 성읍에 구다(Cuthah)와 바벨론 인근 지역의 사람들을 이주 정착시킵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을 확 물갈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성서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준답니다. 야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혼내시느랴고 야훼께서 사자들로 하여금 사람들을 잡아 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시리아왕은 잡아왔던 이스라엘 사제를 사마리아에 돌아가 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sama5(사마리아의_전경)

새롭게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과 아시리아, 바벨론 등지에서 사마리아 땅에 이주한 이방인들 사이에서 새로 태어난 혼혈부족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종교 역시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 신앙과 이방 신이 섞이게 된 것입니다. 문화, 언어, 종교 등의 전통이 다른 새로운 종족이 그 좁은 땅 한 구석에 새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로부터 약 칠백 년이 훨씬 지난 예수 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만났던 사마리아인들의 조상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우리들의 머리 속에 기억해 놓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다는 사실과 예수 시대에 예수의 말씀 선포를 듣는 사람들은 이런 수백 년, 아니 거슬러 올라가 천 오륙 백년 전의 출애굽사건부터 그 말씀을 듣는 시대까지 모든 역사적 경험들을 공유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역사와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한국인들과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느끼는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엄연히 존재했던 서로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행위에서 사마리아인들은 어떻게 이해되었으며, 결국은 그 땅에도 그리스도 교회가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도행전의 기사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들만의 역사적 경험을 알고 넘어가자는 뜻입니다. 

두번 째는  호세아와 아모스의 심판 예언은 곧 다가올 일에 대한 선포였다는 점을 머리 속에 기억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오지 않으면(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그들의 예언, 곧 야훼의 선포는 단지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바로 현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훼의 선포에 대한 응답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멀지 않은 시간에 야훼의 날(아모스가 사용한 말입니다)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장 응답을 하라! 그러나 시간을 주겠다. 다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로 정리할 수 있는 예언자들의 선포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가자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나중에 우리들이 종말론, 또는 종말 신앙, 묵시 사상 등을 이야기할 때 아주 중요한 이해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번 째로는 이제 남쪽 왕국 유대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그들만의 역사적 경험을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처지가 비슷한 경험들이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최근 십수년 사이에 각 나라와 서로 간의 정세에 따라 작동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기구가 하나 있지요. 바로 육자회담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과 북조선 인민 공화국, 이렇게 여섯 나라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벌려 온 일련의 회담을 일컫는 것이지요. 

한반도는 남북 양 당사국을 둘러 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강대국 사이에  힘의 역학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비단 21세기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지요. 고조선 이래 오늘까지 북방세력과 바다 건너 일본, 20세기 이후에는 유럽과 미국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것이지요. 

그래 자주(自主)와 사대(事大),  민족의 주체를 찾다 멸망하느냐 비록 굴종이라도 번영의 길을 택하느냐 등등의 단순 이분법적인 싸움이 결코 그치지 않는 역사를 지니고 온 것이지요. 

바로 남왕국 유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런 역사적 경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북에는 아시리아, 북동엔 바벨론, 남쪽에는 이집트라는 강대국들이 에워 싸고 있는 상황에서 약소국 유대가 선택할 수 있는 길 역시 자주와 사대, 주체와 굴종 같은 이분법적 선택아래 놓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우리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고민했던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판단과 결정 기준이 바로 야훼 신앙을  근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야훼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입니다. 

자!  이 정도 머리 속에 꼭 기억해 두시고 남왕국 유대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 첫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가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