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食)과 색(色) – 예언자 8

(당신의 천국 – 서른 일곱 번 째 이야기)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이 하나님을 알아 주는 자 또한 없어 맹세하고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데 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 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 호세아 4 : 1-2 

내 아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에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그러나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 중략 –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신이다. 나는 거룩한 신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지만. 너희를 멸하러 온 것이 아니다. – 호세아 11 장 전체를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상 공동번역) 

1994년 8월 플레이보이사는 웹사이트를 개설함으로써 웹을 받아들인 최초의 대기업 중 하나가 되었다. 경영진은 <플레이보이>가  웹사이트가 있는 최초의 미국 잡지였다고 말한다.  – Peter Nowak의 섹스, 폭탄 그리고 햄버거(Sex, Bombs, and Burgers)에서 

여호수아, 예수, 호세아라는 이름의 공통점은 바로 그 뜻에 있습니다. 모두 “야훼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구원”이라는 호세아의 뜻처럼 호세아의  예언 및 메세지는심판과 멸망을 넘어선 구원에 촛점이 있습니다. 

타고나기를 여러 남자들을 거칠 운명이었던 아내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사랑은 바로 구원하시는 야훼에 닿아있는 것입니다. 

“너는 정부와  놀아난 네 아내를 찾아 가 다시 사랑해 주어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 건포도 과자 따위나 좋아하는데도 이 야훼가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 주어라.”(호세아 3 : 1) 

끊임없는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과 계약을 위반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오직 아내 밖에 모르는 순결남 호세아를 버리고 바람난 고멜과 견주어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야훼 하나님과 예언 선포자 호세아가 동일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야훼 신앙에 대한 모습 뿐만 아니라 실제 여로보암 2세 당시의 사회적 실상을 그린 호세아 4장 1-2절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정말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를 보는 듯합니다. 

살인, 강도, 사기, 간음, 강간, 유혈 등등으로 표현되는 사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또는 이 글을 누군가가 읽고 있는 시점의 그 날 하루 뉴스들을 훑어 본다면 그 사회는 바로 오늘이 될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예언자로서 사명을 삶의 의미로 살았던 아모스는 사회정의에 촛점을 맞추어 예언 선포를 했다면, 호세아는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시대의 모순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아모스는 식욕(食慾)에 촛점을 맞추었고, 호세아는 색욕(色慾)에 촛점을 맞추어 예언을 했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식욕과 색욕은 사람들 일반이  피할 수 없는 욕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입니다. 

불가(佛家) 또는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오욕(五慾) -재욕(財慾), 색욕(色慾),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 수면욕(睡眠慾) – 도 따지고 보면 식(재욕,  명예욕, 수면욕)과 색으로 단순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유가(儒家) 또는 유학(儒學)에서 말하는사단(四端)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 역시 따지고보면 식욕과 색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서 나오는 사람의 본성을 말하는 것일겝니다. 

(신구약 이야기가 끝난 뒤, 교회시대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한인 기독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불교, 유교, 선교, 미신등의 버리지 못한 전통 – 그 버리지 못함이신앙생활에 득일수도 있고, 실일 수도 있는- 들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피해갈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과 색욕을 통해 죄를 짓는 이스라엘과 사람들을 향해 멸망과 심판,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이루고자하는 야훼의 뜻을 전한 사람들이 아모스와 호세아였다는 것이지요. 

아모스는 부익부(잘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빈익빈(못사는 사람들은 더 못사는)이라는사회현상과 권력을 지닌 자와 부림을 당하는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향한 심판을 선포했다는 것이고요. 

호세아는 한편으로는 아모스와 동일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개인적으로 문란한 비상식적(이 말은 물론 야훼가 바라시지 않는 의미로)인 생활 태도에 대한 경고가 강조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심판은 피해 갈 수는 없지만 끝내 버리지는 않고 안고간다는 야훼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선포는 야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의 크기를 증명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식욕과  색욕은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죄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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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식욕과 색욕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들이 누리고 사는 기술문명의 원천적인 힘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답니다.   CBS 온라인 뉴스 과학기술 전문기자인 Peter Nowak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전쟁, 포르노, 패스트푸드라는 세 가지 ‘나쁜 것들’이 현대 기술문명을 이끌었다고 말하면서  인간 문명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열쇠라고까지 이야기한답니다. 

음탕하고, 사람을 죽이고, 건강을 해치는 나쁜 것들이 거의 모든 기술을 낳게되는 원인이 된다면서 그런 실례들을 여러가지 들고 있답니다. 

일테면 포르노는 인간이 이성을 잃고 지갑을 여는 산업인데다 소규모 사업체의 특징상 혁신이 빨라, 온라인 카드 결제, 화상 처리, 심지어 장난감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기술이 쓸 만한지 보려면 포르노 업계에서 통하는지 보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Peter Nowak이 말하는 식과 색이 인류 기술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점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그의 예언과 그의 삶을 통해,  인간으로서 한계 곧 식욕과 색욕으로 어쩔 수 없이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람들의 욕심보다 크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곧 다가올 멸망과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돌아오지 않는 북왕국 이스라엘은 결국 기원전 721년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그 때의 일을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답니다.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유대 밖으로 옮겨진 것은 선조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한 지 947년, 여호수아가  그들의 지도자가 된 지는 800년, 다윗의 손자 르호보암에게서 떠나 여로보암을 왕으로 섬기기 시작한 지는 240년 7새월 7일 만의 일이었다. 이런 비극이 이스라엘인들에게 닥친 것은 그들이 악을 버리지 않으면 이런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율법을 범한 때문이었다.” – 유대고대사 9권 14장 

이제 남왕국 유대의 예언자들과 유대 멸망까지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