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마흔 번 째 이야기)
그러나 에브라다 지방 베들레헴아, 너는 비록 유다 부족들 가운데서 보잘 것 없으나 나 대신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난다. 그의 핏줄을 더듬으면, 까마득한 옛날로 올라 간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그런 다음 남은 겨레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면, 그가 백성의 목자로 나서리라. 야훼의 힘을 입고 그 하느님 야훼의 드높은 이름으로 목자 노릇을 하리니, 그의 힘이 땅 끝까지 미쳐 모두 그가 이룩한 평화를 누리며 살리라. – 미가 5 : 1 – 4, 공동번역
성서와 예언사상이 겨냥하는 목표는 인간이다. 인간이 먼저 개조되고, 인간 속에 자리잡은 ‘악의 세력’이 극복되어야만 한다. 그 때에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 앞에 ‘가난한 자’가 되고 겸허하고 헌신적인 사람이 된다. – 서인석의 <오늘의 구약성서 연구>에서
앞선 글에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다른 점들 몇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언자 미가는 이렇게 서로 다른 유다와 이스라엘이 야웨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똑같다고 선언합니다.
남이나 북이나 야훼 하나님께 지은 죄를 놓고 보면 난형난제(難兄難弟)요, 오십보 백보이고, 도낀 개낀이라는 선언입니다.
미가의 통렬한 비판과 공격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 비판과 공격은 남과 북에게 똑같이 퍼부어졌습니다.
전통적인 생계 수단이었던 소작농들이 무너지는 현상은 아마 농촌출신인 미가의 직접경험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현상에 대한 경고나 부정직한 상행위에 대한 고발, 돈에 매수된 사제와 예언자들의 타락에 대한 심판 예언,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핍박하거나 못본 체 하는 왕과 권력에 대한 심판 경고들을 남과 북을 향해 동시에 선언한 것입니다.
“야곱 가문의 어른들이라는 것들아, 이스라엘 가문의 지도자라는 것들아. 정의를 역겨워하고 곧은 것을 구부러뜨리는 것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는 백성의 피를 빨아 시온을 세웠고, 백성의 진액을 짜서 예루살렘을 세웠다. 예루살렘의 어른이라는 것들은 삯을 받고 판결을 내리며 예언자들은 돈을 보고야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야훼께 의지하여,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데 재앙은 무슨 재앙이냐?”하는구나!” – 미가 3 : 9-11
“이 성읍에 사는 무리들은 들어아. 남을 등쳐 치부하는 것들아, 거짓말만 내뱉는 도시놈들아, 말끝마다 사기를 하는 것들아, 들어라. ‘천벌받을 것들, 부정한 되로 부정축재한 것들을 나 어찌 용서하겠느냐?’” – 미가 7 : 9 – 10
또한 미가는 허례 의식만 남은 예배와 제사, 심지어 이방 종교의 의식까지 섞여진 제사와 그 제사를 집행하는 지도자들에 대한 비판도 쏟아냅니다. 그러면서 미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 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미가 6 : 8)고 말입니다.
그러나 미가의 선포가 심판에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는 동시에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예언을 그치지 않습니다.
심판과 구원을 반복적으로 기록한 것이 미가서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신약의 마태복음(마태 2 : 6)이 인용하게 되는 미가서 5장 1절의 예언은 메시아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미가와 동시대의 인물인 이사야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장차 오실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우뚝 선 인물입니다.
미가 이야기를 마치면서 오늘 본 한국 뉴스 한 꼭지로 인해 제 머리 속에 이어진 생각 하나 덧붙입니다.
경상도 구미시의 시장이라는 者가 “박정희는 반신반인(半神半人) 이었다”고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내노라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고, 박정희 역시 그 한가운데 있는 인물입니다. 극과 극을 이루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한국사회가 그만큼 극과 극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대변하는 증표일 것입니다.
박정희에 대한 호, 불호나 긍정 평가 또는 부정 평가는 보는 사람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또 그런 다른 평가들이 자유롭게 논의되고, 떳떳하고 공정하게 서로 다른 의견들이 표출될 수 있는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귀신을 신의 반열에 올려 놓는 일은 정신 나간 행위 곧 미친 놈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태양절이라며 죽은 김일성 귀신을 섬기는 북이나 탄신절이라며 죽은 박정희 귀신을 섬기는 남이나 정말 도낀 개낀인 셈입니다.
성서적 관점, 적어도 미가 예언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북의 정권이나 남의 정권이나 죽은 귀신이든 산 귀신이든 사람을 신의 반열에 올려 놓는 정권의 말로는 그야말로 임박한 붕괴 뿐입니다.
미가의 예언대로 북왕국 사마리아와 남왕국 예루살렘이 결국은 모두 망했듯, 인간이 신의 자리에 올려지는 정권의 말로는 눈에 훤히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로는 “이미 왔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의 진리입니다.
<신적 진리에 기초하지 않는 진리치고 영속적인 진리 없고, 사회정의의 열매를 맺지 않는 진리 치고 참된 신적 진리는 없다.> S J Samartha 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