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마흔 한 번 째 이야기)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 – 이사야 6 : 3, 공동번역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 이사야 9 : 6, 표준 새번역 개정판
이제 우리는 우리들이 가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 길목에서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이정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기록입니다.
구약성서의 복음서라고도 불리우는 책입니다. 신약성서에서 인용한 구약성서의 책들 가운데 제일 많이 인용된 책도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특히 우리들이 나중에 만나게 될 바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잘 읽어 두고 머리 속에 새기고 가야할 책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환상, 메시아 시대, 메시아 왕국, 메시아의 통치, 주의 종, 야훼의 종, 메시아의 고난, 대속, 심판, 구원, 새 하늘 새 땅 등등의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사야서입니다.
우리들이 이제껏 만났던 아모스, 미가, 호세아 등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책입니다. 직선적이고 직정적인 예언자들과는 달리 때론 환상을 보고, 꿈같은 이야기를 하고, 심판과 구원을 이야기하면서도 때론 말이 바뀌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좀 어려운 책입니다. 바울의 이야기들이 어렵듯이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사야 이야기, 바울 이야기라고 하면 좀 쉽게 읽히지만 이사야 신학, 바울 신학 그러면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요. 같은 말인데 말입니다.
이제 나중에 만나게 될 “예수의 말씀”과 “바울의 이야기”를 비교하면서 들여다 보면 아주 쉽게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답니다.
쉬운 말과 어려운 이야기의 차이는 가방의 끈 길이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나무”를 설명하는 말도 어린아이 다르고 어른 다르고요. 어디 그 뿐인가요? 직업에 따라 설명하는 방법도 다를 수 있고, 왈 배운 정도에 따라 또 설명하는 말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나무는 나무”라는 사실이지요.
이사야서를 바로 읽는 눈과 생각을 세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이사야, 다니엘, 요한계시록 같은 책들을 잘못 읽고 엉뚱한 이해를 하게되면 하나님 나라와는 멀어지게 된답니다. 특히 가짜들과 사기꾼들이 이런 책들을 이용해 제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답니다. 이건 사람들이 살아 온 역사가 증명해 주는 일이지요.
자! 이제 서론 마치고, 이사야 이야기 서너차례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기의 상황과 그가 예언자로 나서게 된 연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렵니다.
그가 스스로 야훼에게 사로잡혔던 때가 우시야왕이 죽던 해(이사야 6 :1)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이사야가 예언을 시작했던 시기는 유다왕 아하스 때입니다. 이 때는 아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다까지 위협하던 시절입니다.
아시리아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직전에 아하스는 자주냐, 사대냐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일테면 북왕국 이스라엘과 수르(시리아) 등 약소국들이 동맹을 맺어 아시리아와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아시리아에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면서 왕국을 유지하느냐에 대한 선택을 해야하느냐 하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지요.
아하스왕은 아시리아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드리는 길을 선택합니다. 성서는 아하스가 죄를 지었다고 기록합니다. 이후 남왕국 유다와 예루살렘은 북왕국 이스라엘 처럼 아시리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 직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남왕국 유다가 아주 멸망 직전에 있을 때 이사야의 예언 활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의 출신 성분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궁중과 연관이 있는 많이 배운 자라는 점은 확실한 사실로 여겨집니다. 왕의 조카라는 설도 있고, 왕실의 기록관이었다는 설도 있답니다.
이쯤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이사야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기로 하지요. 그가 예언자로 나서게 된 까닭을 설명하는 것이랍니다. 다른 예언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답니다.
이사야서 6장을 꼼꼼히 살펴보는 일입니다.
먼저 이사야의 환상입니다. 환상이 무엇일까요?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계시를 드러내는 유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 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요엘서 2 : 28, 사도행전 2 : 17에서 인용)
마지막 때가 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야훼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평시에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예견이라는 것입니다.
그 환상을 통해 이사야가 본 것은 한마디로 “야훼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라는 것입니다. (6 : 3)이 때 ‘거룩’의 뜻은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다. 역사 이래 땅을 밟고 살다 간, 또는 살고 있는, 또 살아 갈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두번 째 주목해야 할 점은 이사야 스스로에게 하는 말입니다. (6 : 5)이건 다른 예언자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다른 예언자들은 막바로 사회, 정치, 종교적인 죄들에 대해 비판과 선언으로 들어가는 데 비해 이사야는 “내 잘못이 크다”는 회개로 부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자 천사(스랍)가 나타나 이사야의 죄가 사해졌음을 선포합니다.(6 : 7)
그리고 천사(스랍)들이 사라지고 야훼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습니다. ( 6 : 8)
“누굴 보낼꼬?” 라고 묻는 야훼께 이사야가 응답합니다. “제가 갑니다”라고요.
이렇게 이사야 이야기를 시작하고요. “거룩”에 대한 기억 한가지입니다.
제가 어릴 때만 하여도 “거룩하신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기도 소리를 거의 모든 예배 때마다 듣곤하였답니다. 이즈음엔 조금 듣기 힘든 것 같습니다.
뭐 제사의식이나 형식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한다고 하지만, 제가 이즈음 박수치고 양 손 올리고 이른바 찬양 예배 형식에 어울리지 못하는 까닭은 늙어가는 징조이기 때문일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