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열 여덟번 째 이야기)
그 때에 가서야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그 날에 야훼께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상 8 : 18, 공동번역)
이스라엘 부족들이 왕을 세우게 해달고 조르자, 내키지 않았지만 그 청을 들어 주기로 한 야훼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부족들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시도를 해 봅니다.
사무엘상 8장 10절에서 18절 사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왕을 세우겠다면 그렇게 하기는 하겠다만, 너희가 세울 왕들이 도대체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를 알기나 하느냐? 내가 미리 말해주마! 너희가 세운 왕들은 너희와 자손들에게 병역의 의무, 노역의 의무 등을 부과할 것이고, 비록 지금 네 소유인 것도 왕이나 주변 권력이 원하면 마음대로 빼앗아 가기도 할 것이고, 심지어 너희들을 종으로 삼는 일도 일어날 것이다. 또한 이제껏 나 야훼가 만든 법률인 율법에 따라 거두어 들인 너희 소득의 십분의 일과는 아주 다른 십분의 일세가 부과될 것이고, 이제껏 레위족속과 너희 부족들의 평등한 복지에 쓰여졌던 그 돈들은 왕과 그 주변의 배속 채우는 일에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이 일 곧 왕을 세우는 일로 너희와 제 자손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지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마지막 충고였지요. 그러나 끝내 이스라엘 부족은 이런 야훼의 마지막 충고를 외면하고 고집을 피어 마침내 왕을 세우게 됩니다.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이 있답니다.
애굽에서 탈출했던 히브리족들의 기억 속에는 분명 애굽 곧 이집트의 왕들의 모습들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고향 땅 우르에 있었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왕들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가나안 땅에 먼저 뿌리 내리고 살던 부족들의 모습에서도 많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왕에 대한 모습입니다.
우리로 치면 단군이나 일본, 몽골 등의 왕의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답니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설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거의 맥락에 있어서는 같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고대의 왕들은 곧 신(神)과 동일한 위치에 있거나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답니다.
‘단군’이라는 말의 어원을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미루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당골’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요. 바로 무당 곧 신과 사람과의 중개자라는 뜻이지요.
고대의 왕들은 신 또는 신을 대행하는 사람이었답니다. 이게 뭔 말이냐하면 “왕 마음대로 자기 지경에 있는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2013년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언론에 등장한 말 가운데 하나가 “순장(殉葬)”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제가 언제부터인지는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노무현 아니면 김대중 대통령 퇴임 이후에서 부터 퇴임 대통령 이후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이 말을 쓴 것 같습니다.
“순장조”라는 말로 말입니다.
저는 전두환 치세 말기에 이민을 와서 솔직히 잘 모릅니다만, 특히나 인터넷이라는 희대의 물건이 뜨기 전까지, 아니 제게 생활화되기까지 전두환 말기부터 김대중 대통령 퇴임 무렵까지 한국 신문을 거의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대해서는 어둡답니다. 뭐 그 때 그랬다는 말이지요. 이제는 알고자 노력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이즈음 제가 보고 있는 신문 또는 잡지를 들면 조선, 동아, 중앙, 경향, 한겨레, 오마이, 뉴스타파, 국민 TV 등등의 한국 매체에서 부터, Washington Post, New York Times, The Times를 비롯한 미국내 지역 신문들까지마음 먹고 시간 나면 아무데나 수시로 들어가 볼 수가 있답니다.
그런데 2013년 현재 한국 언론은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참 똑똑한 젊은 이들이 취재를 할 것이고, 오랜 경험이 있는 데스크가 판단들을 하겠지만, 돈에 너무 매어 있다는 것이 첫 번 째이고, 그러다보니 쓰는 언어나 보도 태도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점입니다. ‘순장’이라는 말의 사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 오지요. ‘순장’이란 왕이나 그 주변의 권력자가 죽었을 때 그 죽은 이의 재산인 사람이나 동물들을 산 채로 또는 죽여서 함께 묻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부족들이 왕을 세울 무렵 왕권국가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일어났던 일이고, 세계사로 보자면 약 오 륙 백년 전까지 남아 있던 풍습이랍니다. 왕의 절대 권력은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부족에게 경고했던 것보다 훨씬 사나웠다는 사실입니다.
탈애굽 40년과 사사(판관)시대 약 200년 동안 이스라엘 부족 동맹은 신정체제 곧 신이 직접 다스리는 시대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등함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꿈꾸어 왔고, 그것이 가나안 세상이라는 자기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오랜 동안 겼었던 노예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 두어 세대를 지나면서 야훼에 대한 믿음과 조상들의 경험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그런 징조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에서 17절의 기록에는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엘의 스승 엘리사제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그 권력을 마구 사용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사무엘상 8장 1절 이하에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돈을 받고 재판을 하거나 행정을 보는 뇌물수수죄를 범하고 있다거나 사무엘상 22장 1, 2 절에 다윗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 “억눌려 지내는 사람,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 그 밖의 불평을 품은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평등한 가나안의 꿈은 사라진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첫 징후이자 모습이라고 제가 말씀드렸던 평등한 세상으로써의 하나님 나라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왕국의 첫 임금인 사울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가지는 짚어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운 역사적 사실, 고백들과 다른 민족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아주 큰 차이 두가지입니다.
첫째 고대 왕국 시조왕들은 대부분이 왕이 내려와 백성을 다스리거나 백성들이 원하는 것들을 먼저 알아서 해 주었기에 왕이 되었다(중국의 예)는 설화들을 지닌 반면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원해서 그리 되었다는 점이고요.
두번 째는 고대 왕국의 왕들은 대개 신의 반열과 동일시 되거나 중개자의 모습이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철저히 야훼 신 앞에서는 백성들과 동일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