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번외호)
불레셋군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동원령을 내린 때였다. 아기스(블레셋의 왕)가 다윗에게 일렀다. “그대는 부하를 거느리고 우리 대열에 끼어 같이 출전하게 될 터이니 그리 아시오.” 다윗이 “알았습니다. 분부만 내리시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하자 아기스는 다윗에게 “그렇다면 나는 장군을 나의 종신호위대장으로 삼겠소.”하였다. – 사무엘상 28 : 1-2, 공동번역
한주간의 일을 마친 토요일 저녁입니다. 아내도 출타중이어서 혼자 느긋한 저녁상도 즐기고 설거지도 마치고 오늘의 제 마지막 과제인 “당신의 천국” 연재글을 쓰려고 앉았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일생 가운데 정점이었던 다윗의 도성(都城) 예루살렘 입성까지의 일을 더듬어 보려는 생각이었답니다.
그러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10월 26일입니다. 제가 사는 미국 동부시간으로 말입니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날입니다.
제 나이 이십 중반일 때의 일입니다. 지난 일에 “만일….”이라는 상상은 허전하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만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이 한 두해만 늦추어졌거나 좀 빨랐다면 다른 건 다 모를 일이지만 제 인생은 조금 다른 길을 걸어 오지 않았을까하는 그저 늙막에 그림이나 그려 보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 가운데 가장 호사스런 때였습니다.
1975년에 다니던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고, 징집되어 군생활 마치고 제대한 것이 1977년 성탄전 날이었답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학교로 되돌아 갈 길도 없었고 말 그대로 백수였던 젊은 날이었지요.
그러다 이듬 해 봄부터 신학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었답니다. 한국신학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선교교육원이라는 평생교육기관이 당시 서대문 충정로에 있었답니다.
그 곳에서 저처럼 본의 아니게 백수가 된 젊은이들을 위한 신학공부의 장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역시 본의 아니게 당시에 백수가 되신 분들이셨습니다.
서남동,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 이우정, 김용복, 송건호, 이문영, 박현채 선생님 등등 그야말로 당시 이름만 들어도 설레던 분들 에게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함께 배우던 친구들이 약 이십 여명 쯤이었는데 저보다 한참이나 앞선 친구들이라 쫓아가느냐고 엄청 애쓰던 때였답니다.
그 때 그 분께서 궁정동에서 그렇게 가시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신학공부를 계속하면서 학문을 하거나 목사가 되거나 그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요.
아무튼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사건으로 인해 우리들은 다니던 대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답니다.
십년만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답니다. 그래 이번엔 진짜 목사의 길을 가보자하고 제 신앙의 본고장인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신학교인 장신 이른바 광나루 신대원에 입학을 했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제게 맞지를 않던 것이었습니다. 그래 하나님께 기도와 서원을 했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 나이가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한 오십까지 좀 살다가 인생을 좀 알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요.
그리고 이제 환갑줄입니다만 영영 그 서원은 짐으로 지고 갈 모양입니다.
박정희. 지금은 그의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였다고 말해도, 해방후 남조선 노동당 군사총책인 빨갱이였다고 해도 잡혀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1960, 70년대에는 그런 말을 하면 잡혀 갔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 쉬쉬하는 모습이지요. 고만큼 부끄러움은 남아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윗 역시 그런 과거를 지닌 인물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부끄럼없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답니다.
사울과 왕권을 놓고 다투다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적군인 블레셋의 호위대장이 된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울과 블레셋의 아기스가 서로의 총력을 다해 마지막 일전을 앞 둔 시점에서 다윗은 블레셋에 충성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출전을 코 앞에 두고 블레셋의 장수들이 다윗의 출신을 트집잡아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다윗은 블레셋 왕에게 다시 한번 굳은 충성 맹세를 합니다. (사무엘상 29장)
만일 그 싸움에 다윗이 출정을 했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기억이나 성서의 기록에 그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민족과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가 적군에 빌붙었던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대의 기록자들도 그러했고 다윗을 기리는 유대인들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박정희의 인물을 비교하자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시장터의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사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인물의 장단점이 있는 법이거늘, 신 앞에서 비교해 본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건물의 높이겠지요.
다만 어떤 인물을 기리는 그 시대 정신을 생각해 보자는 뜻입니다.
다윗의 변신은 야훼 하나님과 신명기적 법정신을 이스라엘에게 심었고, 박정희의 변신은 잘 살아 보세와 하면 된다는 정신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결과는 신 앞에 홀로 설 줄 아는 인간, 신을 두려워 하는 인간을 낳았고(나중에 다윗의 시편들을 이야기 할 때 이런 거 이야기하렵니다.)
박정희의 결과는 오늘 누리는 힘(돈, 권력, 명예, 성 등등)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움이나 신은 사치일 뿐인 인간을 낳았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좀 엉뚱한 데로 이야기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번외호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