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천국 – 여섯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출애굽기 3:7-8. 공동번역)
아직도 징병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자란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군복무를 마치게 마련입니다. 군복무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의 심신허약자이거나 사회부적응 경험이나 판단으로 징역형을 받았거나 국가가 면제하는 조치에 해당되는 자가 아닌 정상적인 젊은이라면 누구나 일정기간의 군복무를 해야만 하지요. 물론 군복무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도 있지요.
근데 내노라하고 이름이 알려진 이들 가운데 제법 많은 이들이 군복무 경험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들을 종종 듣는답니다. 왈 특권층이지요. 아마 그런 사람들은 이런 꿈을 꾸어 본 경험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꿈이냐고요?
징병제도 아래서 군대를 다녀 온 이들이 꾸는 아주 전형적인 나쁜 꿈 바로 악몽은 군대 다시 끌려가는 꿈이랍다. 분명히 제대를 했는데 어떤 이해하지 못할 이유로하여 다시 새롭게 군복무를 해야만하는 꿈을 꾸는 것이지요. 이런 꿈을 꾸다가 깨고나면 정말 기분 더럽답니다.
이런 기분을 꾸어 본 사람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뭐 요즘에야 군 복무 기간이 짧으니, 우리 때와 비하면 두 번 갔다와도 된다고 한다면 아마 지금 군대 복무하는 젊은이들에게 매맞기 십상일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의 만기는 약 34개월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군대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죄송합니다만은 당시 제대를 손꼽아 기다리며 군생활을 하는 말딴 졸병들이 즐겨 쓰던 말 가운데 “뭣으로 뭉개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는 말이 있답니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가 살아서 분명히 그 끝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란 제대라고하는 군복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게 종말의 역사관에 대한 아주 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제대를 했는데 또 다시 군에 끌려가는 꿈을 꾸다니! 개뿔! 무슨 종말!
악몽에 시달려 본 사람들은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서가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3500여년전 이집트로 돌아가 봅니다.
출애굽기 3장 첫 부분을 보면 야훼신이 모세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가 야훼신을 찾은 것이 아니고 야훼신이 모세를 먼저 부른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바로 출애굽기 3장 7, 8절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어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너희들이 지금 겪고 있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슬픔, 두려움 등등 사람으로서 피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겪고 있는 모습을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 내가 너희들을 구원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내주마라는 말이지요.
약속입니다.
다시 군대이야기.
징병제도 아래서 징집기간이 정해지지 않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일테면 일단 징집이 되면 죽기 전엔 나올 수 없다면 말입니다. 아마 징병제가 제대로 실시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징병제는 끝이 보이는 약속이 가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3500여년 전 모세에게 야훼가 한 약속은 분명 징집기간을 정해 놓은 약속이었답니다. 바로 가나안이라고 하는 확정된 땅을 약속했다는 말입니다. 넉넉잡아 한 달이나 달 포 반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약속이었다는 말씀이지요.
그 약속을 믿고 애굽의 노예상태보다는 훨씬 나은 삶이 보장될 것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모세와 히브리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나섰지요.
그리고 배가 고팠고, 맛난 것도 먹고 싶었고, 목도 말랐었던 가운데 약속의 신이 이런 아픔과 어려움들을 해결해 주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을 합니다.
비록 달 포를 넘어 삼개월이 되었을 무렵 “이제부터 시작하는 계약서를 쓰자”라는 야훼신의 요구(십계명 사건)를 무리(민족)들이 이것만이 오직 살 길이라고 고백하는 것도 이제 바로 도달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달 포를 넘어 일년이 지나 사십년이 흐른 후 다달은 땅, 가나안은 결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답니다.
다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고대하며 걸어 온 사십년의 세월과 그 시간 속에서 맺었던 약속들만이 남아있었을 뿐이지요.
이번 한 주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