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신(神)의 무상급식법-2

(당신의 천국- 세번 째 이야기) 

야훼의 명령이니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 들여라. 한 사람에 한 오멜씩 식구 수대로 거두어 들이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키는 대로 하였다. 많이 거두어 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덜 거두어 드리는 사람도 있었으나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결국 저마다 먹을 만큼씩 거두어 들였던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16-19절, 공동번역) 

제 나이 어렸을 때의 기억입니다. 아마 국민학교 입학 전후 무렵일 터이니 1950년대 말에서 1960대 초 쯤의 제 기억일 것입니다. 친가보다는 외가 친적들이 많았답니다.  특히  한남동 토박이 외할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한 시절이어서 명절이면 외가에 모인 친척들이 수십명이 넘었답니다. 

제가 한 살 터울 외사촌 형과 막걸리에 취해 어른들의 놀림을 받던 시절이었답니다. 

잔치상에 한 잔 얼근해 지신 어른들의 이야기는 한 곳으로 모이곤 했답니다. 대청 마루에 진을 치셨던 외할아버지 항렬의 할아버지들이나 건너방의 외삼촌들과 큰 형님들 사랑채 차지였던 아버지나 이모부들 예외가 없었답니다. 

이야기의 꼬리가 물려 이어지던 이야기는 바로 6.25 전쟁 때 이야기였답니다. 

6.25a

할아버지들의 피난 이야기나, 큰 외삼촌의 국민방위군 시절 이야기, 아버지와 둘째 외삼촌의 전쟁 이야기, 막내 삼촌과 큰 형님의 피난 이야기 등등 오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리 만큼 듣고 또 들은 이야기들이랍니다. 

외가 일가들이(당시 용산 미군 부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 덕에 우리 가족들도 한남동 외가의 일원이었답니다.) 피난 행렬에 합류한 것은 한강다리가 끊어진 이후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강을 접하고 있는 한남동의 특성상 배를 타기가 쉬었기에 한강을 쉽게 건넜다고 합니다. 

외가의 피난 행렬이 천안을 지날 무렵 이고 지고 온 먹을 거리들이 동이 났고, 가락지들을 팔아야 하는 끼니를 때우는 처지들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뿔뿔이 헤어지게 되고 부산에서 다시 합류하여 한남동으로 되돌아 오기까지의 그 긴 소설들을 들을 수 있었답니다. 

국민방위군_징집자들

제 외가의 피난 이야기를 돌아보면 급하게 짐을 꾸려 떠났지만 서울서 천안까지는 먹을 만큼의 양식을 이거나 지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의 양식이면 바로 돌아 올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들도 조금은 했을 것이고, 당시 지니고 떠날 양식의 전부가 그 것 뿐이었을 수도 있겠고, 운반 수단상 그 이상은 짊어지거나 이고 갈 수가 없었을 수도 있었을 겝니다. 

그 피난 대열에서 외가의 모든 식구들은 무사했고, 다시 다 한남동으로 모였다고 합니다. 다만  저 보다 일곱 살 위인 누님이 어머니 곁을 떠났다는 이야기와  제일 거지 차림으로 해골만 남은 모습으로 돌아 온 가족은 국가에서 불러서 동원되어 국민방위병이 되었던 큰 외삼촌이었다는 이야기가 아직 생생하답니다. 

자! 3500여년 전으로 중동의 시내 광야로 돌아가봅니다. 

탈애굽을 한 백만(사실 이 숫자는 아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직은’ 이라는 말을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에 이르는 노예 무리들이 강을 건너 광야에 들어섰습니다. 

이들이 애초 목적지로 정한 가나안은 무리들이  약 한달 정도 걸으면 도착 가능한 거리였습니다. 적어도 한 달 정도 먹을 양식은 탈애굽을 할 때  너나없이 챙겨왔을 것입니다.  한 달 반쯤 지났을 때 굶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무리의 우두머리인 모세를 비롯한 왈 지도부에게 원망의 소리를 드높혔다는 기록을 보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먹는 것으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의 기록을 보면 아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노예들이 원망하고 항의하는 대상은 모세와 지도부였습니다.(출애굽기 16장 3절) 모세와 지도부가 모여서 구수회의를 하고 대책 마련을 하고 어쩌고 하는 일은 없습니다. 무리들의 원망에 바로 야훼 신이 개입해서 해결책을 내어 놓습니다.(출애굽기 16장 4절) (모세와 지도부는 허당이었다는 것인데요. 요거 나중에 또 이야기 합니다.) 

“내가 먹을 것 준다”는 약속입니다. 

야훼라는 신이 개입하는 세상, 곧 야훼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의 기본은 “먹을 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나라는 음식이건 햄버거건 육개장이건 아니, 하다못해 풀죽이건 굶어죽이지는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성서 이 부분에 대한 뛰어난 주석들도 많고, 오늘도 많은 설교가들이 다양한 해석들을 남기지만 신의 선언은 “내가 다스리는 한 굶어 죽지 않을 먹을 거리는 공짜로 준다”는 것입니다. 

제가 성서 이야기에서 실락원 이후에 처음으로 만나는 하나님의 나라 바로 천국의 모습입니다.  제가 죽음 이후에 만날 천국의 첫 모습인 동시에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첫 번째 동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굶어 죽지 않을 만큼 공짜로 먹을 거리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의 확대사”야말로 인류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대사가 인류 역사라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사람들,  곧 절대 기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10억에 가깝다고 하지만 그 퍼센테이지는 인류 역사의 발전과 함께 꾸준히 줄어왔습니다. 

성서 이야기에 나오는 신(神)의 무상급식법 제 일장 제일조는 “누구라도 굶어 죽지 않을 먹을 거리는 공짜로 준다.”는 것입니다. 신이 세상을 다스리는 한 그렇다는 말입니다. 

한달 정도 걸릴 거리를 사십년이 지나서야 도달한 히브리족의 숱한 사연들 처럼 아주 간단할 것 같은 “누구라도 굶어 죽지 않을 먹을 거리는 공짜로 준다.”는 신의 선언은 ‘하나의 조건’으로 하여 35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미완성의 선언으로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답니다. 

하늘나라의 두번 째 모습,  바로 평등의 문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