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단 한사람만이라도…

round table모처럼 반가운 선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했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와 이해의 폭이 엇비슷한 이들이랍니다.

필라델피아, 남부 뉴저지, 델라웨어 등에 사는 지리상으로는 가까운 이웃들입니다만 일년에 한 두어차례 만나면 자주 보는 폭이랍니다.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의 단골메뉴들은 건강이야기, 음식이야기, 우리나라 이야기(미국), 조국 이야기(남, 북), 평화, 민족, 통일 등등 자잘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거대 담론까지로 이어진답니다. 

그리고 모여 작은 계를 함께 한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계의 형태랍니다.

일반적으로 계란 먼저 돈을 탄 이들이 이자를 내고 나중에 타는 이들은 이자를 받고하는 구조이지만 우리들의 계는 이자는 내지만 이자돈은 받지 않는 계랍니다. 

1번 계돈을 받는 사람도 마지막 계돈을 받는 사람도 받는 돈은 똑같답니다. 다만 먼저 타면 이자를 순서에 맞추어 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이자를 모아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쓰는 것이지요. 

제법 새 일을 할 만한 돈이 모여 비영리 단체로 등록도 마치었고, 오늘 모임을 통해 한걸음 썩 나아갔답니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 우리들이 나눈 이야기가 한마디랍니다.

“누군가 단 한사람만이라도, 우리들을 이해해 준다면… 우리들의 일이 헛되지 않을터…”

여유 – 그 사람 냄새

연휴 첫날 아침에 전혀 계획에 없던 얼굴을 만났습니다.

물론 저를 만나기 위해 그가 불쑥 찾아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가 만든  14년 만의 계획 속에 제가 우연히 함께 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14년 만이라고.

 

그가 서부 어느 곳인가에서 살고 있고, 그를 만나려고 맘만 먹으면 대여섯 시간이면 만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던 탓에 제 기억 속에 그는 대여섯 시간의 거리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14년이 흘렀다고 그가 말했답니다.

이제 손주가 셋, 곧 넷이 된다고 했답니다.

 

모처럼 그가 던진 메세지가  참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답니다.

평안함.

사람 냄새나는 평안함.

내 또래인 그의 몸에 배인 냄새였습니다.

 

강가를 거니며 그가 읊조린 노래가락입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 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서른즈음에” 를 “예순 즈음에” 부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는 그 이별 위에서 자유하는 진리를 툭 던지고 갔답니다.

“자비를 간구” 할 수 있는 바로 그 여유,

바로 그 진리 말입니다.

 

참 좋은 벗과 함께 했던 2013년 메모리얼 데이 연휴였습니다.

 

 

 

256

10분의 여유

지금은 뉴욕에 계시는 문동환목사님께  기독교교육학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벌써 35년 전 일입니다. 어느날 강의실에 들어 서신 목사님께서는 종이 한 장씩을 나누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여러분들은 지금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내방송이 나옵니다. ‘비행기가 심각한 이상이 생겨 추락하고 있습니다. 약 10분 후 이 비행기는 태평양상에 떨어 질 것 같습니다.’ 자 ! 여러분에게 10분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내가 나누어 드린 종이 위에 글이든 그림이든 이 상황에서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을 적어 보십시요.” 

 

그리고 10분 후 목사님께서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

62p

 

“최근에 승객이 모두 죽은 비행기 사고가 있었습니다. 시신조차 찾기 힘든 사고이었지요. 그런데 사고현장에서 어느 일본인이 남긴 짧은 기록을 발견하였답니다. 거긴 이렇게 쓰여있었답니다. ‘내게 10분의 여유가 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감사한다. 사랑한다.’라고요. 자! 이제 여러분들이 남긴 것들을 공개해 볼까요.”

 

그렇게 채 열 명도 되지 않았던 우리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각자의 유서들을 공개했었지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그 때 제가 무어라 했었는지는 기억에 없네요.

 

지금의 내가 “10분의 여유”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내가 그 짧은 시간 사랑과 감사를 고백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이야기 하나.

 

무려 삼십 팔년간을 쫓겨 다니며 사셨던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선생님 이야기지요.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는 삶을 살았던 선생님이시지만 늘 일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하지요.

 

어느날 멍석을 짜고 계신 해월선생님께 어느 도인(道人)이 물었답니다.

선생님 내일이면 또 떠날 길인데 멍석은 무어라 짜십니까?”

해월선생님 왈,

“내 몸이야 떠나지만 여기 멍석이 있으면 훗날 누구라도 이 곳에 와서 쉬지 않겠는가?”

 

늘 마지막인 순간에도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참 도인(道人)이겠지요.

쪼금 아는 체 하는 것 용서해 주시기 바라고요.

이러한 삶들을 일컬어 ‘종말론적(終末論的) 삶’이라고 하지요.

 

종말론적 삶에는 무엇보다 치열함이 있지요.

그 치열함 속엔 여유와 넉넉함과 사랑과 감사 그리고 나눔이 있게 마련이고요..

 

무엇보다 종말론적 삶에는 끝없는 희망이 살아 숨쉬는 것이지요.

 

내래 뭘 알겠노?

글 한 줄 쓰자하고  앉으면 나오느니 육두문자 뿐입니다. 그래 차마 글 한 줄 못쓰고 한 주가 지나갑니다. 

“내래 뭐 알겠노.”하시며 평생 소주잔에 몸과 맘을 담고 사시다 가신 피양도 피난민 처고모부가  아마 이즈음 제 심정으로 세상을 사셧을 겝니다. 

떠나온지가 한 세대에 이르러서인지 도대체 “내래 뭐 알겠노”의 연속입니다. 그냥 모르고 안보면 되는 일인데 세상사는일이 어째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딱 그 나이의 딸아이를 키우는 아비로서  늘 아이에게 하는 말이 있었답니다. 건강한 미국시민으로 살되 한국인임을 잊고 살지 말라는… 

51754466_1-51743968_2

처음 윤모라는 자의 뉴스를 접했을 때는 “참 철따구니 없는 놈일세”하며 끌끌 혀차고 말았답니다.  이즘 세상에 미친 놈들이 한 둘도 아니고, 그 놈도 그 중 하나겠거니 했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폼새가 그게 영 아닙니다. 

윤모라는 놈은 바로 지금 오늘의 대한민국  자화상이라는  게 이즈음 제 생각이랍니다. 

거기까지 이르니 이제 제가 정신병자가 됩니다. 

하여,  제 정신건강을 위하여 하는 말입니다. “내래 뭘 알겠노?”

봄, 밤

아침 저녁으로 서늘함을 느끼는 오월은 처음인 듯합니다. 생각의 한계인 줄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쩜 늙어가는 탓인 줄도 모를 일이고요.  저 뿐 아니라 지구도 함께 말입니다.

꽃과_등

중순으로 접어드는 오월, 여전히 꽃잎들이 날리는 봄이랍니다. 

꽃은 떨어지며 열매를 품습니다.

기억 용량이 그리 크지 않은 제 작은 머리속에도 수많은 꽃들이 떨어지며 품었던 열매들의 꿈들이 남아있답니다. 끝내 이루지못한 꿈들, 아직도 맺지못한 열매들이 말입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오월- 그렇게 떨어진 꽃잎들이 품었으나 맺지 못한 열매들을 추억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밤입니다. 하루의 시작인 시간입니다. 구태여 유태인들의 시간관념을 빌어오는 까닭은 지금의 쉼이 곧 시작이고 싶은 꿈 탓입니다. 

봄 그리고  밤.

바로 봄밤이기에

비록 아쉬움 많아도 서두르지 않는답니다. 

 

봄밤

–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한계(限界)

노인이 하우에게 말했다.

“태양이 하나라는 건 알고 있지?”

“태양이 하나라는 건 알지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들고 하우에게 내밀었다.

“자, 보게. 사진이라네.”

하우는 사진을 건네받았다. 두 장이었다.

언뜻 보기엔 꼭 같아 보이는 두 장의 사진. 수평선 너머에 있는 태양을 찍은 것들이었다.

sunset

“둘 중에 어떤 게 일출 사진이고 일몰 사진인지 분간할 수 있겠나?”

하우는 사진을 이리저리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나 딱히 일출과 일몰을 구분할 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둘 다 일출 사진이라고 해도, 둘 다 일몰 사진이라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았다.

물론 자세히 뜯어보면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만, 얼핏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르신, 분간하기가 어려운데요.”

 sun

노인은 손가락으로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일출 사진이라네. 당연히 다른 사진은 일몰 사진이고.”

그 말을 듣고 사진을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노인은 말했다. “일출이건 일몰이건 똑 같은 태양이지. 어떤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야. 한계도 마찬가지지. 그걸 일몰이라고 보면 일몰인 거고 일출이라고 보면 일출인 거라네. 한계는 말이지, 꽉막힌 벽이 아니라 허들 같은 거라네. 뛰어넘으면 그만이지. 최선을 다해 뛰어넘어 보게. 힘들면 가끔 숨도 돌리면서 말이야.” 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        김현태 『향유고래이야기』중에서 – 

주일 오후에 읽은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한계는 뛰어 넘으면 그만이랍니다. 최선을 다해…

힘들면 가끔 숨도 돌리면서…

아주 큰 행복

예년에 비해 달포는 늦은듯한 봄이 천지에 가득합니다. 뒤뜰에 등나무가 연보라빛 연등을 켠 것을 보면 올해는 봄과 여름이 함께 하려나 봅니다. 

4550550등나무6_n460330

오월 초하루, 느긋함으로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An early-morning walk is a blessing for the whole day.”라는 말처럼 봄이 가득한 이 아침을 마시며 하루가 아닌 한해의 축복을 느껴봅니다.

언젠가  미국인들의 <행복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는 것 곧 소유와 소비가 행복의 척도였는데 이젠 <마음의 행복>이라는 잣대를 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가 내다 본 세상은 작은 것이 아름다운(Small Is Beautiful) 세상입니다. 

“경제학이란 보다 적은 소비로 보다 큰 행복을 추구하는 것”, 바로 슈마허의 말입니다.

<부자나라에서 좋은 것이 가난한 나라에도 좋은 것이라는 가정은 옳지 않거나 아주 작은 부분에서만 적용될 뿐 대부분의 틀린 것이다> 역시 슈마허의 말입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지나치게 <비교행복>에 빠져들다 보면 불행을 낳을 뿐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봄날 아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지금 제가 누리는 아주 큰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