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된 사내 이야기 10

성서는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곧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를 하기 전, 예수가 사탄에 이끌리어 세 가지의 시험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돌로 밥이 되게 하라”, “기적을 보여라, 신이 너를 지키리니…”, “나를 경배하라, 세상을 네게 주리라” 하는 세 가지 시험 말이다.

이것은 바로 당시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던 유대 민중들이 원했던 절실한 바램을 해결해 줄 세가지의 열쇠이었다. 경제, 정치, 종교적 압제에서의 해방을 이루어줄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시작부터 “아니오”였다.

당시의 민중들이 바라는 해결책을 처음부터 “아니오”하며 그들 앞에 선 사람이 예수였다.  갈릴리 해변에 모여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예수와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까닭이다.  예수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처럼 밥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그런데 밥을 바라보는 예수와 듣는 청중 사이에 간격이 있었고,  그 간격 때문에 예수가 죽는다는 말이다.

밥의 문제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려 온 사람들의 관심은 제 배 채우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나누는 밥”을 말하였던 것이다. 있는 분, 없는 놈이 예수의 관심이 아니었다.

성서를 다 인용할 수가 없다. 만일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지금 성서를 찾아 읽어 보라. 신약성서 누가복음 14장 12절에서 24절까지이다. 얼핏 읽으면 부자에 대한 피해 망상적인 기피증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일방적 편애가 나타난 것 같지만 “아니다”이다.

밥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을 예수는 우선 피력하였고 예수의 관심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잔치상에 모든 이들을 초대한다. 있는 놈, 없는 분을 가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도 나온다. 누가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열었다고 하였고 마태는 왕이 잔치를 열었다고 기록한다. 어쨋거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먼저 초청을 받은 이들은 그들의 가진 것 때문에 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주인은 가난한 자, 불구자, 소경, 절뚝발이는 물론이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불러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한다. 잔치상이 무엇인가?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 나누어 먹는 잔치상을 차려 놓은 것은 주인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초대한 주인은 애초 어떤 편파성을 띄고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나누어 먹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잔치상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밥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끝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밥을 나누는 나라인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예수가 말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감을 얻어 “밥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 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기적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누어 먹는 밥상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김지하 이야기 나왔으니 한마디 하고 갈까. 그가 ‘밥이 하늘이다’고 선언했을당시만 하여도 그는 맨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 ‘나누어 먹는 하늘’이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던가? 그도 제 배가 고팠을 터이고… 선언이 아뿔사였겠지. 그를 탓할 일 없다. 느끼고 깨달으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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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쉬우리라”고 가히 혁명적 선언을 한 예수의 참 뜻은 바로 나누어 먹는 밥상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결코 자랑일 수 없으며 부를 누리는 것이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부와 가난의 본질 곧 나누는 밥상 정신이 있고 없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았다고 자부하는 부자청년이 “영생의 길”의 길을 묻자 그에게 한 대답 아니 명령은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갈파한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 내용이다. 나누는 밥 말이다. (나누는 형식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터이고, 비록 돌고 돌며 때론 뒷걸음치는 것같지만 그래도 공평한 방법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 있는 이들에 의해 역사는 발전해 나갈 것이다.)

두 번째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을 누리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누어 먹는 곳”이라는 말은 아주 현실적 표현이다. 나중에, 뒤에 가서, 그 날에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누어 먹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웠다”

 

 

***오늘의 사족

오병이어 곧 물고기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마리 그거 한 번 생각해 보자.

오천 명이 있었다. 애들과 여자는 빼고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종교적 모임 그러면 당연히 여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 거기 얼마나 있었을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명은 넘었었겠지. 글쎄 그 당시 인구로 이게 가능했을까? 믿자. 믿음인고로.

그러나 그 광야에 그렇게 나 온 이들 가운데 먹을 거 가지고 온 사람이 달랑 한 가족 뿐이였을까? 그건 아니였겠지. 딱 자기들만 먹으려고 짱 박고 있었겠지. 움켜 쥐고 있었겠지. 나와 내 가족들 배채우는 게 우선있을 터이니…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다. 기적은 있다. 나누려는 맘이 바로 기적의 씨앗이었다. 예수의 기적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 아닐까?

열 두 광주리 남은 이야기는 이 글의 이부(가슴으로 만난 예수 이야기)에서 이어가려 한다.

 

 

오만 잡생각

오만 잡생각”

이런 저런 걱정거리나 머리가 복잡할 때 종종 쓰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오만 잡생각”이라는 말엔 아주 과학적인 근거가 있더군요. 아주 재미있는 연구결과를 하나 말씀드리지요.

 

National Science Foundation(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연구 결과랍니다.

 

사람은 보통 한 시간당 천 개가 넘는 생각을 한답니다. 물론 생각의 편린 곧 생각의 조각들(fragments)의 숫자이지요.  지금 저처럼 어떤 글을 쓰고 있는 상태에서는 시간당 약 2천 5백가지가 넘는 생각들을 한다고 하네요.  보통사람들은 하루에  일만 이천개 정도의 생각을 하며 살고요. 생각을 좀 많이 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약 5만개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하지요.

 

참 우리 선조들은 연구하지 않아도  다 아시고  “오만 잡생각”이라고 하셨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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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지요. 보통 사람들은 하루에 5만에서 6만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요. 그런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그 오만 잡생각 가운데 15% 정도는 긍정적인 생각들이고 나머지 85%가 부정적인 생각들이랍니다. 일테면 걱정, 근심, 불안 등등과 연관된 생각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지요. 

 

이게 저만 그런 게 아니고, 당신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젠가 고 김대중대통령의 마지막 일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를 죽 읽다가 저를 사로잡은 것은 2월 7일에 쓰신 단 두 문장으로 된 일기였답니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제가 감히 거기에 무슨 사족을 달겠습니까? 그냥 가슴이 싸하게 다가 온 말씀이었지요.

 

그 분도,  아니 그 분은 저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달리 많은 생각을 하시며 사신 분이지요. 어쩌면 하루에 5만, 6만이 아니라 10만, 20만 아니 그 이상의 생각들을 하시며 사셨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하루를 보내고 그 날의 일기에 달랑 저렇게 두 문장으로 정리해 놓으신 것을 보면 누리셨던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것이지요.

 

일기를 다 읽고 제 마음에 든 생각 하나. “참으로 그 분은 긍정의 힘으로 사신 분이구나” 이거였답니다.

 

장사 – 역시 긍정의 힘이 이끌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하루 하루를 15%의 긍정적 생각들이 이끌고 가게해야 합니다. 긍정적 생각들이란 지푸라기라도 잡는 어떤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는 그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긍정적생각들을 참 그 방향으로 나가게 하려면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 분이 살아 온 길이 바로 그렇게 “준비”하고 “실천”하는 삶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큰  사람만이 그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잘 꾸려 나가는 일도 마찬가지겠지요.

 

장사 안 되어서 걱정”, “이거 진짜 큰일”, “아이고 어쩌지” 그 부정적 생각들을 머리 흔들어 떨쳐 버리고, “이건 내게 좋은 기회야”, “그래, 이거 하나 바꾸어 보자”, “이렇게 다시 시작해 볼까” 긍정적 생각들로 아주 작은 것부터 준비하고 행동으로 옮겨 보는 일.

 

어떠세요?

한 번들 함께 해 보시지 않으시려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