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 위를 눈부시게 비추는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때, 노란 모래 밑에 숨어 있는 검붉은 흙을 바라보고, 마른 잎의 살랑거리는 소리와 강가에서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영원성은 나에게 그대로 계승된다. 봄이면 봄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이런 경험을 했던가! 나는 점점 자신이 생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영속성과 회복성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에.”<쏘로우가 1856년 3월 23일에 쓴 글>
쏘로우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이 벌써 사십여년 전 일이다. 우스운 기억이지만 그의 글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당시 한국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판금도서였다. 알음알음으로 그 복사판을 구해 만났던 쏘로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사회운동가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순(耳順)에 이르는 나이에 다시 만난 그는 명상가이자 시인 나아가 노장(老莊)에 가까운 자연주의 사상가이다.
1817년 매사추세스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쏘로우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졸업 후 고향 콩코드로 돌아와 교사로 취직하지만 며칠 후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거부하고 사직한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연필공장에서 잠시 일하던 그는 28살 되던 1845년 초봄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다.
그 곳에 한 칸짜리 통나무 집을 짓고, 단 하나의 침대와 세 개의 의자를 놓고 홀로 문명을 등진 숲속에서 외롭게 살다, 마흔 다섯의 이른 나이에 간 기인(奇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간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의자에 앉아 깊이 사색하면서 매일 글을 썼다. 비록 그의 생전에 그가 쓴 글들이 주목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그의 책 <월든>은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E. B. White는 “만약 우리 대학들이 현명하다면 졸업장 대신 <월든>을 한 권 씩 주어 내보낼 일이다”라고 극찬하였다.
1846년 멕시코전쟁이 일어나자 그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하던 쏘로우는 감옥에 수감된다. 이 때 쓴 연설문이 바로 ‘시민불복종’이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나는 쏘로우에게서 한 분의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땃다.”고 한 글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 신이였던 예수말고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까? 말의 아름다움이여! 자연과 함께했던 그 아름다운 날들의 쏘로우가 오늘 여기에 살아있음 아닌가!
이른 봄날 늦저녁, 노을에 반달 걸리고 이름모를 새들 지저귀는 이 아름다운 날들의 소중함이여.
비록 미룬 일 태산이고 내일이면 또 다시 아둥바둥 땀 흘릴 이민일지라도…
신이 내게 허락한 세상과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아름다운 날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