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된 사내 이야기 – 4
<성서의 정전화(正典化:canon)>
사건을 만들고 말하기를 즐겼던 예수는 이야기꾼이었을 뿐 글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이야기-그가 한 말, 그가 행했던 일들,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는 입에서 입으로 바람타고 떠돌며 전해졌다.
제일 처음 예수 이야기를 글로 써서 기록한 사람은 글 깨나 배운 바울이라고 한다.
예수보다 열 대여섯 살 아래였던 바울은 생전의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가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전 유대지역에 떠돈지 약 두 해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부활한 예수를 만났고, 그 만남으로 하여 그에게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쓰기 시작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배운 이들이 쓰는 글들은 읽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갈릴리 호수가를 헤매던 예수의 모습은 바울의 관심 밖 일이었다.
바울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사건은 곧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전파하는 일에 전 생을 바쳤다.
타고난 이론가이자 조직가였던 바울은 “일하고 말하던(선포하는) 예수”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말하고 전해야 할(선포된) 예수에 대한 기록”에 전념하였다.
무슨 말인고 하면 김아무개가 살아생전 무슨 일을 하다가 그렇게 죽었다하는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는 김아무개가 살아서 이런 일을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그가 이런 뜻에서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죽었다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였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울이 처음(초대) 교회들을 향한 설교의 형태인 편지글로 남겨 전해졌다. 이 때가 대략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후 이 삼 십년이 흐른 뒤(서기 50-60)였다.
초대교회의 기둥들인 야고보(서기 62년경) 베드로(서기 64년경)와 바울(서기67년경)이 죽은 후,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던 살아 생전의 예수 이야기들을 기록한 첫 번째 책 마가복음이 서기 67년에서 74년 사이에 쓰여졌다.
이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기 80년대 추정) 요한복음(서기 90년대 추정)이 뒤따른다. 이 네 권의 복음서와 정전에서 제외된 도마복음서는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렇게 일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예수에 대한 기록들은 이후 백 여 년간 오늘날 정전(正典)이 된 27권을 비롯하여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바나바서신> <베드로계시록> <헤르마스목자서신> <이집트인복음서> <바울행전> <히브리인복음서> <요한행전> <12사도교훈집(디다케)>등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예수를 따르던 갈릴리 무리들은 예수가 떠나자 교회를 형성하였다.
야고보, 베드로, 바울이 조직한 교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화 되어져갔다. 예수와 함께 했던 첫 세대들이 죽고 예수에 대한 이야기책들이 쏟아지자 교회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책이 예수에 대해 바르고 본래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이 책들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하는 질문 앞에선 고민이었다. 더욱이 2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기독교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와의 싸움에서 교회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정전화 작업(canonization)”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별히 교회는 영지주의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교회법, 신조, 주교조직 등을 공고히하며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전화 작업은 그리 만만하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27권의 책들이 묶여 “신약성서”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4세기 중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때의 일이다. 역설이지만 교회는 이 무렵에 이미 어두운 중세로 들어 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