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사람(野人)이 그립다

들사람(野人)이 그립다

하루 저녁 술값으로 수백만, 수천만을 쓴단다. 천만 단위의 옷을 심심풀이로 산단다. 값비싼 외제를 제 때 손에 못 넣으면 비행기 타고 가서 사 온단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한단다.

“IMF가 한 번 더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있는 놈, 없는 놈 구별이 확실할 테니까”

wild

2001년 서울 강남을 활개치고 다니는 그들을 일컬어 ‘황금족;이란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어쩌다 제 놈 배부른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웃 등가죽 붙는 꼴 보고 싶은 생각 들었을까? 분 삭히고 곰곰 생각하면 여기 사는 우리라서 자유로울까?

예수 살아 생전에 제일 미워하던 이들은 바리새인이었다. 오죽 미워했으면 “화 있을진저!”,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들” 하였을까? 그들이 누구였나? 율법학자라고? 아니다. 이른바 소시민 계층으로 율법을 헌신적으로 따른 자들이었다.

그런데 예수가 왜 그들을 그토록 미워하고 저주했을까? 당시의 사회경제적 여건으로 율법 특히 안식일법, 십일조법은 밥깨나 먹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누렸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교만하였다. 그들보다 못한 자들에 대한 비정함과 교만이 예수의 미움을 샀다. 제 잘난 맛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보다 뒤쳐진 이웃을 뭉개려고 하는 그 맘보가 예수 보기에 악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개하라’한 것 아니겠는가?

그 보다 먼저 들사람 세례요한이 있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광야에서 외친 그 소리가 어디 그 곳으로 몰려든 지치고 찌든 인생들에게 한 소리였겠는가? 예의 그 바리새, 귀족, 제사장들 그 때 있고 누린다는 자들에게 한 소리였지. 그리고 그의 목이 날아갔다. 여우라 불렸던 헤롯이 그 광야의 소리 막고자 요한의 목을 친 것이다.

유대 역사의 기록자인 요세푸스는 AD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2000년간 유대인들이 나라없이 떠 돌게 된 원인(遠因)은 바로 이 들사람 요한의 처형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들사람 소리, 들사람 정신 죽이자 나라가 없어졌다는 말이다.

역사 이래 930여 차례의 외침과 전쟁을 치루면서도 한반도에 한민족이 꿋꿋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까닭이 무엇일까? 바로 들사람의 얼 곧 야인정신, 예언자정신과 함께 했던 민중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해방 후 백범이 있었고, 죽산이 있었다. 장준하가 뒤를 이었고 늦봄 문익환이 그 길을 갔다.

그들이 외쳤던 소리는 “더불어 함께 가야만 하는 민족”이었으며, “사람이 사람됨 찾자”는 정신운동이었다. 그 소리 누가 없앴는가? 그 정신 누가 죽였는가? 그 얼 누가 땅에 묻었는가?

“오직 잘 살아 보자”는 구호와 “하면 된다”는 그 군대정신에 눈 먼 우리 모두가 죽였다. 무엇보다 본래 도둑심보인 정권이 죽였다. ‘때려잡자 공산당’과 ‘까부수자 미제 괴뢰’의 그 얼 빠진 구호에 혹했던 남북 우리 모두가 죽였다.  권력이 다 무엇인가? 허가낸 도둑 아니겠나? 오죽하면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나라 세우지 말라 일렀겠나? 그러면 백성(인민)들이 알아 차려야 할 일이다.

아직도 김씨정권, 노씨정권, 전씨정권 탓하는가? 이씨정권 아니 아무개정권이 들어선들 무에 달라지겠나? 거기 사는 백성(인민)들이 정신 차려야 할 일이다.

그 들사람, 그 얼, 그 정신 언론이 죽였다. 교묘한 언설로 무지한 백성들 눈 가리고 이리저리 우우 몰려 다니게 해 놓곤 제 몸둥이 키우기에 바빳던 언론이 죽였다. ‘민족이 하나여야 한다’는 들사람 소리를 ‘공산당과 하나 되잔다’고 나발불며 뻘건 칠해서 죽였다. ‘잘 사는 것 보다 옳게 사는 것이 먼저다’는 들사람 소리 뚝뚝 잘라 ‘잘 사는 게 나쁘단다’ 통단으로 뽑아 돌팔매 유도해 죽였다.

아니다. 그 소리 종교가 죽였다. ‘이 땅은 잠시 뿐’이라며 보이지도 않는 하늘만 가르켜 모두 얼 빠져 쳐다보는 사이 제 놈 첨탑만 높이고, 국보급 사찰 소유에 급급했던 종교가 죽였다. 이 땅 별 볼 일 없으면 제 놈이나 하늘나라 먼저 가지 않고 이 땅에 발 붙여 살아야 할 백성들 홀려 구름같은 하늘타령이나 한 종교가 죽였다.

아니다. 아니다. 우리가 죽였다. 우리 모두가 죽였다. 죽기 아니면 살기다 사생결단식으로 ‘잘 살아 보자’고 달려 온 우리 모두가 죽였다.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어디 ‘황금족’이 서울 강남 땅에만 활개 치겠는가? 한반도 전체 세계 구석구석 들사람 죽인 정신으로 살아가는 민족들이 황금족 되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위만 바라고 아래를 짓밟는 사람들이 ‘바리새’라  하였다.

나를 추스리고 내 민족을 추스릴 소리, 들사람 소리 살려 내야 한다.

모가지 드리워 붉은 피 흘릴지라도 크게 외칠 들사람 소리가 그립다.

한반도에.

여기서 한반도로 사는 우리에게.

(2001. 2. 22)

*** 오늘의 사족

그랬다. 2001년 어느 날 한국신문을 읽다가 황금족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써 본 글이다.

오늘 2013년 어쩜 이 글이 아직도 유효할 수 있는지? 솔직히 나는 한국이나 조선을 향해 무어라 할 처지와 입장이 아니다.

여기 이민의 땅에 뼈를 묻을 것이고, 이 이민의 땅이 내 나라인 사람이다.

어찌하리! 그럼에도 한민족인 것을.

여우 헤롯, 이천년 전에도 동물에 비교된 권력자가 있었고 그가 나라를 말아 먹었단다.

참 아프다. 때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