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름다운 날들에

이젠 욕심으로 노동을 이어갈 나이는 지났나 봅니다. 몸이 영 맘을 쫓아가질 못합니다.

노동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 뉴스를 쫓아가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코 앞에 둔 여기 뉴스들도 쫓아가기 바쁘고, 한국 뉴스들에 이르면 그야말로 공부하지 않고 받기엔 정신이 사나울 지경입니다.

새 소식을 전하는 각종 소식통들은 매사 호들갑에 장사속을 지나치게 드러내어 피곤케 합니다.

아직 작가 한강의 소설 하나도 읽어 보지 못한 나는 차마 그의 세계에 가 닿기도 전에 그의 소식을 전하는 소식들로 하여 지치는 듯하답니다.

다만, 상을 수여하는 이들의 선언이 ‘아픔으로 지쳐 한이 쌓인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만나 보라’는 소리로 들려 귀가 솔깃 열렸답니다.

뉴스의 열풍이 잦아드는 날, 차분히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우려 볼 요량이랍니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에 온 몸이 반응하는 시리게 아름다운 가을날입니다.

이런 날에 모국어로 노벨 문학상 수여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은 그저 설렘입니다.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의 아픔을 부퉁켜 안고 기억하며 그 아픔의 짐을 함께 이고지고 가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사는 맛이 아닐까 하답니다.

비록 몸은 맘보다 느린 때에 이르렀지만, 세상은 아름다운 것들이 도처에서 제 눈길을 기다립니다.

참 아름다운 날들입니다.

하늘

‘이 눔아! 정신차려! 먼 산은 왜 그리 바라봐?’ 어릴 적 어머니께 종종 듣곤 했던 꾸지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볼수록 넋 놓고 먼 산 바라보다가 여기까지 온 듯하답니다.

먼 산 위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겨우 십 여년 전 일이랍니다. 말하기 낯부끄러운 환갑 즈음이었지요.

그즈음 하늘이 가르쳐 준 세상이었지요.

<세상에는 매일 보면서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아름다움이, 그 모양은 물론 색깔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지!>

하늘! 도화지랍니다.

일과 쉼, 그 사이 사이를 엮여내는 기쁨과 슬픔 때론 절절한 아픔까지.

그 모두를 담아내는 도화지.

하늘이 담고 있는 아름다움, 그저 문득 문득이라도 눈에 담을 수 있는 오늘.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언제나 옳았습니다.

‘이 눔아! 먼 산 말고 하늘!’

  • 10. 3. 2024

필라델피아

이웃 도시 필라델피아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던 엊저녁이었다.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민들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팀으로 꼽는 첫 번 째가 미식축구로는 Philadelphia Eagles요, 야구로는 Philadelphia Phillies 농구로는 Philadelphia 76ers이니 여기도 어찌 보면 범 필라델피아 상권에 속한다 할 게다.

필라델피아는 내겐 여전히 낯선 이웃 대도시이다. 이젠 그 이름이 많이 쇠락했다만 한 때 필라델피아의 한인거리로 알려졌던 5가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나를 1970년대 동두천이나 의정부로 데려가곤 한다.

개인적인 일로 필라를 찾는 일은 이젠 거의 없다. 좋은 벗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들이면 어쩌다 올라가곤 하는데 일년이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엊저녁엔 정말 오랜만에 필라 시내 한 복판 건물 숲속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참 좋은 벗의 아들이 장가가는 날이었다. 필라 시청에서 가까운 빌딩 숲 속, 분수대 앞에 펼쳐진 예식장은 초가을 맑은 하늘이 그대로 내려 앉아 아늑했다.

필리핀계 카톨릭 의식에 따라 진행된 예식은 부부의 연(緣)에 대한 뜻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예식에 이어 건물 50층에 있는 연회장에서 바라본 필라시 전경은 이제껏 내가 그리고 있는 필라시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필라시는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저녁은 함께 식탁에 둘러 앉은 벗들로 하여 풍성하기까지 하였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신부의 쾌활함이 그 아름다운 저녁을 빛냈다.

꼭 있어야 할 몇 몇 벗들이 함께 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엊저녁 비슷한 시간에 펼쳐진 중국인촌 행사에 우리 풍물놀이패로 참석한 탓이었다. 어제 아들 장가를 들인 벗도 아들 결혼식이 아니었다면 그 풍물패와 함께 였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저녁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 입는데 주머니 속 지갑이 잡히지 않았다. 분명 주차장에서 나올 때 지갑을 꺼내 카드로 결제를 하고 나온 기억이 선 하건만 양복 주머니 속에도 차 안에서도 찾을 수 가 없었다. 순간 나는 허둥거렸다. ‘하이고~ 이를 어찌지….’ 하며 쯔쯔 거리고 있는 사이, 아내가 ‘쯔쯔쯔…’ 더 크게 혀를 차며 지르는 소리였다. “여깄고만… 왜 그리 덤벙거리시나!” 지갑은 차 시트 사이에 떨어져 있었단다.

하여 떠올린 지난 주에 읽었던 책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속 한 대목이다.

<조사기관과 보험사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는 저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대략 아홉 번 물건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60세가 되면 거의 20만개의 물건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잃어버린 물건들을 전부 다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되찾을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물건을 찾느라 허비한 시간이다. 평생 동안 우리는 사라진 물건을 찾느라고 대략 6개월의 시간을 꼬박 소모한다. 이는 미국에서 집단적으로 하루에 5400만 시간을 소모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돈도 지출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한 해 약 300억 달러가 오로지 잃어버린 휴대폰 때문에 사용된다.>

그녀가 이 책을 쓴 게 2022년도이니, 지금은 그녀가 말한 수치들은 더욱 늘어나지 않았을까.

잃어버려 아쉬운 물건들과 결코 되찾을 수 없는 시간에 더해 정말 아쉬워야 하는 것 바로 잃어버린 기억들이 아닐런지.

어제 식장에서 함께했던 벗들과 풍물패로 거리에 나선 벗들과 종종 함께하며 같을 뜻을 찾고자 같은 몸짓을 하는 친구들을 이어 준 끈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었다. 나이 차이로 보자면 거의 한 세대 간격이 벌어지는 모임이다. 더러는 민주, 통일, 평화, 이민 등등 저마다 주관심사들에 있어 작은 차이들은 있다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며 서로가 존중되어지는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일에는 같은 생각을 지닌 벗들이다.

나는 비록 늦은 나이지만 벗들을 통해 많이 깨우치며 산다. 이젠 돌아서면 쉽게 잃어버리는 기억들로 홀로 혀 차는 시간들이 늘어간다.

허나 참 좋은 벗들과의 연대는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아름다운 필라의 저녁을 만끽하게 해준 이종국선생 내외에게 감사를. 이종국선생을 축으로 같은 뜻으로 이어진 참 좋은 벗들에게 고마움을.

<추가 글 – 어제 중국인촌에 풍물패를 앞세워 함께 참가한 필라 우리센터의 호소문 하나>

지난 2년간 우리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필라시 중심부에 경기장을 건설하려는 76플레이스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금까지 공사 진행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필라 주민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시의회에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경기장이 아닌 지역 주민 생활에 도움이 될 정책에 집중하라 요구해야 합니다.

필라델피아 차이나타운은 센터시티에 마지막으로 남은 노동계층 유색인종 커뮤니티입니다. 또한, 경기장 건설을 저지하기 위한 이 싸움은 단순히 특정 커뮤니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힘을 합쳐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도시가 부자들의 탐욕에 짓밟히는 걸 막아야 합니다.

미국에서 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주로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주거지를 허물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많은 유색인종 주거지가 스포츠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사라졌습니다.

스포츠 경기장 건설은 저임금, 비정규직, 계절노동자들에 의존하며, 그 과정에서 노동계층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빈곤의 수렁에 가둡니다.

76플레이스 경기장 건설계획 주도자들은 재산세를 면제받을 예정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저소득층 커뮤니티 복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기장 건설은 필라시를 비롯한 펜주 재정에 10억 달러의 세수 손실을 초래합니다. 이는 주변 지역 소상공인, 노동자 및 그 가족들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어집니다.

한 동네를 파괴하는 결정이 이렇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건, 어떤 동네든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필라시민은 우리 자신과  이웃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결정에 대해 반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개발사업자의 이익이 아닌, 시민들의 도시임을 기억합시다.

도심 경기장 건설로 도시가 더 좋아진 적은 없습니다. 반면 경기장 건설이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확실합니다. 개발사업자들은 유색인종 커뮤니티를 착취했고, 시민들의 요구는 묵살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반복된 역사에서 얻은 이 교훈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을 할 기로에 서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투쟁에 함께해야 합니다.

행복에

이런 날은 참 행복하다. 더할 나위 없이 맑은 초가을 마음이 마냥 여유로운 하루, 손에 든 책에 완전히 빠져 든 날에 누린 행복이다.

나이 쉰이고 제법 이름 꽤나 알려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라는데 나는 그녀의 책이 처음이다. 케스린 슐츠(Kathryn Schulz)가 쓴 <상실과 발견, Lost & Found>이다. 책에 쉽게 빠져 들게 한 요인 중 하나일게다. 바로 번역자 한유주 덕이다.

300여쪽 제법 긴 자전적 에세이에 엉덩이 몇 번 들썩이지 않고 반나절 빠져 지냈다. 몸에 받으면 좋은 영양제가 될 듯한 가을 햇빛과 그 볕으로 나는 열을 식혀주곤 하는 마른 바람은 오늘 내가 누린 복을 더했다.

내 초기 이민 생활에 큰 힘이 되었던 월트 휘트만(Walt Whitman)의 시들을 다시 곱씹을 수 있게 한 것은 이 책이 덤으로 내게 준 행복이다.

에세이를 읽으며 post-it flag들을 이리 많이 붙여 보긴 처음인 듯하다. 그만큼 내가 빠져 시간을 보냈다는 징표일게다.

책 마무리 부분에 나오는 몇 문장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C의 아버지, 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어딜 보나 평범한 사람치고 나는 경이로운 삶을 살아온 것 같아” C의 아버지는 실내 배관이 없는 집에서 자랐고…그는 평생을 농부로, 식료품점 점원으로, 관리인으로, 경비원으로 일했고….>

내 또래일 작가의 배우자 아버지에 대한 묘사인데 세탁업이 평생 직업인 내가 종종 이즈음 읊조리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우리는 놀라운 삶을 살아간다. 삶 자체가 경이롭기 때문이다.>

<상실은 일종의 외부적 의식으로, 우리에게 유익한 날들을 잘 사용하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돌보고,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과 이미 사라진 것들을 포함한 이 모든 것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우리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기 위해 여기 있다.>

가을의 초입, 나뭇잎들은 물들기 시작했고, 성미 급한 녀석들은 이미 떨어져 뒹굴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을 빛에 더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들도 있고, 이제 막 피려고 봉오리 맺는 놈들도 있다.

이런 날은 참 행복하다.

연휴

“연휴에 뭐 하슈?” 친구가 물었던 일은 제법 오래 되었다. 거의 잊고 있다가 일주일 전쯤 “가까운 곳에 가서 하루 걷고 먹다 옵시다.”라는 그의 말에 “어이, 좋지”했었다.

그가 말한 가까운 곳은 딸네와 가까운 곳이었다. 하여 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아빠가 연휴 하루 하나엄마 아빠랑 너 사는 근처에 가는데…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까?’ 딸아이의 물음, “어디?, “맨하턴하고 브루클린”이라는 내 응답에 이어진 딸 아이의 대답이었다. “어떻하지…. 우린 그때 서부에 있을텐데…. 친구 결혼식에…. 아이….”

연휴가 다 끝나는 저녁 무렵, 딸아이가 연락을 해왔다. “우린 이제 막 집에 돌아왔어. 엄마 아빠 뉴욕구경 어땠어?”

친구는 뉴욕과 뉴저지와 델라웨어를 매주 생업을 위해 오간다. 모두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동선이다. 뉴욕 나들이는 어쩌면 그에게 나들이라 할 수도 없을게다.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현장이므로.

우리 내외에게 도시는 이미 어쩌다 구경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붐비는 사람들, 어지럽게 높은 건물들과 귀가 멍멍하여 머리속이 아득해지는 소음들 이젠 아주 낯설어 보이는 것들이 모두 구경거리가 된 관광지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서 거의 하루가 넘어가는 시간에 돌아온 하루 여정,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이 먹었다, 무엇보다 친구내외와 우리 내외 모처럼 끊이지 않은 살아가는 이야기들, 그 수다 삼매경에 빠져 지낸 하루가 참 좋았다.

하루가 지난 밤, 딸아이가 건넨 물음은 우리 내외가 누린 연휴에 큰 감사를 덧입혔다. 딸아이는 이즈음도 묻고는 한다. “아빤, 언제 일 그만 둬?”, 언제나 똑 같은 내 대답, “글쎄…. 아직은….”

우리 내외가 함께 하루 온종일 이야기를 나누어도 아쉬운 친구내외가 있고, 뭐라해도 그저 품어낼 가족들이 있고, 우리 내외 아직 걸을만하고… 하여 몸과 맘으로 하는 모든 일들은 쉬지 말아야 하고….

2024년 노동절 연휴가 저무는 밤에

김민기, 그리고 희망에

‘김민기선생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부르는 작은 음악회’에 왕복 세시간 운전을 하며 다녀왔다.  정말 조촐하게 작은 음악회였지만,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내가 누린 소망은 밝았고, 희열은 매우 컸다.

노래 부르는 이들을 쫓아 따라 입을 떼며 옛 생각들이 마구 스쳐 지나 갔었다. ‘검푸른 바닷가에….’ 그 친구를 따라 부르며 내 스무살 언저리 친구들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고, ‘금관의 예수’를 따라 부르며 종로 오가 기독교회관를 드나들던 내 청년 시절 한 때의 벗들을 떠올렸으며, 노래극 ‘공장의 불빛’ 가운데 ‘이 세상 어딘가에…’를 읊조리면서는 동일방직과 YH공장 사십 수년 전 당시 내 또래 누이들의 고통스럽던 모습들을 떠올렸었다.

‘철망 앞에서’와 ‘천리길’을 이젠 잘 나오지 않는 목청을 뽑아 따라 부르면서는 이 이민의 땅에서 조국 통일과 평화를 위해 삶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다 떠나신 필라 우리 친구들의 어른 장광선선생도 떠올렸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이즈음도 우리 내외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곧잘 함께 흥얼거리는 노래여서 정말 좋았다.

언제나 흥에 넘치는 아내도 한 곡을 택해 불렀다. ‘그 사이’였다. 김민기선생이 1972년도 만든 노래이니 내가 대학 입학을 했던 해이며, 유신 계엄이 일어난 때였다.

그 사이 – 1972년에서 2024년, 자그마치 52년 이라는 세월의 간격 사이엔 숱한 사건들과 변화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979년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꿈을 찾다가 스러지며 그래도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싸우’자던 동일방직 YH 그 누이들 뒤를 이어 일어난 부마항쟁 끝에 박정희 유신독재는 끝이 났었다. 그 때 누이들의 참담했던 기록들을 아현동 굴레방다리 아주 작고 초라했던 내 출판사에 작은 책자로 펴낸 기억도 떠올랐다.

그리고 1987년 그 뜨거웠던 여름, ‘아침이슬’로 뒤덮여진 신촌에서 시청앞까지 뚜벅뚜벅 걸었던 날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순간 솔직한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1979년 그때처럼 전두환 독재가 그리 무너질 지는 몰랐었다.

그랬다. 8.15 광복, 4.19 며칠 후 이승만의 몰락, 박정희의 비참한 죽음, 전두환 그 비굴한 끝을 당시 그 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랐었다. 언제나 그랬듯 몰락의 징후들은 차고 넘쳤지만, 세상을 덮고 있는 권력과 비굴한 아부꾼들과 무지한 맹종자들과 하루 입에 풀칠하기 바쁜 사람들이거나 제 살 길에 바쁜 사람들에겐 그 날이 그리 빨리 올지는 몰랐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정말 많은 것들이 좋아지고 밝아졌다만, 권력에 이르면 그 어떤 분야의 권력이든 이승만이래 문재인정권까지 모든 정권에서 보아왔던 비겁, 비열, 무지, 무능, 사악 나아가 반통일, 반평화, 친일을 넘어 숭일  매국 정신으로 똘똘 뭉쳐진 놈들의 세상처럼 다가오곤 한다. 한국 뉴스들이.

허나 역사의 반동들이 기세를 마음껏 부리는 세상을 바라보니 그 끝과 몰락이 눈에 보인다. 숱한 징후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하여 그 사이 – 별거 크게 변한 것 없다. 사람 같은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곧 올게다.

김민기선생이 꿈꾸던 내일의 아이들을 위한 꿈에 무대가 펼쳐지는 세상이 말이다. 그래서 희망이다.

오늘 그 작은 음악회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준 필라의 아름다운 친구들에게 감사를 보내며.

그저 사는 이야기

  • 하나.

이른 아침 가게로 들어선 Rose씨는 아내 Anita가 떠났다고 했습니다. Rose씨 내외는 서른 해 넘는 우리 가게 오랜 단골입니다. 유태계 은퇴 의사인 Rose씨는 최근 몇 년 사이 걸음걸이가 영 불편합니다. 걷는 모습이 그저 아슬아슬하답니다. 그의 아내 Anita가 그보다는 훨씬 건강했답니다. 한 두해 전부터 이런 저런 병치레로 병원 나들이가 잦던 Anita가 그만 먼저 떠났답니다.

그가 예의 그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가게문을 나서면서 울먹이며 제 아내에게 던진 말이랍니다. “Anita가 여기와서 당신하고 얘기하는 걸 참 좋아하고 즐겼었는데….”

한 오륙 년 되었나 봅니다. 해마다 오랜 단골 분들 가운데 몇 몇은 꼭 떠나십니다. 허긴 한 자리에서 한 세대 훌쩍 넘긴 세월을 보냈으니 아주 당연한 일일겝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이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할머니들은 대개 덤덤하게 그 일을 전하시는데 비해, 아내를 잃은 할아버지들은 맥없이 슬픈 얼굴이 되곤 한답니다.

혼자되신 할머니들은 제법 오랜 동안 뵐 수도 있거니와 밝은 편인데 비해, 혼자되신 할아버지들은 더는 그리 오래 볼 수 없을 뿐더러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을 남기곤 한답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랍니다.

하여 혼자 읊조려보곤 한답니다. ‘언젠가 그때가 되면….내가 먼저….. 아무래도 그게 맞는 일인데…. ‘

해마다 이 맘 때이면 삼 십 수 년 동안 똑같이 겪는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입학과 개학 시즌이 되면 교복을 입어야만 하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엄마나 할머니와 함께 가게를 찾는 답니다. 교복을 제 몸에 맞게 고치려고 오는 것이지요.

해마다 꼭 겪게 되는 일이란 바로 엄마와 딸 또는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와서는 교복 치마 길이를 줄일 때 벌어지는 다툼이랍니다.

딸이나 손녀는 할 수 있는 한, 짧게 줄여 달라고 주문을 하고 엄마나 할머니는 될수록 길게 해달라고 요구를 한답니다.  언제나 무릎이 경계이지요. 아이들은 무릎 위 한 뼘쯤 위로 요구를 하고, 어른들은 무릎을 덮을 정도로 주문을 하지요.

그럴 때면 참 여러 서로 다른 다툼들을 보게 되곤 한답니다. 딸과 어머니나 할머니와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볼 때도 있고, 아이들 입이 쉬지 않고 불만을 토해내도 전혀 들은 체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기도 하고,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어쩌겠수’하는 할머니도 만나게 된답니다.

그런데 또 이런 경우도 있답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서는 저희에게 전화를 주는 어른도 있답니다. ‘그래요. 제가 책임질 거고요. 아까 제 아이가 원했던 길이보다 몇 인치 길게 해 주세요.’라고 당부하는 것이지요.

해마다 이 맘 때 겪는 변치 않는 풍경이랍니다.

삼 수 년 전 그 때의 딸이 지금은 엄마 아니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 풍경은 전혀 변하지 않는 답니다.

해마다 ‘덥다 더워’, ‘춥다, 추워’를 후렴처럼 중얼거리고 사는데, 꽃들은 저마다 때 맞추어 봉우리를 맺고, 피고, 지곤 하지요. 아무 말없이.

다알리아의 계절입니다. 그도 지고 나면 국화가 제법 속 깊은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어느 축도

연 사흘 비가 쏟아졌다. 지난 밤에는 홍수와 강풍과 회오리 등에 대한 주의 메세지들이 경고음과 함께 이어졌다. 오늘 동네 신문 온라인판엔 엊저녁과 오늘 사이 비바람의 피해를 입은 사진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허리케인에서 열대성 폭풍으로 바뀐 Debby가 올라오면서 그 기세가 많이 꺾인 채로 우리 동네를 지나갔는데 크고 작은 피해들이 잇달았단다. 아직도 비는 오락가락 이어지고 간간히 부는 강풍으로 나뭇잎들과 잔가지들이 뒹군다.

한 사흘 내 일터가 한가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 마침 주문 일정에 맞추어 내 손에 이른 카를로 레비의 소설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에 빠져 보냈다.

때마침 멀리 호주에 계신 홍길복 목사님께서 이번 주일에 행하실 설교문을 보내 주셨는데, 기후변화에 대한 인사로 시작되는 설교문이 소설과 함께 내 머리 속에 교차되어 깊게 남게 되었다. 소설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오늘은 홍목사님의 설교문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My Final Message)> 를 여기에 올린다.

너나없이,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기뻐하고 위로 받고 서로 격려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My Final Message)

본문 : 고린도후서 13장 11-13절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와 은총과 기쁨이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시길 빕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이 추운 겨울 모두들 몸은 강건하시고 마음엔 평강이 더해 지시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저희 시드니에서 은퇴한 목사들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또한 시드니교회는 금년도 저희 은퇴목사들의 예배와 친교를 위하여 적지 않은 예산을 세워서 지원해 주셨는데 이런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다 보낸 몇 차례의 편지들을 모두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형제들아, 마지막으로 말하노니>라는 말씀으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지막으로 말한다>고 할 때는 여러가지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죽음을 앞에 두고 남기는 유언의 말씀이 우리들 대부분에게는 공통된 마지막 말이 될 것입니다. 혹은 형사재판에서 판사가 판결을 하기 전 피고에게 자신을 변론하도록 기회를 주는 <최후진술>도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란 어떤 글이나 연설을 마무리하는 일종의 Epilogue로써, 이는 대부분의 편지나 논문, 작품이나 연설의 맺는 말이요, 결론이요, 앞에서 말한 모든 것들의 요약이며 강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2차 전도여행 중 아테네 다음으로 고린도에 가서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후 그곳을 떠난 바울은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린도교회 교우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지금은 많은 편지들이 소실되고 오직 고린도 전서와 후서만 남아있습니다. 이를테면 고린도전서 5장 9절 이하에서 <내가 전에 너희에게 쓴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이라는 귀절만 보아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이전에 벌써 또 다른 편지를 써서 보냈던 것이 확실합니다. <고린도 전서 이전에 이미 다른 고린도 전서가 있었다. 지금의 고린도 전서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고린도 중서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신약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를 중심하여 추론해 보건데 바울과 고린도교회 교우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편지들이 서로 교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를 마무리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 썼던 모든 편지, 즉 고린도전서나 중서나 후서를 막론하고 자신이 공개적, 혹은 개별적으로 썼던 편지나 아니면 직접 대면하여 전했던 모든 설교 말씀들의 총 결론이요, 요약이요, 맺는 말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어라, 위로를 받으라, 마음을 같이 하라, 평안할지어다> 표준 새번역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끝으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고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공동번역도 비슷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내 권고를 귀담아 들어주십시오. 뜻을 같이하며 평화롭게 사십시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도 읽어드립니다. <친구 여러분, 이것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기쁘게 사십시오. 조화롭게 생각하십시오.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하십시오> 이렇듯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끝으로 말합니다. 이것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등등 여러가지 형태로 번역된 우리말을 King James version이나 RSV나 NIV나 Good News Bible 등에서는 거의가 다 Finally라고 쓰고 있습니다.

지위의 고하나, 인물의 유명, 무명을 떠나서 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나 글> <Final writing이나 Final speech>는 그의 생각이나 말이나 일생을 요약하고 매듭 짓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저는 1980년 호주에 와서 이민목회를 시작한 후 2012년 은퇴하기까지 주일 낮 예배에서만 공개적으로 설교한 것이 약 1500번쯤 됩니다. A4 용지로 약 7500장 정도가 되는데 그 설교문들은 지금도 모두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은퇴 후 시드니교회의 초청을 받고 이 강단에서 말씀 전한 것은 제직수련회를 포함하여 모두 6번이었습니다. 저는 1974년 5월, 서른 살 되던 해에 대한예수교 장로회 서울 서노회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았는데 금년에 꼭 50년이 되었습니다. 또 올해 저는 7학년을 졸업하고 마침내 8학년에 입학했습니다. 많이 살았고 이젠 남은 날도 그리 길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을 읽으며 저 또한 생각해 봅니다. <그 동안 시드니 제일교회, 시드니 우리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이민교회들과 호주와 한국 등 이곳 저곳 여러 곳에서 참 많은 설교와 강의, 강연, 그리고 글쓰기를 해 왔는데 나도 이제는 마지막으로 해야 할 말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있어서 ‘마지막으로 말하노니’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제는 점점 끝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이 보이는 듯한데 <마지막으로 드려야 할 말씀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나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 닥쳐올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사실은 그렇게 때문에 더더군다나 모든 일은 마치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이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할 이야기> 하나쯤은 미리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설교자들은 언제나 오늘 내가 하는 이 설교가 나의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생각하고 설교해야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다음 주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설교하십시오> 저도 그리하지는 못하면서도 저는 자주 이곳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강의할 때마다 이 <설교학의 교과서적 이야기>를 힘주어 가며 말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하는 말, 최후로 남기는 글, 나의 final word, final writing, final speech, final conversations는 사실 미리 준비하기도 쉽지 않고 정말 무슨 말로 나의 인생과 신앙과 생각을 요약해서 말해야 할지 결코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옛말에 <鳥之葬事에 基鳴也悲하고 人之葬事에 基言也善이라 했습니다. 새는 죽을 때가 되면 그 소리가 구슬프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유명인사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하신 가상 7언 중 제일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 It is finished>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의 마지막 말은 <주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였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주님, 사랑해요. Lord, I Love You!>라고 말한 후 숨을 거두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이태석신부는 <모든 게 다 좋았어요. Everything is Good>이라고 말한 후 운명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칸트의 마지막 말도 비슷합니다. <Es ist Gut, 참 좋다> 스티브 잡스는 <당신의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Please love your family>라고 말한 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시드니교회 초대목사이신 최정복목사님은 최근 그분의 책 <한 낯선 자의 노래>에서 호주 원주민 가수 Roger Knox의 노래 한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은 일평생을 거쳐 한국이든, 동남아이든, 호주이든 그 어느 곳에서 살아왔던 간에, 이 땅에서의 모든 인생살이란 <하나의 낯선 자, 하나의 stranger>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면서, 결국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에서 우리를 가르쳐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사람들>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런 나그네와 행인 같은 낯선 인간이요, stranger인 우리를 향하여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고백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최목사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하고 싶었던 말씀>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든지 마지막 말은 쉽게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사람이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결코 자신의 마지막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말한 것처럼>, 마지막을 준비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그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내 신앙과 내 인생을 가다듬는 의미에서 숙제 겸 부탁의 말씀을 하나를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주무시기 전에 <내 인생의 마지막 말>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직접 내놓고 이게 내 마지막 말이라고 말씀하시지는 못해도, 어딘가에 써서 기록으로 남겨 놓으시길 바랍니다. 바울처럼 위대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같이 평범한 보통 사람들에게도 꼭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마지막으로 해야만 할 말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경우, 거의 끝에 와서는 사회자가 꼭 묻습니다. <이제 끝으로, 마지막으로 꼭 하실 말씀 있으시면 짧게 한마디 하시고 마무리를 지으시지요> 마지막으로 하는 말은 첫째, 짧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분명하게, clear하게, 해석의 여지가 별로 없이 해야 합니다. 셋째는, 마음을 담아 진솔하게 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짧게, 분명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 이 세가지를 잊지 마시고 오늘 저녁 <내 인생의 마지막 말들>을 꼭 남겨 보시길 신신 당부합니다.

자, 그건 그렇고 이제는 처음 시작했던 성경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당시의고린도교회 교우들과, 오늘 2천년 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어라. 위로를 받으라. 마음을 같이 하여라. 그리고 평안할지어다> 몇가지 다른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는 바울 사도의 이 <마지막 말>는 언어학적으로는 동어반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바라는 것,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인데 각기 다른 표현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자신의 생각과 부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약간은 길게, 또 약간은 동어반복적으로 한 이 마지막 말씀을 저는 한마디로, 짧게, 이렇게 요약해 봅니다. <여러분, 제가 제일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이것입니다.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사십시오>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바울과 고린도교회 교우들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교리논쟁과 윤리 도덕적 설전이 있었습니까? 교회내에서의 파벌문제,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의 갈등 문제, 교우들 사이에서 벌어진 소송과 재판문제, 결혼, 이혼, 독신생활, 음행 문제를 비롯하여 우상과 우상의 제물문제, 사도권의 문제,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와 성찬식을 비롯하여 예배의식에 따른 여러가지 문제 등등 참 많은 문제들을 놓고, 어떤 때는 설전을 벌리고, 어떤 때는 화를 내고, 심지어는 다시 보지도 않을 것처럼 무섭고 매정하게 말해왔던 바울이었습니다.

자, 그런데 말입니다. 바울은 이런 지난날의 대립과 다툼, 타이름과 설명설득을 모두 끝내면서 의외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여러분 한 분 한 분, 행복하게 살아가십시오> 이런 마무리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적어도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라면 <예수 잘 믿으십시오> <예수 똑바로 믿으십시오> <끝까지 신앙생활 잘 하십시오> <끝까지 예수님만 붙들고 가십시오> 같은 말씀이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아니한 것입니다.

물론 AD 1세기, 키케로를 비롯한 고대 로마의 서신들과 공문서들의 기본적 틀은 Prologue에서는 문안과 감사인사로 시작하여 본론을 거친 후, 마지막 Epilogue 에서는 주로 축복으로 끝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바울을 비롯한 신약의 서신들 역시도 대부분 그런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 사도가,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들과 비슷하게 문제도 많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교회에 보냈던 여러 개 의 편지를 모두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하루 하루를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십시오>라고 말씀한 것에 대해서는, 단순한 충격의 정도를 넘어서서 여기에 스며 있는 또 다른 깊은 의미와 뜻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마지막 말씀, –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사십시오 – 라는 이 최후의 권면에는 인간과 신앙공동체, 믿음과 도덕의 핵심과 본질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안에서, 예수께서 주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것>만이 참되고 영원한 기쁨이며 진정한 행복이라는 생략된 말씀, 아니면 숨겨진 말씀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기쁨의 삶, 행복하게 사는 인생 – 그 밑바탕에 근본적으로 깔려 있는 본질은 <구원 얻은 자들의기쁨이요, 영생을 확신하는 자들의 행복>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우들이나 오늘 여기 시드니교회 성도들이나, 우리가 주어진 인생길, 비록 힘들고, 지치고, 고단하고, 절망스런 일들이 이어지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하루 하루를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 또 행복하게 살수 밖에 없도록 운명 지어진 그 이유, 그 뿌리, 그 근본 바탕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우리는 오늘 저녁 죽더라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생과 복락을 누린다>는 그 믿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웃을 수 있고 행복하게 살수 있습니다. 분명하게 알아 두십시요. 우리를 이 세상에서 기쁘게 해 주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는 것은 절대로, 정말 절대로 돈이 아닙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성공과 성취가 아닙니다! 건강, 건강 하는데, 건강이 아닙니다!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변치 아니하는 믿음입니다!

<기쁘게 사십시오. 행복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요, 소망이요, 생명입니다> 모든 환경과 일체의 조건을 초월하여 기쁘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다른 모든 신앙생활의 준칙처럼 하나님의 절대적 명령입니다. 우리 한번 생각해 봅시다. 왜 우리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 중에서 어떤 것은 선택적으로 프로그래밍하여 새벽기도, 특별기도, 금식기도를 하고, 또 감사주일을 만들과 감사헌금을 드리면서도 <기쁨의 주일> <행복한 주일>은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요? 기도와 감사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가요?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이 명령 역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장 4-7절>

우리가 70여년전 주일학교에서 배우고 불렀던 노래입니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나는 기쁘다. 항상 기쁘다. / I’m so Happy. I’m so Happy. I’m so Happy. Happy all the day! / 와다시와 우레시. 와다시와 우레시. 와다시와 우레시. 이찌모 우레시! / 워창 꽈일라. 워창 꽈일라. 워창 꽈일라. 창창 꽈일라!>

6.25 후, 가난한 시절,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월사금을 내지 못해서 학교도 다니기 힘들었던 시절 – 그래도 그 때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기뻐해라. 즐거워해라> 하면서 해맑은 얼굴로 노래를 부르게 해 주셨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주일 마다 교회에 나와 기도도 드리고 찬송도 부르며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지 아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면 이것은 구원받고 은혜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합시다. 주일 제대로 지키지 않고, 기도 생활, 신앙생활에 게으르고,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 대해 무관심한 것 만이 죄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기쁘고 행복하게 살지 않는 것 역시 큰 죄입니다. 종교적 의식 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생활 속에서의 실천입니다. 모든 성화된 삶의 최고 모습은 <기쁘게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영원한 낙관주의자들입니다. We are ultimate optimist!  펼치어지는 정치–경제적 환경이나, 가정적 고난이나, 개인적 건강이나 성공-성취와는 전혀 관계없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부딪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기쁘게 살고 행복하게 살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들임을 잊지 마십시다.

그래서 오늘 바울사도가 전한 마지막 말씀이나, 저의 마지막 부탁은 모두 다 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기쁘게 살아가십시오. 그저 하루 하루를 꼭 행복하게 살아가십시오. 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Dear Friends! This is my final Message. Rejoice Always! Be Happy in Christ! This is the Word of God. Amen>

  • 호주 시드니교회 주일예배설교(2024.8.11)

어떤 꿈

지난 밤 거세게 불던 비바람이 더위를 좀 데리고 가주나 했건만 여전히 찌는 하루였다. 에이 이런 날은 게으름이 최고다. 하여 손에 든 책이다.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James Ferguson)이 쓴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 분배에 대한 인류학적 사유>다. 한글책 이름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이 원제인 < Presence and Social Obligation, 현존과 사회적 의무> 에 비해 내게 훨씬 가깝게 다가와서 손에 들었던 것인데, 부제인 <분배에 대한 인류학적 사유>보다 원래 부제인 < An Essay on the Share 분배에 대한 에세이>가 더 그럴 듯했다.

아무튼 내게 분배니 기본소득이니 인류학적 관점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아직 어렵다. 헌데 굉장히 재밌다. 게다가 짧다. 역자 이동구의 말과 추천사를 다 포함해도 고작 130쪽이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전해주는 뉴스들은 대개가 좀 삭막하다.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미국 작은 시골 마을이나 한국이나 아님 세계 어디라도 거의 엇비슷하다. 일테면 불평등, 차별, 배제, 편가름 등등 답답함을 몰고오는 소식들이 넘쳐나는 일들이 하루라도 거름없이 이어진다. 나야 다 살아가는 인생길로 접어들었으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내 아이들은 장차 어떤 세상에서 살까하는 염려가 떠나지 않는 뉴스와 풍문 속에서 산다고 할까?

책을 덮고 나니 잠시라도 그런 삭막함과 답답함, 불안과 염려들이 사라지는 맛을 볼 수 있어 참 좋았다. 사람살이에 대한 희망과 역사를 주관하는 신에 대한 내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책이었다.

저자는 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때로는 미국 이야기들과 이런 저런 내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학자들의 이름들과 그들의 이론들을 설명하면서, 노동, 일자리, 분배, 좌파, 우파, 국가, 사회, 공동체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내 머리 속에는 내가 이미 모두 조금씩은 겪었던 일들이 마구 뒤섞여 떠오르던 것이었다.

일테면 내가 어릴 적인 1960년대 당시만해도 변두리였던 신촌 언덕배기 동네에 수도관들이 이어지던 때 윗집과 아래집 사이 벌어졌던 아귀다툼이 생각났다던가,  1960년대 말 신문로 일대 판자촌들에 살던 이들이 쫓겨나간 응암동 천막촌 친구의 합판 마루방과 그 동네에 나뒹굴었던 순복음교회의 광고지들, 청계천 난민들이 쫓겨나간 경기도 성남의 그 아수라가 지나간 70년대 초 진흙창 거리들이 마구 내 머리속을 오갔던 것이다.

이제 거의 사십 년이 가까워 오는 이민 초기, 덩치는 나보다 크되 머리 피도 안마른 어린놈들이 눈 찢는 흉내를 내며 chink, chink를 함부로 외쳐댔던 떄도 생각나고, 아시안 아이들론 유일했던 내 아이들 학교로 말도 안되는 이유로 호출되었던 일도 생각나던 것이었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다원성, 곧 ‘모든 사람이 각자의 현실이 보장되는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기쁨’을 뛰어넘는 세계를 꿈꾸는 제임스 퍼거슨의 학자적 꿈 이야기다. 그는 학자로서 인류들이 걸어갈 희망적 세상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현존(Presence) – 국가, 사회, 공동체 등등의 이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이 모든 분배의 유일한 조건이 되는 세상, 나아가 “지금, 여기’가 세상 이 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확장되어 이어지는 세상, 마침내 인류들의 오랜 어제의 꿈들이 오늘에 이어지는 세상, 뭐 그런 학자적 꿈!

비록 오늘은 답답한 뉴스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머물고 있을지라도.

아주 잘 쉰 하루에 감사!

황혼에

온종일 뜨겁던 해도 질 땐 아름답고 부드럽다.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그렇게 만든다. 하여 저녁은 언제나 넉넉하고 풍요로와야 마땅하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비록 꿈일지라도.

지는 해를 바라보는 내 삶은 여전히 꿈 속이다만, 뜰의 꽃과 풀과 나무들은 지는 해와 더불어 아름답고 부드럽고 넉넉히 풍요하다. 그리고 코스모스는 그게 또 부끄럽단다.

칠월도 저물어 가는 저녁에.